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끼 충만한 카드 게임을 즐기고 싶다면… 인스크립션(Inscryption)

  • 입력 2021.10.28 18:48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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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개발자 다니엘 멀린스(Daniel Mullins)는 2016년 개발한 ‘포니 아일랜드(Pony Island)’를 통해 기괴한 장르를 시도하기 시작한다. 도스 화면으로 짓궂은 장난을 치는가 하면, 2018년 ‘더 헥스(The Hex)’에서는 픽셀 그래픽을 동원해 좀 더 4차원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초현실적이고, 왜곡된 구조를 일삼던 그가 최근에는 ‘덱 빌딩’을 덧붙인 ‘인스크립션(Inscryption)이라는 게임을 들고 나타났다. 보드 게임의 시스템 중 하나로 불리는 덱 빌딩은 ‘매직 더 개더링’이나 ‘하스스톤’처럼 미리 덱을 만들고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 중에 덱을 만드는 과정이 핵심이 된다. 패에 있는 카드로 다른 카드를 구입하고, 플레이한 카드는 더미로 옮겨졌다가 다시 뽑는 과정을 거친다. 아마 다니엘 멀린스는 미리 덱이 완성된 게임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모양이다. 물론 게임 중반부터는 덱 구성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존의 카드 게임과 차별화한 것은 분명하다.

게임의 첫 시작은 오두막이다. 카드 게임에서 이길 때까지 오두막에서 빠져나오지 못 하는데, 그 상대는 철저히 얼굴을 가리고 있다. 마치 ‘러브크래프트’의 ‘그 집에 있는 그림’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어둠을 강조하고 있는데, 10여 시간 정도는 투자해야 그 잘난 얼굴을 볼 수 있다.

규칙은 간단하다. 각각 다른 공격력과 생명력을 지닌 카드들을 4X2 보드에 놓고, 공란에 대미지를 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공격력 2인 카드가 공란을 공격하면, 상대방의 접시저울에 이빨 두 개가 떨어지며 기울어진다. 다음 턴에 상대방의 공격력 2인 카드가 공란을 공격하면, 게이머의 접시저울에 이빨 두 개가 떨어지며 동률이 된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다가, 5개의 이빨을 더 올린 자가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각 카드들은 앞서 낸 카드들을 희생 시키며 내야 한다. 보통 다람쥐(공격력 0, 생명력 1)를 희생 시키는데, 다람쥐 패와 공격하는 패가 따로 나누어 있어서 어느 정도 전략은 필요하다. 게임이 시작되면 다람쥐 카드 한 장과 공격할 수 있는 카드들이 무작위로 손에 잡히게 된다. 첫 턴에서는 카드를 뽑을 수 없어서, 보통 다람쥐 카드 한 장을 그대로 들고 있거나, 희생이 1개만 필요한 카드를 활용하기도 한다. 상대방 턴이 끝나고, 게이머의 차례가 오면 다람쥐 패와 공격하는 패 중에 한 장만 뽑을 수 있다.

여기까지 들으면 카드 게임이 굉장히 빈곤해 보이고, 심심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로그라이크’를 표방한 이 카드 게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단한 잠재력을 보여준다. 게이머에게 기회는 딱 두 번으로, 완전히 패하면 맨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카드의 값과 공격력, 생명력을 혼합할 수 있다. 게임에서는 ‘도장’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에 따른 고유한 기능도 따라온다. 본인은 보스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면서 좌우와 맞은편을 공격할 수 있는 사마귀신 카드를 획득했고, 보너스 스테이지를 통해서 공격력을 올려 쉽게 클리어할 수 있었다. 전형적인 보드 게임을 연상하면 된다. 미리 경로를 파악하고, 게이머의 말을 어디로 옮길지 결정하면 된다. 여기에는 보너스 스테이지와 카드 게임 스테이지가 골고루 섞여 있는데 운만 좋다면 다람쥐 카드에 복사나 아이템을 가져오는 도장을 박을 수도 있어서 아주 재밌는 게임이 전개될 수 있다. 기존에는 다람쥐 한 장이 아까워서 애를 먹었지만, 복사 도장이 찍히면, 죽거나 카드를 낼 때마다 복사가 되서 게이머의 손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카드마다 다양한 기능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각 카드는 다른 카드를 희생 시키면서 낼 수 있지만, 뼛조각이 필요한 카드들도 있다. 뼛조각은 카드 한 장이 사라질 때마다 한 개씩 생기기 때문에 패만 좋다면, 더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희생 2개가 필요한 늑대 카드와 뼛조각 2개가 필요한 주머니쥐가 패에 있다면, 다람쥐 2장을 희생시키면서 두 카드를 동시에 낼 수 있는 것이다.

그 밖에 상대 카드를 바로 즉사 시키거나, 아예 맞은편 카드를 무시하고 공란을 공격해 버리는 카드도 있다. 좌우 공란뿐만 아니라 사마귀신처럼 더 강력한 레어 카드는 맞은편 공란까지 동시에 공격하기도 해서 첫 턴부터 끝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을 절대로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튜토리얼은 물론이고, 단서도 거의 알려주지 않아서, 오두막을 빠져나가는 길이 의외로 험난할 수 있다. 게임 곳곳에서 주는 힌트를 아주 세심히 살펴야 한다. 카드 한 장이 알 수 없는 말을 계속해서 떠든다든가, 보드 옆에 무서운 식칼이 놓여 있는 것은 모두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오두막 안에는 암호화된 장치가 몇 가지 숨어 있다. 게이머가 빨리 눈치채지 못 한다면, 10여 시간이 아니라 20여 시간이 지나도 오두막을 벗어나지 못 할 수도 있다.

사실 이 게임은 가능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로 플레이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소 복잡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게이머들도 가능한 백지 상태에서 플레이할 것을 추천한다. 이 게임에는 여러 반전도 숨어 있어서 꽤 흥미진진한 전개가 이루어진다. 특히 놀라운 점은 이 게임에서 오두막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게이머들은 퍼즐 요소를 제대로 풀지 못 한 탓에 오두막도 벗어나기 힘들 수 있지만, 더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슈퍼패미콤에서나 볼 법한 픽셀 그래픽이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짐승들로 구성된 카드 게임이 돌연 기계화된 카드들로 모조리 탈바꿈해 버린다. 요약하면 이 게임은 총 3페이즈로 구성되어 있는데,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 보면, 미니 게임 형식이 두 세 가지가 더 준비되어 있다. 게다가 각 페이즈마다 VHS로 찍은 듯한 영상도 기다리고 있는데, 다니엘 멀린스가 얼마나 악동인지 짐작케 한다. 설명하기 민망할 정도인데, 영화나 드라마의 비하인드 영상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일부 포털 사이트에서는 오두막의 카드 게임 정도만 분석하고 있는데, 그건 다니엘 멀린스가 매우 실망할 만한 소식이다. 오두막을 벗어나면, 픽셀 그래픽의 카드 게임, 즉 2페이즈가 기다리고 있고, 기계화된 카드로 대결을 펼치는 3페이즈까지 준비되어 있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래픽의 질감마저 넘나들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다니엘 멀린스의 기존 창작물에서도 드러났지만, 이 게임에도 여러 가지 속임수와 이스터에그를 심어 놓았다. 게다가 게임을 그냥 끝내기가 아쉬웠는지, 게이머의 폴더 속을 뒤지는가 하면, 파일 삭제 해킹 프로그램을 자랑하듯 내놓는다. 그야말로 웃음이 빵 터지면서도, 수수께끼와 같은 대사들을 계속해서 늘어 놓고 있어서 금세 질려 버리기도 한다.

다만 다니엘 멀린스가 워낙 짓궂은 면이 있어서 게임의 깊이가 점점 떨어지는 느낌도 있다. 기존의 오두막 카드 게임처럼 진지한 구석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지루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막판 클리어에서 오는 그 성취감은 대단한 편이다. 다니엘 멀린스의 게임을 향한 열정에 감탄하면서도 발칙한 장난질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싶은 심정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를 영화계의 악동으로 불렸던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박수를 보내 주고 싶다. 그가 게임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면, 또 얼마나 똘끼 충만한 게임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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