옥센프리2 로스트 시그널, 감성적이지만 애매한 여정

  • 입력 2023.08.07 17:19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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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센프리(OXENFREE)’의 2번째 작품 ‘로스트 시그널’은 텍스트 양이 상당한 어드벤처 게임이지만 ‘텔테일 게임즈’이 제작했던 ‘더 울프 어몽 어스’나 ‘더 워킹 데드’처럼 인터랙티브 장르를 표방하지는 않는다. ‘퀵타임 이벤트’ 장르였던 ‘쿼리’나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시리즈처럼 순간적인 판단을 요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 게임은 ‘시간의 틈’이라는 소재로 ‘라일리’라는 여성의 감성적인 여정을 담고 있다. 제이콥이라는 남자, 그리고 무전기를 통해 여러 사람들과 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는데 전편을 좋아했거나 열렬한 팬이 아니라면 다소 심심해 보일 수 있다. 무엇보다 여름을 맞이하는 공포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일 정도이니 관련 장르 팬들은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먼저 이 게임이 초자연적, 미스터리, 탐험 등을 핑계로 애매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라일리가 깨어난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속 시원하게 설명하는 매개나 장치가 전혀 없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 게임은 중반부가 지나도 “이해가 안 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등의 대사가 끊임없이 나온다. 인터랙티브 장르처럼 말풍선에서 대화를 선택할 수 있는데 실제로 본인은 “무슨 말이야?”를 선택하는 경우가 제일 많았다. 그러면 “답은 당신이 찾아야 돼.”, “아직은 말할 수 없어” 등이 대답으로 돌아오거나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은 외계어를 남발한다.

일부 해외 포털 매체에서는 오싹한 분위기가 있다든가 ‘더 워킹 데드’나 ‘더 울프 어몽 어스’처럼 급박한 전개가 이어진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제대로 플레이를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 시리즈에 확실히 애정이 있어 보이는 매체에서도 “놀랍다”, “대화와 음성 연기가 매력적이다”, ‘때때로 소름이 돋는다” 등 원론적인 말들이 많다. 보통 매체 스스로가 원하는 기사나 리뷰는 직접 플레이를 하고 글을 쓴 ‘글쓴이’의 소신이다. 이 게임은 넷플릭스가 처음으로 배급을 맡은 것으로 보이는데 일부 매체들의 리뷰는 마치 ‘보도 자료’를 그대로 가져온 것처럼 식상해 보인다.

게임은 라일리가 깨어난 이후로 에블린이라는 실험 환경 연구원의 부탁을 받고 송신기 설치를 돕는다. 라일리는 분명히 과거를 다녀온 것처럼 기이한 경험을 하고 왔지만 에블린에게 특별한 단서가 될 만한 이야기는 듣지 못 한다. 그저 전자기 중력이나 이온풍과 같은 ‘특수 자연 현상’을 연구한다는 거창한 일을 한다는 점에서 동의를 얻고 끝내는 것이다.

송신기를 설치하려면 등산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점이 발생한다. 다행히 이 게임의 지도는 그리 복잡하지 않고 미로 같은 건 아니라서 헤매는 일은 별로 없다. 다만 라일리의 발이 너무 느리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메트로베니아처럼 길이 여기저기 막히는 경우는 없어서 조금만 신중히 행동하면 크게 문제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착각을 해 버린다면 낭패를 볼 수가 있다.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지도 상의 거리를 착각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서 A에서 B로 가는 지점을 시각적으로 만들어 놓고 A로 가면 저 멀리 있는 F로 빠져 나오는 것이다. 물론 개발진이 예상치 못한 경로라고 지정해 놓은 것일 수 있지만 라일리의 걸음이 워낙 느려서 탐험을 하는 시간 투자에 상당한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이 게임의 외형은 메트로베니아처럼 보이면서 어드벤처 장르이기 때문에 성취감을 느끼기도 힘들다. 막힌 길을 뚫는 과정은 열쇠와 같은 아이템이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서 다소 애매하다. 어떤 건물에 들어가야 하는데 문이 잠겨 있다고 한다면 대부분 열쇠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 게임은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 길을 여기저기 헤매는 시스템이 아니고 워키토키를 통해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물론 수수께끼와 같은 대화- ‘시간의 틈’으로 들어가 과거의 누군가를 만나서-이것 역시 수수께끼와 같은 대화 포함- 해결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잠겨 있던 문이 열려도 게이머 스스로 해결했다는 성취감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물론 전작을 좋아했거나 대화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면 아예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얼마든지 게이머 스스로 추측해 보고 상상해 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추리해 볼 수 있다. 문제는 중반부를 넘길 때까지 이런 감정 소모를 할 게이머가 과연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대신에 대화를 선택하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편이다. 이 게임의 텍스트 양은 아주 상당한데 번역도 때로는 의역도 포함되어 있어서 국내 게이머들이 받아들이기 아주 편하다. 가장 좋았던 건 갑자기 다른 캐릭터들이 난입하면서 대화가 뒤엉킬 때 텍스트가 차례대로 넘어가는 모습이 꽤 세련되어 있다. 보통 이런 부분은 앞서 나온 대화가 잘려 버리거나 아예 번역이 안 되어 버리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게임은 무시되는 텍스트들까지 친절히 한국어로 확인할 수 있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너티독의 ‘언차티드4 해적왕과 최후의 보물’의 번역을 상상해 보면 된다. 새롭게 나오는 자막은 그 아래에 자연스럽게 쌓이면서 충분히 게이머들이 상황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개발진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대화를 추구했던 것 같다. 말풍선이 의외로 많이 나오는데 어떤 대화를 선택하든 시작부터 끝까지 이상해 보이는 건 없다. 다만 이 대화들이 생산적이거나 흥미롭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수수께끼와 같은 말들이 게이머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고 과연 이 대화가 지금 시점에 필요한지 의문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 특히 제이콥은 매우 수다스러워서 나중에는 말풍선을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 말풍선도 무시할 수 있다. 말풍선이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이 게임의 말풍선은 인터랙티브처럼 스토리 진행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미국 드라마(미드)를 볼 때 나오는 그 불필요한 대화를 상상해 보면 된다.

이 게임은 마치 애매한 줄거리로 관객들의 외면을 받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보인다. 애매해 보이더라도 철학과 영상미만 참신하다면 웨스 앤더슨이나 아리 애스터 감독처럼 호평받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게임의 스토리나 대화를 영화와 같은 영상미로 상상해 보면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분명히 송신기를 설치할 때마다 묘사되는 ‘시간의 틈’은 미스터리하고 이 사건을 두고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캐릭터들도 따라가다 보면 호기심이 생긴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뛰어난 영상미와 함께 구현해 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와 같은 상상을 여러 차례 해 보았다. 특히 1980년대 B급 무비에서 들을 수 있었던 복고풍의 음악이 묘한 감성을 자극하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분명히 난해한 대화 때문에 게임이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이런 스타일의 줄거리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괜찮은 콘텐츠가 될 것이다.

다만 게임이다 보니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다른 인터랙티브 장르 게임들처럼 캐릭터들의 표정 연기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등산을 하는 두 캐릭터를 멀리서 지켜보는 식이기 때문에 더욱더 흥미를 느끼기 힘든 것이다. 그래픽이나 레벨 디자인 모두 평범한 편이고 딱히 비주얼적으로도 눈에 띄는 것이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는 다른 매체들이 모두 인정하는 것처럼 아주 훌륭하다. 텍스트의 양이 아주 상당한 덕분에 배우들의 목소리도 모두 풀로 녹음됐다. 어쩌면 그렇게 애매하고 난해한데도 계속 플레이했던 원동력은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 덕분일 수도 있다. 연기의 깊이도 더해지면서 그리 궁금하지도 않은 ‘시간의 틈’과 과거의 이야기 등이 계속 귀에 들어왔던 것이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남다른 감성과 인내심을 요하니 참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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