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좋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크래프팅 게임, 디스맨틀

  • 입력 2021.12.03 18:33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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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mantle(디스맨틀)크래프팅태그가 붙은 생존형 게임 중에서 가장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타이틀일 것이다. 다만 The Forest(더 포레스트)Subnautica(서브나우티카), 넓디넓은 맵을 자랑했던 Green Hell(그린 헬)까지 즐긴 게이머라면 생존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작업용 게임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크다. 서브나우티카처럼 그 어떠한 갈증 상태가 없고, 웨이브 형식의 공격도 보이지 않아서 지속적으로 긴장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크래프팅 과정을 지켜보자면, 좀비의 위협은 어느새 잊어 버리고 재료 수급에만 신경 쓰는 경우도 많다.

대신에 재료를 축적하고, 아이템을 제조하는 이 일련의 시스템들이 아주 간결해서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다. 이 게임도 여타 생존형 게임처럼 재료를 수급해서 요리를 할 수 있는데, 캐릭터의 스탯에 영구히 변화를 주는 것으로 끝내 버린다. 예를 들어서 밀과 옥수수를 조합해서 빵을 하나 만들면 최대 체력이 5가 늘어나는 식이다. 이후에는 단순히 체력만 늘어나는 형식이기 때문에 굳이 같은 요리를 할 필요가 없게 했다.

아마 생존형 게임 좀 했다는 게이머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있다. 게임 자체가 워낙 편의성을 강조하다 보니까, 목적의식이 없어 보이고, 성취감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에 생존형 게임들이 제시하는 조건들이 까다로웠다면, 이 게임의 가성비에 만족할 것이다. 그저 게임의 퀘스트를 따라가다가 레벨 업에 맞춰서 크래프팅 작업에만 집중하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게임의 깔끔한 그래픽이 마음에 들었다. 1인칭 슈팅 게임들이 추구하는 디테일한 텍스처를 버리고, 색감과 명암이 뚜렷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사소한 부분일 수 있지만, 눈의 피로감이 덜해서 크래프팅 작업을 더 오래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인터페이스의 접근성도 좋고, 퀘스트와 지도를 번갈아 보는 과정도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퀘스트뿐만 아니라 게이머가 원하는 아이템 제조법을 상단에 나열하는 모습도 깔끔한 편이다.

먼저 쇠지렛대로 시작하는 크래프팅 과정부터 아주 익숙해 보인다. 처음에는 의자와 같이 약한 객체를 파괴하면서 폐목재를 수급할 수 있다. 그 밖에 식물 물질이나 폐철 등 소소한 재료를 얻을 수 있는데 이후에 쇠지렛대를 업그레이드하면 더 무거운 테이블이나 드럼통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게이머들의 상상은 대충 들어맞을 것이다. 주변에 널린 객체들, 쓰레기통부터 시작해서 부엌과 거실 가구들, 건물 외관에 있는 실외기나 도로에 있는 가로등을 파괴할 수 있는 아이템이 따로 존재할 것이고, 해당하는 재료들을 열심히 수급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문제는 동기부여에 있는데 초반 퀘스트부터 적당히 튜토리얼을 깔고 들어가기 때문에 게임의 목표를 아주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

하지만 모호한 부분도 있다. 게이머가 수급하는 재료들은 가방을 경유해서 모두 보관함으로 이동되는데, 이게 기존 RPG 게임의 보관함 개념이 아니다. 보통 RPG 게임들은 가방 안에 해당 재료들을 넣고 다니면서 아이템을 제조하지만, 이 게임은 일단 보관함에 넣어 두면 언제든지 제조에 쓰일 수 있어서 사실상 물리적 개념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개발진도 이를 인식했는지 가방 안에 재료가 있어야만 해결되는 퀘스트도 따로 마련해 놓았다.

그런데 초반에는 이 보관함에 들어간 재료를 선택해서 뺄 수가 없게 해 놓았다. 따로 보관함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데, 시기도 그렇고, 퀘스트 부분에서도 애매하다. 처음부터 보관함에 넣어 두었던 재료를 빼서 쓸 수 없게 하는 것도 낯설게 느껴지지만, 굳이 중반부터 업그레이드를 가능하게 한 것도 의아하다. 만일에 이런 핸디캡이 간간히 게이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면 모르겠지만, 흐름상 그렇지도 않다. 어쩌면 이런 핸디캡조차 인지하지 못 하고, 업그레이드부터 손을 댄 게이머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상한 점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비교적 빠른 타이밍에 자물쇠를 따야 하는 집이 등장하는데, 이를 얻기 위한 업그레이드 과정도 다소 늦어진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기술을 개발해도 약간 김이 샌다. 자물쇠를 따서 들어간 집에서 특별한 아이템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시나리오 전개상 딱히 필요한 부분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집 안에 라디오가 있고, 소식을 전해 들을 수는 있지만,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치고는 큰 이벤트가 아니었다. 여기에 10 레벨 정도 차이가 나는 전문 자물쇠 따기마스터 자물쇠 따기기술이 있다. 보통 이렇게 입문이 어려운 스테이지가 있으면, 더 강력한 무기를 얻을 수 있거나, 희귀 아이템을 주기 마련인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좀 야박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자물쇠 따기 기술에 굳이 애착을 보일 이유가 없다. 아마 개발진은 퀘스트 전개에 따른 탐험에 더 집중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차피 크래프팅이 아니면 레벨 업도 힘들고, 전개 자체가 안 된다.

결론적으로 이 게임은 파밍 RPG 정도로 봐야 할 것 같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주변 환경을 파괴해서 얻는 재료들은 결국 보관함으로 이동해서 주머니에서 빼서 쓰는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보관함이 마치 학교로 비유가 돼서 학교--학교-처럼 사물을 파괴하고, 돌아오는 일이 반복적으로 진행된다. 이런 지루한 과정이 비교적 빠른 타이밍에 오고 있는데 가방의 수납 공간이 비좁은 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 물론 업그레이드를 통해 가방 수납 공간을 늘릴 수 있지만, 중반까지는 계속해서 보관함을 왔다 갔다 하게 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시간 제한 박스를 곳곳에 던져 놓고, 시간을 벌기도 한다. 말 그대로 시간이 맞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열라는 뜻이다. 역시 힘겹게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도 특별한 아이템을 주는 것이 아니라서 갈 길 바쁜 게이머들은 그냥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도끼로 집의 외관까지 파괴할 수 있는데도 허전한 이유를 생각해 보니, 다른 생존형 게임처럼 건설부분이 빠졌기 때문인 것 같다. 이 게임은 후반부에 가서야 비로소 건설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탈출하기 위한 마지막 배수진을 치기 위해 진지를 쌓고, 기관총과 포탑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제야 웨이브 형식의 좀비 떼거리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마지막 탈출에서 오는 감정은 꽤 미묘한 편이었다. 그 기나긴 파밍 작업이 끝나고 보니,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종말이라기보다 이제 때려 부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뿌듯했던 것 같다. 이런 것을 보고, 바로 취향 저격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만큼 본인처럼 이 게임의 가성비에 만족할 게이머도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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