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하. 300억 짜리 넥슨의 야심작은 과연?

  • 입력 2019.05.06 12:39
  • 기자명 캡틴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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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국산 대표 게임이 된 셈인데.

 

얼마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사악한(?) 거대한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마블 영화에 대항하는 국가대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이 무려 100억이 넘는 제작비를 투여. 고작 1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

 

1000만 관객 시대에 17만 명이라는 안타까운 숫자도 그렇지만 (, 1UBD라는 말까지 만들어가며 조롱할 일도 아니라 생각하지만) 100억이라는 제작비가 특히나 눈에 띄기도 했다. , 주로 100억 어디에다 쓴 거냐는 비아냥의 소재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제작비가 100억이다, 200억이다. 90년대도 아니고, 이런 마케팅 이제는 너무 낡고 짜치고 질린다 싶으면서도 일단 눈에 들어오긴 한다.

영화계도 돈 많이 쓰기로 유명하지만, 게임계도 돈 많이 쓰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분야다. 그래도 모바일 게임에 100억 단위는 여전히 이야... 뭐 이리 많이 썼어?

제작비 150, 홍보비 150억 총 300억이 투자된 블록버스터!

넥슨의 필살기. 300억 대작 <트라하>를 살펴보자.

 

어디, 150억 잘 썼나 한 번 봅시다.

 

날아 ~ 갑시다~!

 

전반적인 퀄리티는 최상급. 데이터는 충격. 버그는 애교.

 

그래픽. 사실 좋은 그래픽이 좋은 게임을 보장하는 보증수표까지는 아니지만, 역시 게임을 거론할 때 가장 직관적으로 보이는 요소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가장 크게 보게 되는 요소 중 하나다.

<트라하>의 그래픽은 특히 모바일 게임으로 쳤을 때는 두 말 필요 없이 최상급이다.

 

제아무리 모바일 게임이 날고 기어봐야 PC 게임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게 보통의 편견인데, <트라하>는 그대로 PC로 이식해도 괜찮을 정도의 수려한 그래픽을 지녔다.

 

캐릭터 모델링도 준수하고, 액션도 화려하고. 개개인의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모바일 기기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상급의 풀 3D 그래픽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만약 개인적으로 그래픽을 게임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따지는 게이머라면 한 번쯤은 해봐야 할 게임이다. 왜냐면 <트라하>야 말로 현 모바일 게임 그래픽의 거의 선두라고 보면 되는 게임이니 말이다.

 

근데 그래서일까? 탈 모바일스러운 그래픽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용량도 모바일게임 스럽지가 않다. 모바일 게임 특성상 정확한 클라이언트/데이터 용량을 파악하긴 힘든데 합쳐서 대략 5GB 정도를 차지하는 것 같다. 최근에야 32GB 이상 용량 급의 스마트폰이 워낙 흔하니 큰 장벽은 아니겠지만, 조금 구형 스마트폰을 쓴다면 설치하는 것 자체가 큰 난관일 수도 있겠다.

 

탈 모바일급의 그래픽을 지니고 있다 보니 오래 플레이하면 핸드폰이 탈 듯이 과열되는 것은 덤. 조금 있다 언급하겠지만 단순 노가다 퀘스트를 할 때는 절전모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버그의 경우는 황당한 체험을 많이 했다.

퀘스트를 진행 시켜주는 주요 NPC가 수시로 삭제되거나 엉뚱한 위치에 있는 버그가 있었다. 이런 경우 몇 시간씩 버그가 픽스 될 때까지 게임을 진행할 수 없었다. , 오픈한지 얼마 안 되었기도 하고, 고치면 되는 부분이니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주자.

 

 

그럭저럭 전투 콘텐츠, 아기자기 생활 콘텐츠, 필드 PVP의 재미

 

전투 콘텐츠는 그럭저럭 재밌다.

전투 레벨 성장은 주로 전투가 포함된 메인퀘스트, 특정 몬스터들을 반복해서 잡아 오는 서브퀘스트, 각종 심부름을 하는 일일 퀘스트인 데일리 퀘스트등으로 이루어진다.

 

전투는 자동으로 하든 수동으로 하든 거의 반자동이나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이렇다 할 전율은 없지만 화려한 스킬 이펙트를 구경하는 재미와 다양한 스킬들을 세팅해서 사용해 보는 재미도 있다.

퀘스트에 필요한 이동이나 NPC에 말을 거는 행동 등도 거의 자동으로 이루어지기에 편하다.

수동으로 조작해서 클리어해야만 하는 던전 콘텐츠도 있는데, 사실 던전의 길이가 워낙 짧아 큰 의미는 없다. 들어가면 보상을 상당히 주고, 들어갈 수 있는 횟수가 매일 정해져 있으니 아까워서 들어가는 정도. 재미보단 보상을 위해 출석하는 느낌이다.

 

전투가 그럭저럭 이라면 생활 콘텐츠는 제법 재밌는 편이다.

공예, 요리 등으로 나누어진 생활 콘텐츠는 있을 만한 건 다 있다. 무기가 아니라 랜덤한 무기가 나오는 무기 상자를 만들어 내는 개념은 내겐 황당하고 신선했지만 말이다.

 

초반 이후 퀘스트 동선에서 부터 자꾸 만나게 되는 적대 세력과의 필드 PVP는 상당히 재밌는 요소였다. 돈만 내면 제자리 부활이 가능하다 보니 소름 돋는 전율 같은 것은 없었지만, 차후에 관련 콘텐츠들 추가는 기대되는 부분이다.

 

 

클래스도 3, 노가다도 3, 이게 게임인가.

 

<트라하>는 한 캐릭터에 여러 가지 클래스를 플레이어 입맛대로 마음껏 키울 수 있다.

문제는 각 클래스의 강함이 다른 클래스에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시스템이란 거다.

어떠한 클래스의 레벨이 올라가든, 전투 패시브에 해당하는 전투 특성 트리는 모두 함께 찍을 수 있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궁수 클래스로 모은 스킬 포인트로 특성을 찍으면, 해당 특성이 쌍검을 사용할 때도 유용하게 쓰인다.

말인즉슨, 결국, 최강의 쌍검 캐릭터를 키우기 위해선 특성 포인트를 조금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 활과 양손 검의 레벨도 최대로 올려줘야 하고, 다른 직업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

 

자유롭게 3가지 클래스 중 하나를골라서 사용하는 것이 본래 개념이겠지만, 결국엔 ‘3가지 클래스를 모두 강제로키워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3배의 자유가 아닌 3배의 노가다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노가다량을 감내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건 결국 길고도 긴 플레이다. 자동으로 하든, 수동으로 하든 엄청나게 오래 게임을 잡고 있어야 하게 된다.

행동력 없이 자동으로만 돌리는 것은 효율이 별로라고 치고 안 한다 해도, 하루 치 행동력을 모두 사용해서 데일리 퀘스트 15번과 사이드 퀘스트 20여 번 정도를 돌리는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플레이타임이 소요된다.

또 생활특성 포인트 역시 찍어줘야 하니 생활 관련 퀘스트까지 하면 정말 3~4시간도 우습다.

더군다나 이 모든 퀘스트들은 얄궂게도 모두가 자동으로 진행되면서도, 앱을 백그라운드로 최소화하거나 종료하면 전혀 진행되지 않는다.

 

자동으로 진행되긴 하는데 화면을 켜두고 그냥 보고 있어야 한다.

휴대전화를 게임에 몇 시간씩 저당 잡히는 셈이다.

리뷰를 하기위해 게임을 한참이나 진행하다가, 휴대전화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몇 시간째 뜨거워지는 폰을 잡고 있다가 문득 명상하던 고승이 돈오의 원리로 깨달음을 얻듯 게임을 종료했다.

, 이 게임 이렇게 하는 거 아니네.’

그리곤 잠들어있던 아이패드를 꺼내 들어 패드 거치대와 함께 <트라하> 자동 퀘스트 진행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하는 게임인 것이다.

 

<트라하>는 아무래도 모바일 게임이지만 모바일 스럽지 않다.

그래픽이나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게임 자체도 그렇다.

몇 시간씩 노가다를 해가며 플레이해야 하는 일부 PC RPG 게임처럼 <트라하>도 그렇다. 굳이 비교하자면 세련된 리니지다. 리니지에도 자동 사냥이 추가되었다 하니 그 간격은 더 좁은 느낌이다.

 

이게 게임인가. 내가 하는 거보다 켜두고 보는 게 위주가 되어가니 긁적긁적하게 된다. 다만 또 한참이나 낚시를 시켜두다가 잡혀있는 수십 마리 물고기를 보면 또 뿌듯하기도 하고. 중간중간 내가 요리 레벨을 올리면서 만들어둔 음식으로 버프를 걸어주는 것도 재밌다. 전투를 시켜놔도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하긴 하다. 그래도 역시 대부분의 시간 자동 사냥을 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아 참, 자동사냥하니 또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트라하>는 공식적으로 수동으로 사냥하는 유저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게임이다!

그 부분도 한 번 알아보자.

 

 

자동 사냥 게임 게 섯거라!

 

지금은 그럭저럭 타협되어가는 모양새지만 RPG와 자동 사냥의 관계는 상당히 민감하다.

물론 역할놀이고 뭐고 다 좋은데, 결국에 노력을 통해 쌓아가는 재미를 위주로 구성되는 장르가 RPG다 보니 생기는 딜레마다. 내가 열심히 손가락 놀려가며 게임을 플레이 하나, AI 기계장치에 안락하게 몸을 맡기고 게임을 하게 시키나 얻어내는 결과물이 똑같다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격이 아닌가?

해서 근래에 나오는 RPG 게임들은 아예 플레이어에게 반복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구간을 없애 버리거나, 자동 사냥은 당연한 것으로 두고 부가적인 재미 요소를 집어넣는다.

IDLE 게임, 방치형 게임으로 부류되는 장르는 이것의 극의 이고 말이다.

 

그런데 <트라하>는 이런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일거에 해결해 버린다.

자동 사냥과 수동 사냥의 차이가 없다고? 그럼 만들어 버리면 되지.

정말로 아예 사냥 결과에 자동과 수동의 차이가 현격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추가 경험치인데, <트라하>에선 수동으로 사냥을 한다면 자동 사냥을 하는 경우에 대비해 기본적으로 50% 이상, 심하게는 2배가량의 차이가 나는 추가 경험치를 제공한다.

본래 몬스터를 때려잡아 얻는 경험치가 1000이라면, 수동 사냥을 하면 1000+2000의 경험치를 줘 버리는 것이다.

, 이거 뭐야. 천재인가?

단 한 번에 수동과 자동의 차이점을 만들어 줘 버렸다.

개발진 역시 이 엄청난 발상이 자랑스러웠는지 게임을 소개할 때마다 꼭꼭 강조해서 수동 사냥의 장점을 언급했다.

자동 사냥과 수동 사냥의 차이가 없어서 불만이었으니 차이를 만들어 줘 버린다.

이야.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네.

개념상은 그렇단 말이다.

 

 

핀트가 좀 잘못된 거 같은데.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자동 사냥을 게임에 넣는 것이 게임 개발자가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인가?

막대한 돈을 들여 개발한 회심의 게임 <트라하>를 홍보하는 자리에서, 꼭 반듯이 언급해야 할 정도로 자동 사냥은 악의 축인가?

사실, 오래된 게이머들의 관점에서 자동 사냥에 대한 인식은 안 좋은 게 너무 당연하다.

왜냐면 많은 게이머가 처음 자동 사냥을 접한 것은 PC 온라인 게임 흥행 시절, 불법 메크로 유저들과의 대면이었기 때문이다.

자동 사냥은 근본적으로 AI가 사냥을 도와준다는 점에서 불법 사냥 메크로와 DNA가 같다. 다만 자동사냥메크로가 법을 벗어난 거친 황야의 무법자나 골목길 마피아들의 마약이었다면, 게임에서 공식 지원하는 자동 사냥 기능은 누구나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같은 도구에 가깝단 차이뿐이다.

제아무리 제도권 안으로 흡수되고 엄연히 공식지원하는 하나의 기능이자 도구임에도 지울 수 없는 기시감’. 자동 사냥이 비호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게임을 비하하는 단어로서 자동 사냥 게임이다.’라는 표현을 써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게이머들이 정말로 자동 사냥 게임을 싫어한 걸까?

그럼 자동 사냥을 당연한 전재로 깔고 종전의 히트를 기록한 키우기시리즈 등의 방치형 게임들이나, 클릭만 하면 전투 과정 자체는 자동으로 이뤄지는 수많은 전략 명작 게임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전략 게임 <엑스컴> 시리즈에서 자신 대신 AI 병사가 알아서 총을 쏜다고 해서 불만인 게이머가 있을까? , 물론 열심히 삽질하고 있는 AI들을 보고 있자면 차라리 내가 가서 대신 쏘고 싶은 마음이 들기야 하지만 말이다.

 

답은 간단하다. 자동이 문제가 아니다. 재미가 없다는 게 문제지.

 

보다 간단한 설명을 위해선 대척점을 세워보면 된다.

자동 사냥 게임의 반대말은 수동 사냥 게임이 아닌, ‘컨트롤 게임이다.

그리고 컨트롤 게임의 성립요건은, 단순히 자동 사냥과의 차이가 아닌, 사실은 엉뚱할 정도로 다른 곳에 있다.

 

얼마전 출시한 슈퍼마리오 런. 간단한 조작이지만 조작하는 보람이 있다.
얼마전 출시한 슈퍼마리오 런. 간단한 조작이지만 조작하는 보람이 있다.

우리는 <다크소울3><세키로>를 하면서, 혹은 <슈퍼마리오 런>의 컨트롤을 하면서 더 많은 경험치를 기대하지 않는다.

컨트롤을 중요시하는 게임에서 컨트롤은 생존의 수단이다. 해도 좋고 안하면 말고인 문제가 아니라 잘하지 못하면 죽는다.

이런 생존본능의 자극이 컨트롤 게임의 재미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속성은 RPG 게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우린 <리니지>에서 열심히 물약을 연타하면서, <다크에덴>의 세력전에서 상대를 물기 위해 노력하면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드래곤 브래스를 자동사냥하는 유저보다 더 많은 경험치를 얻기 위해 이 악물며 피한 게 아니다.

 

경험치 따위 안 줘도 된다.

소중하게 키운 나의 캐릭터가 안 죽게 돕는 그것만으로도 열심히 컨트롤 할 값어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트라하>수동 사냥은 헛다리로 보인다.

자동 사냥을 하든 수동 사냥을 하든 캐릭터는 죽을 일이 없이 무난한 사냥을 계속해서 반복할 뿐이라면, 이건 컨트롤 게임은 확실히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그냥 해도 상관은 없지만 괜스레 버튼을 꾹꾹 눌러주면 경험치가 더 나오는 자동 사냥 게임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트라하>.

300억 대작 게임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

세련되고 화사한 그래픽만 봐도 말이다.

지켜보는 게임을 좋아하는 플레이어라면 한 번쯤 꼭 해봐야 하는 게임이다.

 

그런데 이걸 모바일 게임으로 봐 줘야 할지는 조금 애매하다.

잠깐의 플레이타임과 가벼움, 틈틈이 하는 플레이, 그래서 늘 곁에 있는 감상이 드는 모바일의 영혼이 결여되어있다.

오히려 모바일이란 디바이스로 이사 온 하드코어 PC RPG의 느낌이 강하다.

 

신작 모바일 게임을 기대하던 분이라면 글쎄,

코어 하게 몰입하고픈 PC RPG에 목말랐던 분이라면 오히려 시도해볼 법한 것 같다.

 

 

 

/트라하. 300억 짜리 넥슨의 야심작은 과연?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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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R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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