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전고투' 중세의 처절한 수성전. PC '시즈 서바이벌: 글로리아 빅티스' 리뷰

  • 입력 2021.05.31 15:17
  • 기자명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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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양의 중세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자주 접하다 보니 한가지 취향이 생겼다. '화려함'보다는 '처절함'과 '구질구질함'에 끌리는 것이다. 목조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곰팡이 섞인 습기, 진흙으로 엉망이 된 거리, 지우개를 씹는 것만 같을 질감의 빵과 감자.  책과 미디어로 서양의 역사를 배운 내 입장에서는 이런 '날 것'의 감성에 더 마음이 간다.

 

현실도 팍팍한데 굳이 이렇게 처절한 중세 시대 서민의 삶에 끌리는 이유란, 아마 게이머의 본능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중세를 배경으로 삼은 많은 게임이 진창의 밑바닥에 '이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해 나가봐라' 하며 플레이어를 던져놓는다. 역경과 고난이 있다면 일단 도전하는 것이 게이머의 본능. 여기에 '탈영병' '버려진 사생아'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 같은 태생적인 페널티까지 달고 있다면, 그 게임은 이미 라이브러리에 들어갈 자격을 갖춘 셈이다.

이번에 소개할 게임은 '시즈 서바이벌: 글로리아 빅티스'라는 게임이다. 배경은 중세 시대로 역시나 처절하게 '생존'을 목적으로 한다. 이 장르의 정점에 있는 '디스 워 오브 마인'과 닮은 점이 상당히 많다. 그래도 독특한 점은 성으로 공격해오는 적을 맞이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고를 수 있는 모드는 스토리 모드. '에드링 최후의 저항'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의 전반적인 플레이를 배울 수 있다. 일종의 튜토리얼의 개념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바로 실전에 돌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임은 '기본' '도전' '커스텀'으로 시나리오를 선택할 수 있지만, 처음엔 스토리 모드부터 시작해야 한다. 

게임의 배경은 1205년의 미들랜드 왕국의 '에드링'이란 곳이다. 수확을 앞둔 시기의 '에드링' 전역은, 카르갈드에서 온 잔혹한 바이킹 '이스미르'군에 의해 습격을 받는다. 마을을 지키던 경비병이 이에 맞섰으나, 적의 수는 너무 많았다. 이스마르군은 거리와 광장에 남은 시민들을 무참히 살해했고,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성의 안쪽까지 몰리게 된다.

 

현재 성은 함락 직전까지 몰린 상황이고, 그동안 본적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까지 등장한다. 희망이란 불씨가 점점 꺼지는 상황에서 게임은 시작한다. 이제 플레이어는 도움을 요청하는 전령이 성문을 나갔기를, 그리고 무사히 지원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수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경비부대와 몇몇 생존자만 남은 상황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성벽 안의 생존자들뿐만 아니라, 성의 운명에 목숨을 건 병사들까지 책임져야 한다.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캐릭터는 '일꾼' '잡부' 같은 중세시대의 일반 시민들이다. 직접 칼이나 화살을 들고 병력에 대항하는 역할이 아니라, 그들을 지원하고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버티는 사람들이다. 이제부터 최대한 식량과 자원을 모으고, 공격해오는 적을 맞이해 싸워야 한다. 

 

'시즈 서바이벌'은 크게 낮과 밤으로 나뉜다. '디스 워 오브 마인'처럼 낮에는 자원을 활용해 제작과 생산을 하고,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성 바깥의 도심으로 나가 다양한 자원과 아이템을 수집한다. 낮에는 창고와 보관소의 자원을 확인해 얼마나 남았는지, 또 얼마나 필요한지 확인해야 한다.

 

자원을 활용하면 '그루터기' '작업대' '화덕'을 건설할 수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은 건설에 '안전지역'과 '위험지역'이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성은 포위되었고, 적의 공격은 계속 이어진다. 적의 공격에 노출된 위험지역엔 투석기의 암석이나 불화살이 떨어진다. 이 위험지역에 설치한 건축물은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이럴 경우엔 다시 자원을 소모해야 한다. 자주 사용하는 건축물은 좁지만, 안전지역에 건설해야 적의 공격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

생존한 캐릭터는 허기, 갈증, 피로, 상처와 질병 등 다양한 상태를 꾸준히 확인해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버틸 수 있지만, 특정  상태가 심해지면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상처가 생긴 캐릭터는 붕대를 감아주고, 질병에 걸렸으면 약을 먹여야 한다. '하루 정도는 버티겠지' 하고 내버려 뒀다가는 캐릭터가 사망할 수도 있다. 

 

각각의 캐릭터는 고유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처음 조종하게 되는 일꾼 '플린트'의 경우에는 인벤토리의 보유량이 다른 캐릭터보다 많고, 잡부 '버트럼'은 건설에 소모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스토리 모드에서는 '플린트'와 '버트럼' 외에도 다른 캐릭터를 영입할 수도 있다.

 

다른 캐릭터를 영입하는 방법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하는데, 플레이어는 그때마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이 선택에 따라서 특정 아이템을 얻을 수도 있고, 다른 캐릭터를 영입할 수도 있다. 물론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가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서는 캐릭터가 죽어버릴 수도 있다. 당연히 살아남은 생존자를 모두 살릴 수 있다면 좋겠으나, 현재 상황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 하나의 캐릭터를 영입한다는 것은 거기에 맞춰 필요한 자원이 더 들어간다는 뜻이다. 양심의 저울질에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모든 캐릭터를 살릴 수 없는 상황이 반드시 찾아온다. '프로스트 펑크' '디스 워 오브 마인' 같은 생존 게임을 해본 게이머라면 이 절대적인 게임 규칙이 플레이어를 얼마나 시험하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시즈 서바이벌' 에서의 밤은 짧게 느껴진다. 밤을 보내지 않고, 낮이 올 수 없는 것처럼, 시즈에서의 밤은 생존에 꼭 필요하다. 일단 밤이 되면 지친 캐릭터를 쉬게 할 수 있고, 상태가 괜찮은 캐릭터는 정찰을 보내 다양한 아이템과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처음에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제한되어 있지만, 구역을 돌아다니면서 지름길을 찾으면 정찰지역을 확대할 수 있다. 

 

최대한 부족한 아이템, 꼭 필요한 아이템 위주로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져갈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 '이번에는 일단 놔두고, 내일 밤에 와서 가져가야지’ 라는 생각이라면, 음식은 발견한 당일날 챙겨가야 한다. 시간을 미뤄두면 음식이 상하게 되고, 더 놔두면 쓰레기가 되기 때문이다.

 

도시 곳곳에는 정찰병들이 순찰을 하고 있는데, 이들의 눈을 피해 도심을 탐색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정찰병의 시야를 확인해야 한다. 잠입 액션 게임 '코만도스'나 '데스페라도스'와 비슷하다. 시야나 발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은밀하게 움직여야 들키지 않는다.

 

때에 따라서는 정찰병과의 전투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이때 전투에 특화된 캐릭터라면 쉽게 경비병을 물리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부상을 피할 수 없다.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적들의 병력이 몰려오고, 다음 정찰부터는 더 많은 정찰병이 도시를 순찰한다. 최대한 안 들키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 곳곳의 잡동사니를 뒤지고, 흙더미를 삽으로 파내고, 부패한 시체를 횃불로 태우다 보면 새로운 지역을 해금할 수 있다. 도시 각각의 구역은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의 종류가 다르고, 그 수량도 다르기 때문에 순찰에 나가기 전에 잘 확인하는 것이 좋다. 이미 모든 아이템을 수집한 지역을 굳이 다시 정찰할 필요는 없다. 

 

어둠에 잠긴 '에드링' 곳곳에는 아직 생존자들이 남아 있다. 이들을 만나서 동료로 영입할 수도 있고, 또 이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서로의 아이템을 교환할 수도 있다. 선택은 플레이어의 몫이다. 하지만, 밤은 낮보다 짧다. 아이템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는 것도 좋지만, 다가오는 낮을 버티기 위해 뭐가 제일 필요한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필요한 걸 챙겼으면 재빨리 성 안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즈 서바이벌'의 첫 번째 목표는 캐릭터가 살아남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보루를 향해 달려드는 바이킹을 막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벽 위의 병사들을 잘 준비시켜야 한다. 적의 다음 공격은 캐릭터의 정찰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다. 그 병력은 얼마 정도 인지, 남은 기간은 얼마인지를 알 수 있다. 다음 공격에 맞춰서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

 

보루에 공급해야 할 첫 번째 아이템은 물과 음식이다. 캐릭터들의 식량뿐만이 아니라, 보루에 있는 병사들까지 음식과 물을 공급해줘야 한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 혹은 보루의 병사 중 한쪽은 굶주림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병사들이 싸울 수 있는 도끼나 검, 그리고 갑옷, 화살, 벽돌도 일정 수량 보급해야 한다. 구해온 자원을 캐릭터의 생존에만 사용하다 보면, 요새는 쉽게 함락된다. '생존'과 '방어' 사이에서 아이템의 배분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병사들도 다치고 병에 걸린다. 당연히 붕대와 약도 늘 비축해놔야 한다. 이를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성벽의 병사 숫자는 줄어들게 된다. '시즈 서바이벌'에서 느껴지는 처절함이란 바로 캐릭터들의 생존과 병사들의 생존, 양쪽 모두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다.

'시즈 서바이벌'은 서양의 중세, 바이킹, 공성전 그리고 생존을 위한 크래프팅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분명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물론, 장르의 특성상 자원의 밸런스가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돌이키기 어렵다는 점, 게임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지루함은 단점이다. '디스 워 오브 마인'이 자꾸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즈 서바이벌'이 담아내고자 한 재미를 완전히 가릴 정도는 아니다. 

 

다회차 플레이를 할 만한 게임은 아니지만, '중세' '생존' '디펜스' 같은 장르를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끌릴만한 것이 많다. '부족한 자원의 운용' '한쪽을 죽일 수밖에 없는 선택'으로 고민하는 것을 즐기는 게이머라면, '악전고투'의 처절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한 번쯤 플레이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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