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ighted(언사이티드), 너무 많은 하위 장르가 게임을 망친다

  • 입력 2021.11.03 12:33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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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 Pixel Punk(스튜디오 픽셀 펑크)의 게임 Unsighted(언사이티드)는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게임이다. 사이버펑크 장르를 표방하면서도 ‘소울 라이크’ 시스템을 도입하였고, ‘핵 앤 슬래시’의 요소까지 추가했다. 여기에 게임 ‘Ori(오리)’ 시리즈를 연상케 할 정도로 복잡한 미로를 보여주고 있어서 ‘메트로베니아’까지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접근하기 힘든 비밀 장소가 여러 개 추가되어 있어서, 퍼즐 성격도 강하다. 게다가 각종 무기와 방어구 제작도 눈으로 일일이 숙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제작 설계도를 획득하려면, 이 복잡한 미로를 돌아다니면서 또다른 비밀 장소에 접근해야 한다.

그야말로 언사이티드는 지금까지 인디 게임 개발진이 내놓을 만한 하위 장르들을 모두 섭렵한 게임으로 보인다. 인디 게임 개발진이 내놓을 수 있는 모든 아이디어가 이 게임에 모두 섞여 있다.

그러나 이 게임의 가장 큰 문제는 픽셀 그래픽의 최고 강점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개발진의 야심은 인정할 만하다. 인간에 의해 쫓겨난 로봇들이 잔잔한 휴먼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고, 여기에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개된다. 물론 우리는 인류와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었다. 로봇이 전기양을 꿈꾸는가 하면, 인류를 위협으로 느끼고 핵 버튼을 눌렀다. 일부 로봇들은 인류와 가까이 지내면서, 내부의 적과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이 게임의 로봇들은 기본적으로 서로를 자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Unsighted’가 되어 폭력적으로 돌변한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 Alma(알마)가 파괴하는 로봇들은 묘한 갈등을 조성하고 있다. 알마가 마음만 먹으면, 아이템으로 그들을 구원할 수 있지만, 무시하면 다른 로봇들처럼 파괴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게임은 이 대상들이 알마와 제법 가깝게 지냈다는 점을 활용해 동정에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알마에게 각자의 사연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아이템을 사고 팔고, 중요한 조언을 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 시간제한 핸디캡이 걸린 건 충분히 설득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시간제한이 주는 압박감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게다가 메트로베니아 장르에서 시간제한이라는 핸디캡은 대부분의 게이머들에게 최악이라고 볼 수 있다. 복잡한 미로를 충분히 파악하고, 즐기는 것이 메트로베니아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게임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심해 봐야 한다.

먼저 이 게임은 힌트를 아주 최소화 했다. 스스로 퍼즐을 풀기 위해, 막다른 길로 몰아갔다면 다행이지만, 은연 중에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서 게이머가 쉽게 눈치채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왔던 길로 다시 오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어쩌면 개발진은 게이머가 최대한 방황하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무리한 추측일 수 있지만, 이 게임의 지도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이 게임은 픽셀 그래픽을 사용하면서도, 오히려 불편함을 주고 있다. 지도의 가독성은 물론이고, 인터페이스도 그다지 충실하지 않아서 게이머가 따로 지도를 정리하지 않으면, 무조건 헤맨다고 봐야 한다.

한 예로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길을 잃는 경우다.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다, 잠시 식사를 하고 왔을 때 돌아왔던 길을 까마득히 잊어 버린 것이다. 실제로 지도 상에 표시를 해 놓지 않고, 무턱대고 움직였다가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많았다. 게다가 특별한 퀘스트도 아니고, 초반부터 길을 쉽게 잃어버려서, 금방 좌절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은 상당한 짜증을 불러일으켰고, 극복하는데 의외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쉽게 말해서 게임 자체를 망쳐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건 순서와는 상관없이 전개되는 근본적인 실수다. 게임 자체가 힌트를 별로 주지 않는데다, 픽셀 그래픽이 주는 가벼운 느낌 탓에 점점 늪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그렇게 되면 시간제한 핸디캡이 발목을 잡으면서 점점 게이머를 초조하게 만든다.

그래도 다행인 건, 시간제한 핸디캡이 그리 크게 압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운트다운을 표시하면서 플레이하면 모르겠지만, 아예 숨김 설정을 해 놓고, 침착하게 플레이하면 길은 결국 열리게 되어 있다.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나쁘지 않다. 소울라이크를 인식한 액션 퍼포먼스는 패드로 전해오는 진동과 함께 나름대로 흥미를 주고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이 플랫포머 장르를 시도하면서 이상한 길로 빠지게 된다. 픽셀 그래픽은 충분히 아름다운데 시각적으로 혼돈을 주고 있다. 높낮이 파악이 어려워서 발판에서 떨어지는 건 별일 아니다. 개발진도 인식했는지, 알마가 추락한다고 해도 에너지는 깎이지 않는다. 문제는 출입구 구분이 어렵다는 것이다. 지도 상에 표시된 출입구인 척(?)하는 문제까지 겹치고 있어서, 불편함을 주고 있다. 물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 금방 익숙해질 수 있지만, 스테이지가 바뀌면서 이 혼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진행하면 할수록 게임의 각 객체들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부서진 로봇과 파편, 유리 조각들, 흠이 난 채 쓰러져 있는 기둥들, 우거진 숲들 모두가 어디까지 발을 내딛을 수 있는지 의심부터 하게 된다.

이 게임은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렸다. 게임을 플레이하면 할수록 한 우물만 파라고 조언해 주고 싶을 정도다. 아마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시간제한이라는 핸디캡에서 고심했을 것이다. 비밀 장소를 파악하고, 레어 아이템을 찾아 나서고, 낚시를 통해 재료를 계속 수급하는 등, 기존의 파밍 작업과 상충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지금까지 언급된 단점들을 오히려 즐길 여지는 있다. 평소에 메트로베니아와 소울라이크를 섞고, 여기에 핵 앤 슬래시까지 어느 정도 혼합해 준다면, 즐길 게이머들은 전 세계에 얼마든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자꾸 마음에 걸리는 건, 게이머이 손이 너무 많이 간다는 점이다. 이 게임은 강화 시스템도 있는데, 칩을 하나씩 늘려 가면서 공격력과 방어력을 올릴 수 있다. 각 지도에 위치한 터미널에 접속해 알마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칩을 볼트로 구입해 점점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어 시스템에서 또 복잡한 방법이 반복되고 있다. 공격력과 방어력을 잠시 상승시켜 주는 이 기어들은 무기와 방어구처럼 제작할 수 있는데, 눈으로 숙지한 뒤에 각 칸에 재료들을 끼워 맞춰야 한다. 아마도 개발진은 게이머들이 최대한으로 손이 많이 가게 해서 심심하지 않게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현 시대 게임들과 맞지도 않고, 불편하기만 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다. 영어권에서는 요리사가 너무 많으면 수프를 망친다고 한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너무 많은 하위 장르가 게임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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