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드 더 룩(Defend the Rook),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

  • 입력 2021.11.12 15:01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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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디 게임 개발진들 사이에서는 하위 장르 혼합이 유행이 된 것 같다. 메트로베니아와 로그라이크는 기본이고, 난이도를 고려해서 소울라이크 요소까지 섞고 있다. 원 업 플러스 엔터테인먼트(One Up Plus Entertainment)가 개발한 디펜드 더 룩(Defend The Rook)도 비슷한 경우다. 게임이 출시된 스팀 사이트를 살펴보면, 로그라이크 전략 보드 게임과 타워 디펜스가 만났다고 소개하고 있다. 일반적인 타워 디펜스 게임에 비해 전략 요소가 많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위 설명에서 딱히 맞아떨어지는 게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직접 플레이해 본 결과, 이 게임은 전형적인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이었다. 체스처럼 생긴 보드 위에 킹에 해당하는 과 세 명의 영웅을 놓고, 턴제로 게임을 진행한다. 타워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저 아이템 수준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아서, ‘킹덤 러시시리즈를 연상하면 안 된다. 게다가 개발진이 핵심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로그라이크 요소도 도통 이 게임과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흔히 로그라이크라고 한다면 던전을 탐색하는 RPG 게임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게임에서 죽으면 지금까지 쌓아 올렸던 레벨과 아이템 모두 잃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핵심이지만, 그 유래부터 던전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액션 게임의 하위 장르인 메트로베니아와 더 어울려 보인다.

다행히 이 게임의 마지막 설명은 틀리지 않았다. 일반적인 타워 디펜스 게임에 비해 전략 요소가 많은 건 사실이다. 전투에서 승리할 때마다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되는데, 그것이 계속 누적되기 때문에 이동 한 번 할 때마다 계속 고심하게 만든다. 영리하게도 이 게임은 하나를 받으면, 다른 걸 포기해야 하는, 일종의 합의점도 찾아야 해서 세 명의 영웅을 어떻게 조합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게임의 전략은 괜찮지만, 로그라이크 요소가 불필요하게 섞여 있다.

플레이어 유닛은 세 명의 영웅과 룩이 있다. 룩이 파괴되면 게임에서 최종적으로 패배하기 때문에 이 게임의 제목처럼 룩을 지켜야 한다. 룩에게는 한 가지 강점이 있는데 자신을 공격하는 적은 자동으로 처치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예 부대나 보스처럼 강력한 적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 게임은 총 다섯 가지의 챕터가 준비되어 있는데, 각 챕터에서 승리할 때마다 각 영웅과 타워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룩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생명력과 더불어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세 명의 영웅에게도 갖가지 능력이 있다. 전사는 턴 종료 시 인접한 영웅과 장치가 임시로 2의 방어도를 얻고, 도적은 턴 종료 시 비활성화된 함정 위에 서 있을 경우 다시 활성화된다. 마법사는 이번 턴에 이동하지 않았을 경우 4의 임시 방어도를 얻게 된다. 여기서 임시라는 건 라운드가 종료될 때 지속된다는 걸 의미한다. 이 게임은 게이머와 적군의 턴이 모두 끝나면 1라운드가 끝나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다음 라운드가 되면 임시로 얻은 방어도는 모두 초기화된다. 함정은 일종의 덫으로 보면 된다. 정예 부대와 보스를 제외한 적군이 지나가면 대미지를 받으면서 기절하기도 한다.

이 게임에서 가장 칭찬할 부분이 바로 이 능력치에 있다. 각 챕터는 다시 다섯 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승리할 때마다 세 명의 영웅 중 한 명을 골라서 능력을 부여할 수 있다. 전사는 방어구를 위주로 강화하고, 도적은 이동력과 공격력을 주로 올리는데, 아무리 봐도 핵심은 마법사에게 있다. 마법사에게 전류와 폭탄 기술을 추가해서 광역기를 강화하면, 2라운드 내에 게임이 끝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마법사에게 파괴당한 적군이 다른 적군을 공격하고 사라지게 되면,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는 것처럼, 줄줄이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능력이라는 것도 랜덤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인 경우도 많다. 별볼일 없는 능력만 부여 받다 보면, 마지막 챕터에서 쉽게 패배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럼 이제 타워와 장치에 의존해야 한다. 각 스테이지에는 유닛이 이동할 수 없는 탑이 있고, 여기에 타워를 설치할 수 있다. 강력한 1회 공격을 하는 포탑이나 소규모의 광역기를 갖춘 에머랄드 탑 등을 설치해서 적군들의 공격을 딜레이 시킬 수 있다. 특이한 유닛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적군들은 타워를 먼저 공격한다. 여기에 바리케이드까지 쳐 주면, 도발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근처에 영웅이 있더라도 바리케이드부터 공격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타워가 생존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게임 난이도가 의외로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타워를 방패 삼아서 싸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각 스테이지가 끝나면, 어떤 적군이 배치될지 알 수가 없다. 생성 지점은 미리 알려주지만, 생명력이 높고 낮은 적군들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미리 예측하고 영웅들을 배치해도 수월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만약에 타워와 바리게이드를 위주로 업그레이드를 했다면, 금방 패배의 쓴맛을 볼 수도 있다. 첫 번째 스테이지부터 타워를 여기저기 설치했다가 금방 파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타워를 최종 설치하게 되고, 타워를 에워싸서 방어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 또한 쉽지 않다.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가는 과정에서 영웅들이 너덜너덜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다, 이미 타워를 모두 써 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웅에게 부여되는 능력의 조합이 쏠쏠하면 게임은 식은 죽 먹기다. 본인은 그다지 운이 좋지 않아서, 최종 클리어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운만 따른다면 난이도를 언급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금방 클리어할 수도 있다.

가장 의아한 점은 로그라이크 요소였다. 중간에 패하면 당연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만, 마지막 챕터까지 최종 클리어를 하더라도 지금까지 누적된 능력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마법이나 장치, 숨겨진 영웅들을 잠금 해제할 수 있는 보석 업그레이드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보석은 보스를 쓰러뜨리면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잠금 해제가 되기도 전에 최종 클리어가 된다는 것이다. 이 게임을 진행하는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더라도 플레이 타임이 매우 짧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이 중간에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이 게임의 볼륨이 너무 적은 것이다. 최종 클리어를 한 후에 남는 건, 영웅이나 마법을 잠금 해제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같은 게임을 반복하는 방법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이 게임에 등장하는 적군의 종류도 많지 않다. 게임을 진행할 때마다 랜덤하게 등장하기는 하지만, 같은 보스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캐릭터의 대사 양도 달라지지 않는다.

게임의 전략은 나쁘지 않다. 운만 좋다면 능력의 조합이 괜찮아지면서 전투하는 재미가 점점 붙게 된다. 그래서 로그라이크 요소가 굳이 필요치 않아 보인다. 챕터가 더 많거나, 게임의 스토리가 로그라이크 요소에 영향을 받으면서 흥미롭게 전개된다면 모르겠지만 이 게임은 시나리오에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승리할 때마다 어떤 능력이 부여될지 지켜보는 건, 로그라이크보다 오히려 카드 게임이 오버랩되고 있다. 그래서 게임을 최종 클리어할 때, 성취감보다 아쉬움이 더 컸다. 게임 곳곳에서 보이는 좋은 아이디어들을 더 폭넓게 활용하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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