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신들의 저주(Curse of the Dead Gods), 묵직한 전투가 돋보이는 로그라이크

  • 입력 2021.03.22 11:44
  • 수정 2021.03.22 13:46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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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로그라이크’ 장르를 들고 나오는 게임들은 슈퍼 자이언트 게임스(Supergiant Games)의 ‘하데스’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뛰어난 전투 시스템과 더불어 방대한 내러티브의 영역을 보여준 ‘하데스’는 ‘로그라이크’ 장르의 새로운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그런 면에서 ‘죽은 신들의 저주(Curse of the Dead Gods)’가 ‘하데스’를 닮아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뛰어난 레벨 디자인과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액션 시퀀스를 보면서 누구나 ‘하데스’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해 본 결과, ‘죽은 신들의 저주’는 ‘하데스’의 그림자를 아주 쉽게 벗어버렸다. 이 게임은 복잡한 스토리텔링은 제쳐두고, 전통적인 ‘로그라이크’ 장르에 다가서는 방법을 택했다. 더 전통적이지만, 결코 구시대적이지 않은 경험을 제공하였다. 저주가 쌓이면서 타락해 가는 주인공을 통해 내리기 힘든 결단을 강요하고, 새로운 전술을 추가하면서 전투의 향방을 자연스럽게 설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게임은 ‘하데스’처럼 텍스트의 양으로 승부하는 게임이 아니다. 저주받은 사원에 던져진 한 사내가 무기와 자신을 갈고닦으면서 한 단계씩 전진하는 방식이다. 전체적인 인상은 아주 좁은 의미의 ‘로그라이크’ 장르로 보이지만,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저주’와 밀고 당기는 전개 덕분에 매우 진지하게 임할 수 있다. 거기에 매 전투마다 묵직한 타격감을 선사하기 때문에 플롯이 실종되었다거나 부실한 스토리텔링을 탓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게임의 배경은 빛과 어둠으로 갈린다. 주인공이 횃불을 들고 전방을 비치면 몬스터들과 트랩을 확인할 수 있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면 받는 대미지가 50%로 상승한다. 불행히도 이 저주받은 사원 안에서 빛을 구경하리란 쉽지 않다. 화로나 몬스터에게 불을 붙여 사방을 환하게 하거나 주인공 자신이 횃불을 들고 다니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몬스터 앞에서 무기를 꺼내는 그 순간에 횃불은 꺼질 수밖에 없다. 사나운 몬스터는 화로를 망가뜨리기도 하기 때문에 게이머는 시종일관 어둠 속에서 전투를 치러야 할 것이다. 주인공에게 주어진 첫 번째 능력은 스태미나를 소비하는 회피 기술이다. 몬스터들의 공격과 트랩은 회피로 피할 수 있으며 한 번 회피할 때마다 스태미나 포인트가 1 감소한다. 스태미나 포인트는 총 5개로 주인공 하단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잠시 공격이나 회피를 멈추면 스태미나는 빠르게 충전된다.

스태미나 포인트는 기본 무기 공격의 결정타, 그러니까 연속 콤보의 마지막 타격에서도 1 감소하고, 보조 무기에서도 감소한다. 보조 무기는 보통 ‘범위 무기’로 불리며 총이나 활이 장착되는데 방어에 쓰이는 방패나 공격용 채찍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양손 무기는 공격할 때마다 스태미나를 소비하기 때문에 그 공격력이 기본 무기 공격의 3배 이상은 된다. 위와 같이 기본 무기와 보조 무기, 양손 무기 모두 따로 장비할 수 있기 때문에 전술을 바꿔가며 싸울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던지는 단검을 기본 무기에 장착하고, 번개 효과가 있는 망치를 양손 무기에 장착하는 식이다. 던지는 단검의 대미지가 적어서 장착을 피할 수 있지만, 핵앤슬래시(Hack and Slah) 형식의 전투가 시작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독을 뿜어내는 몬스터나 불렛을 쏟아내는 보스를 만나면 던지는 단검이 꽤 유용하게 쓰인다. 보조 무기는 기본 무기 공격 이후에 연결되는 ‘오프 핸드 콤보’라는 것이 있지만, 그다지 많이 쓰이는 편은 아니다. 전투가 치열해지면 회피에 감소되는 스태미나가 절실해지기 때문에 대부분 전투는 기본 무기와 양손 무기의 병행으로 이루어진다.

‘패링’ 기술도 있지만, 그리 쉬운 편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게이머들에게는 외면 받을 것으로 보인다. ‘로그라이크’라는 특성 때문에 이 게임은 체력 관리가 힘든 편이다. 나중에는 중간 보스도 등장하고, 까다로운 몬스터들도 다수 포진해 있기 때문에 무사히 지나가기가 쉽지 않다. 물론 ‘패링’을 무조건 외면할 이유는 없다. 패링에 성공하면 몬스터가 약해지면서 더 많은 대미지를 줄 수 있고, 스태미나 포인트가 2개나 회복된다. 개인적으로는 회피 기술을 쓰면서 싸우는 게 더 속 편했지만, 능숙해지기만 한다면 연속 콤보인 ‘Greed Kill’을 노려볼 수도 있다. 몬스터들을 연속으로 무찌르면 ‘Greed Kill’ 포인트가 올라가면서 얻는 골드가 늘어나고, 전투의 흐름도 꽤 재밌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게임의 핵심인 ‘타락’은 각 스테이지로 이동할 때마다 20이 늘어난다. 타락 게이지가 100을 넘을 때마다 ‘저주’에 걸리게 되는데 일종의 핸디캡으로 이해하면 된다. 총 다섯 번까지 ‘저주’가 꽉 차게 되면 체력이 계속 깎이는 일까지 벌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게임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 ‘저주’라는 시스템을 무조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동상들이 트랩으로 바뀌거나, 골드가 들어있던 항아리가 비어 버리는 등 대부분은 게임 진행에 있어 큰 장애는 아니기 때문에 미리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공물을 신에게 바치면 가끔 타락 포인트를 깎아주고, 중간 보스를 해치우면 아예 저주 하나를 없애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이 게임에서는 타락 게이지를 놓고 계속해서 타협할 것을 강요한다. 안식처에서 체력을 채우거나, 더 강력한 무기를 얻는 대가로 타락 게이지를 받는 것이다. 물론 이 타협에서 너무 큰 양보를 해 버리면 진짜 까다로운 저주에 걸릴 수도 있다. 스테이지 이동 없이 타락 게이지가 채워지거나, 횃불을 더이상 쓸 수 없게 되어 버리면 보스전에서 맥없이 물러날 수도 있다. 특히 스태미나 포인트가 1이 없어지는 저주에 걸리면 결정타조차 날리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전투 자체가 힘들어진다.

게임은 총 9개의 레벨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레벨을 클리어할 때마다 다음 레벨이 잠금 해제된다. 그럴 때마다 보상으로 얻어지는 수정 해골과 비취 반지는 이 게임의 화폐 개념으로, 영구적인 업그레이드를 제공한다. 타격을 받으면 6초 동안 50%의 대미지를 주거나, 탐험 시작 시 1000 골드와 5 체질을 얻게 하는 등 다양한 버프를 받는다. 레벨을 시작할 때마다 제단에서 무기를 받아갈 수 있게 하는 것도 수정 해골과 비취 반지를 소비한 덕분이다. 더 많은 화폐를 소비하면 제단과 무기는 늘어나고, 추가 효과도 얻어갈 수 있다.

이 게임에서 사용되는 무기들이 흥미로운 편은 아니다. 번개나 독 효과를 부여하고, 치명타 확률을 높이는 등 여타 게임들의 모조품을 보는 듯하다. 다만 전투가 시작될 때마다 화려한 광원 효과가 동반되고, 패드에 진동이 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타격 비주얼이 아주 화려하다. 화면을 흔들리게 하는 약간의 트릭을 쓰기는 했지만,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전투가 물 흐르듯이 이어진다. 아마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이런 모습에서 ‘하데스’를 연상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암울한 분위기의 ‘디아블로’ 시리즈가 떠올랐다. 볼륨을 높이면 곳곳에서 저주를 읊는 소리가 들려 오고, 몬스터들이 제거될 때마다 그 음침하고 더러운 파편들이 재 뿌리듯이 흩날린다. 화면을 시뻘겋게 물들일 정도로 기분 나쁘게 만들지만, 매 전투는 역설적으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게임을 너무 느슨하게 전개하면 반복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각 스테이지의 보스들은 그 패턴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이니 되도록이면 30시간 안에 최종 클리어하는 것이 좋다. ‘로그라이크’ 장르답게 지도는 랜덤으로 나타나지만, 골드를 얻거나 트랩을 피하는 패턴이 익숙해질 때가 온다. 무기나 저주에 운이 나쁘게 작용한다면 게임이 더 지루해질 수도 있으니 빠른 시간 안에 끝내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죽은 신들의 저주’는 뛰어난 전투 시스템과 체력 게이지에 접근하는 독특한 방식 덕분에 스토리가 실종됐다는 핀잔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게임이다. 게이머들이 전반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단점들을 잊어 버릴 정도였으며, 만회까지 하는 몇 안 되는 게임이다. 그런 면에서 이 게임은 ‘하데스’가 아니라 ‘로그라이크’ 장르에 영향을 받은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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