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 뛰는 영웅의 이야기, PC '문라이터' 리뷰

  • 입력 2019.12.17 14:03
  • 기자명 더키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로그라이크'. 던전 탐험. 알 수 없는 적들의 등장. 아이템을 얻으며 강해지지만, 한 번 죽으면 그대로 끝. 게임 중간 세이브가 없음. 뭐라고 확실하게 정의하긴 어렵지만 대충 떠올린다면 이 정도일 것이다. '로그라이크' 장르의 재미는 어떤 적이 등장할지 모른다는 긴장감과 한 번 죽으면 그대로 끝이라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가혹한 방식만을 고집하기보다 조금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형태로 변형된 게임들이 등장했다. 게이머의 상실감, 그리고 피로감을 줄여주는 방식을 도입한 것. 예를 들자면 중간에 마을로 귀환이 가능하다던가, 죽었지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방식까지 생겼다. 기존 '로그라이크'가 보여준, 그리고 추구했던 모습을 뒤흔드는 이 장르를 '로그라이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라이크'건 '라이트'건 단어가 어찌 됐든 게이머들은 ‘아이작', '다키스트 던전', '던그리드' 같은 게임을 이 범주에 묶어놨을 것이다.

 

수많은 변형작품이 등장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경우도 있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경우도 있다. 이 장르는 어찌 보면 단순한 규칙을 세우고, 이에 맞춰 각자 게임이 추구하는 가치만 한 스푼 넣으면 될 것 같지만, 의외로 성공한 게임은 많지 않다. 워낙 많은 게임이 존재하는 만큼 명작이라고 부르는 게임들과 그렇지 않은 게임들의 편차도 큰 편이다.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장르다.

 

개발사 '디지털 선'이 선보이는 첫 번째 로그라이트 게임 '문라이터'는 조금 변형된 특징을 가진 게임이다. 이 게임은 '로그라이트'라고 보기에도 어렵다. 엄격한 규칙에서 벗어나 허용되는 부분도 많고, 변형된 것도 많은 게임이다. 독특한 특징이라고 한다면 주인공 '윌'이라는 캐릭터는 '영웅'임과 동시에 '상점 주인'이라는 점이다.

 

'영웅을 꿈꾸는 상인'의 이야기를 타이틀로 걸긴 했지만, 쉽게 짐작은 해볼 수 있다. 게임에서 '상인'이라는 직업은 그리 생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문라이터'는 어떤 색다른 재미를 갖고 있을까? '투잡'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고, '상인'이라는 직업 역시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영웅임과 동시에 상인'이라는 모습을 '문라이터'는 어떻게 보여주고자 했을지 한 번 알아보자.

 

영웅에겐 돈이 필요하다

'문라이터'가 앞세우는 특징은 주인공이 던전을 탐험하는 '영웅'임과 동시에 '상점주인'이라는 점이다. 기존의 게임에서 영웅들은 던전에서 수집한 아이템들을 상점에 팔았다. 하지만 주인공 '윌'은 이 아이템을 마을 주민들에게 '팔아야 하는' 입장이다. 던전 탐험이 끝나면 상점부터 방문해서 잡템들을 팔아왔던 기존 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던전에서 주워온 아이템마다 가격을 측정해야 하고, 상점을 방문하는 마을 사람들의 선호도를 조사하며, 그들이 원하는 아이템을 구해와야 한다.

 

별다를게 없어 보이지만, 이 게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만큼 초반의 '상점 운영'은 쉽지 않다. 우선 주워온 아이템 중에서 장비 강화나 제조에 필요한 아이템은 따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무작정 팔았다가는 나중에 장비를 강화할 재료가 없어서 다시 던전에 가야 한다. 무엇을 팔 것인지 정했다면,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가격'을 매기는 것이다. 처음에는 주워온 아이템을 얼마에 팔아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물론 아이템 수첩을 통해 짐작은 해볼 수 있다. 처음엔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우선 가격을 파악해야 한다.

 

다행히도 상점을 찾는 마을주민들은 감정표현에 솔직하다. 아이템의 값이 낮으면 기쁜 표정을 보이고, 터무니없이 비싼 값이면 침울한 표정을 짓는다. 아이템의 가격은 플레이어만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고, 적정가격을 빠르게 찾을 수도 있다. 모든 아이템의 가격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지만, 플레이어의 수첩에는 각 아이템 가격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이 기록된다.

가격만큼 중요한 것은 아이템의 인기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아이템마다 인기가 높거나 낮은 기간이 있고, 상점을 찾아오는 주민이 특정 아이템을 구해다 달라며 퀘스트를 주기도 한다. 아이템의 인기 역시 가격처럼 플레이어의 수첩에 기록되며, 특정 아이템을 부탁하는 일을 수락할 경우 구해야 하는 수량과 내용, 기간이 표시된다.

 

인기가 많은 아이템은 그만큼 찾는 손님이 많고, 이를 노리는 악의 무리도 등장한다. 인기가 높은 아이템을 진열할 때에는 상점의 유리 진열장을 사용해 그 아이템을 보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아이템을 다 유리 진열장에 넣을 수는 없는 일. 카운터에만 있지 말고 항상 상점을 돌아다니면서 이상한 낌새를 보이는 NPC를 감시해야 한다.

상점 운영은 낮에만 할 수 있다. 주어진 시간 안에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비싼 아이템을 많이 진열할 수 있도록 매장을 확장해야 한다. 물건의 일정 부분 팁을 받거나, 손님들의 이동속도가 빨라지거나,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는 등 다양한 효과를 받을 수 있는 오브젝트로 상점을 꾸밀 수 있다. 

 

상점 운영의 기본은 조금 싼 값에 아이템들을 빨리 팔아치울지,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값을 더 받을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것도 귀찮다면 후반에는 '알바'를 고용할 수 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판매량의 30% 인건비를 떼어주면, 상점 운영을 조금 편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팔 수 있을 '아이템'이 진열됐을 때의 이야기다. 낮의 상점 운영이 끝났다면, 밤에는 본격적인 일을 하러 가야 한다. 이 게임의 주된 목표는 어디까지나 '던전'을 탐험하고 보스를 물리치는 것이다. 영웅도 돈이 필요하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아이템을 주워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던전에서 몬스터들을 사냥해야 한다. 

너무나 관대한 영웅의 모험

'문라이터'는 한 번 죽으면 끝인 게임이 아니다. 정통 '로그라이크' 범주에 넣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많은 부분을 타협하는 '로그라이트'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문라이터는 굉장히 관대한 게임이다. 중간에 얻는 아이템들을 상점 보관함으로 보낼 수도 있고, 가치가 낮은 아이템은 그 자리에서 골드로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이 진짜 관대한 이유는 특정 지점에 '텔레포트'를 열어서 마을에 복귀 했다가 다시 이어갈 수 있고, 플레이어가 던전에서 죽더라도 중요한 아이템 5개는 챙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장르를 좋아하는 게이머가 보기에는 이도 저도 아닌 흉내만 낸 어정쩡한 게임처럼 보일 것이다.

 

그나마 한가지 플레이어를 괴롭히는 페널티가 있다면, 던전에서 얻는 아이템들이 각종 '저주'를 달고 있다는 점이다. 저주는 적들에게 공격당하면 인벤토리의 아이템이 사라진다거나, 가방의 특정 위치에만 담을 수 있다거나, 종류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 방식이다. 꼭 저주만으로 묶여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템을 변환 시켜 주거나 각종 저주를 푸는 아이템도 있다.

 

던전은 '골렘', '숲', '사막', '기술' 총 4가지 컨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던전을 클리어하면 열쇠를 하나씩 얻는다. 총 4개의 열쇠를 얻으면 최종 던전에 도전할 수 있다. 처음부터 던전을 선택할 수는 없고, 시작 던전인 '골렘의 던전'을 클리어하면 다음 '숲의 던전'이 개방되는 방식이다. 던전의 몬스터나 각종 장치도 각 던전의 컨셉에 맞게 피해 속성이 바뀌긴 하지만, 몇몇 몬스터는 단순히 색깔만 바꾼 것도 있다. 몬스터의 종류가 그렇게 많지 않으며, 두세 번 정도만 탐험하면 패턴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전투 난이도 역시 어렵지 않다. 개인적으로 '장비 빨에서 일단 먹고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초반 권장 난이도로 플레이 시 무기 강화와 마법부여 몇 번이면, 던전을 쉽게 클리어 할 수 있다. 장비는 '천', '철', '강철'의 방어구와 검과 방패, 창, 활 등의 무기로 나뉘어있다. 처음으로 선택하는 장비를 잘 골라야 한다. 중간에 다른 장비를 만들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든다. 하나만 밀고 나가는 편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철' 방어구와 '창' 무기를 선택했다가, 중간에 '강철'과 '대검'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재료를 또다시 구해야 한다. 상점에 팔 아이템을 구하는 것도 벅찬데, 다른 장비를 위해 던전 뺑뺑이를 돌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액션의 재미'만을 놓고 봤을 때 '문라이터'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이미 이 장르에서 좋은 평을 받은 게임, 독특한 전투방식을 활용한 게임보다 내세울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나쁜 수준은 아니지만, 박진감 넘치는 전투나 독특한 방식을 기대하는 게이머라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냉정하게 '던전'의 구성이나 '전투' 부분에서는 다른 게임보다 특별히 눈길 가는 점이 없다. 무기마다 공격 이펙트가 너무 단조로우며, 타격감 역시 많이 떨어진다. 여기에 각종 소모성 스킬 아이템이 없어 '평타'에만 의존한 전투가 계속 이어지고, 중간 보스나 마지막 보스의 패턴도 쉽다. 무엇보다 장비만 착실하게 업그레이드했다면 패턴이고 뭐고 그냥 때리기만 해도 쉽게 클리어 할 수 있을 정도다. '명작'들을 플레이한 게이머들은 분명 '그냥 때리기만 해도 깨지네' 하며 실망할 것이다.

시도는 좋았으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개발사 '디지털 선'의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도트 그래픽. 기존 장르의 규칙을 깨고, 신선함을 더한 콘텐츠. 인디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시도.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문라이터'는 '투잡을 뛰는 영웅'이라는 단순한 컨셉 외에 이전의 게임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게임은 후반부로 갈수록 단순 던전 '뺑뺑이'의 반복이 되고, 특정 구간에 가면 상점 운영도 알바 NPC에 맡겨버리게 된다. 돈이 쌓일수록 보스전 앞에 텔레포트를 열어두어 보스 클리어 시간을 줄일 수도 있다. 던전의 층마다 드랍되는 아이템이 다르다 보니 1, 2층의 아이템은 거들떠보지 않고 오로지 3층의 아이템을 파밍 하는 게 목적이 된다. 심지어 '던전의 빠른 길을 알려주는 물약'도 존재한다. '문라이트'는 층마다 10개 남짓한 방이 있는 정도로 작은 규모의 게임이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사실 특정 장르를 포기하겠다는 뜻처럼 느껴진다.

 

후반부에 들어 자연스레 골드가 많아지면, 던전을 가기보다는 마을의 '소매상'을 통해 아이템을 구매하게 된다. '소매상'은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을 파는 또 다른 상점이다. 남아도는 골드는 은행에 맡기고, 상점 운영도 알바에게 맡긴다. 게임 초반의 신선함은 잠시뿐이며, 단조로운 전투와 너무도 관대한 시스템에 쉽게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차라리 '상점 운영'이라는 요소에 조금 더 공을 들였더라면, 좀 더 세부적이고 복잡한 '운영' 요소를 도입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더 다양하고 역동적인 변수를 두어 물건의 값이 요동친다거나, 마을의 다른 상점들과의 연합, 혹은 무역이나 교환 같은 요소를 도입해 좀 더 유저들을 귀찮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던전이 밋밋하면, 상점이라도 재미있어야 하는데 '문라이트'는 이 둘 모두를 잡으려다 이도 저도 아닌 가벼운 게임이 된 것 같다.

 

게임의 난이도를 떠나서 다음 구역에서 어떤 말도 안 되는 몬스터들이 나올지 하는 긴장감과 한 번 죽었을 때 모든 아이템을 잃어버리는 그 좌절감과 상실감의 맛이 있어야 하는데 아쉽지만 둘 다 느끼기가 어려운 게임이다. 친절함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 하지만 색다른 시스템을 도입한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칭찬해주고 싶다. 아쉽긴 하지만 이번 '문라이터'를 계기로 자신들만의 색깔을 조금 더 살릴 수 있는, 그 개성을 확실히 인식시킬 수 있는 후속작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