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아쉬운 시작. 모바일 '그랑사가' 리뷰

  • 입력 2021.01.29 15:55
  • 기자명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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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모바일 게임은 이제 기존에 있던 것에서 뭔가를 추가하는 방식보다는 오히려 약간 덜어내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출시된 모바일 RPG를 가만히 보면, 누가 더 많이 담아냈나를 겨루기라도 하는 듯 볼륨과 콘텐츠의 '양'에만 집중하고 있다.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뭔가 많으면 많을수록 게임의 오리지널 스토리나 서사구조가 기억에 남는다거나, 캐릭터의 독특한 개성이 느껴지거나, 게임 자체의 독특한 시스템을 체험해보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모바일 플랫폼에서 게이머가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다는 건, 약간만 비틀면 어디에서든 과금이라는 요소가 걸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많이 집어넣었으니 뭐 하나는 걸리겠지'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이런 게임사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게임들이 종종 보이기도 한다. 

 

모바일 게임이 남기는 경험은 결국, '지갑을 턴 만큼 내가 돋보일 수 있는지, 무과금 유저와의 격차는 어느 정도 인지' 정도에 국한된다. 이런 플레이 방식을 인정하고, 자본력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게이머들을 나는 '프로'라고 지칭한다. 물론 단순히 관람하는 재미와 'P2W'이라는 단순한 규칙이 마음에 들어 모바일 RPG를 좋아하는 게이머들도 많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프로'들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 소모까지 모두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다.

모바일 게임의 유저는 크게 이런 방식을 수용할 수 있는 '프로'들과, 그들의 플레이 방식에 반감을 갖고, '도박이 아니라 게임'을 원하는 게이머들로 나뉜다. 게임을 내놓는 게임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전자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적인 요소를 원하는 '무과금 유저'를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줘도 뭐라 하고, 또 없으면 불평을 해대는 게이머들을 달래는 게임사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그러다 보니 악순환은 반복된다. '어떤 취향일지 몰라서 다 가져와 봤어'로 시작한 후 '그중에 뭐라도 하나 걸리면 되겠지'라는 게임들이 정말 많다. 일단 '어차피 욕먹을 거면 일단 넣고 보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시작부터 '한국 모바일 게임판의 현주소'의 거창한 주제를 마치 뭐라도 통달한 사람인 마냥 열심히 설명하는 이유는, 이번에 소개할 게임이 바로 '한국 모바일 게임의 현재'를 보여주는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로들의 게임' '다다익선' '뭔가 하나 걸려들겠지'의 그 가치가 담겨있는 게임. 개인적으로 이 게임의 정확한 색깔이 어떤 것인지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게임. 바로 '그랑사가' 다.

'그랑사가'는 게임 곳곳에서 '어딘지 모를 익숙함' 느껴진다. 작년 이맘때쯤 리뷰한 적 있는 '그랑블루 판타지 시리즈'나, 최근 많은 인기를 얻은 '원신'의 분위기와 많이 닮아있다. 이제는 이런 말랑말랑한 느낌의 배경과 캐릭터, 몽환적인 일러스트가 대세로 자리 잡은 모양이다. 이런 유행을 그대로 이어가는 '그랑사가' 역시 다른 게임과 비교되는 것을 피할 순 없어 보인다.

 

'열혈 소년기사' '비밀을 품은 소녀 마법사' '시크한 딜러 언니' '누가 봐도 탱커인 딴딴맨' '말 안 듣는 요정' 등 RPG 요소에서는 빠질 수 없는 캐릭터. 이는 순서의 문제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는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표절 논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어 보이는 분위기와 때깔이다. 등장하는 캐릭터부터, 게임의 NPC, 배경, UI 등 전반적으로 '어디서 본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계속 떠오른다.

 

그래도 게이머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놨다. 초반에 선택하는 3명의 캐릭터의 외형을 조금 꾸밀 수 있다. 일반적인 3D RPG 게임에서 제공하는 커스터마이징의 수준은 아니지만, 헤어스타일이나 외모는 조금 바꿀 수 있다. 같은 캐릭터를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게이머의 취향에 맞춰 각각의 개성을 조금 살릴 수는 있다.

익숙함이 느껴져서 그렇지, 전반적인 캐릭터의 모델링이나 컷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깔끔하고 잘 다듬어졌다. 특히 게임을 진행할 때만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체 스토리 컷신과 애니메이션을 끊지 않고 하나로 이어가는 점은 좋다. PC나 콘솔에서 사용하는 '인게임 시네마틱'을 담아냈는데 모바일 플랫폼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나쁘진 않은 수준이다.

 

플레이하는 3D 캐릭터와 일러스트의 차이가 큰 게임, 배경과 캐릭터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게임이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그랑사가'는 조화가 잘 이루어진 티가 난다. 잘 가꾸고, 다듬은 게임이다. 3D 캐릭터와 일러스트의 간격도 그다지 크지 않다. 전반적으로 조화는 잘 이뤄졌다. UI, 월드맵 배경과 캐릭터의 조율은 '그랑사가'가 얼마나 힘을 줬는지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문제는 이 수준 높은 그래픽과 때깔에서 '어? 이거 그게임 아니야?'라는 생각을 쉽게 떨쳐낼 수 없다는 점이다. 다 좋다. 예쁘고 잘생겼다. 근데 너무 익숙하다. 그렇다면 게임 내적인 부분에서 이 캐릭터들의 개성을 살려야 하는데, 여기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그랑사가'도 '수집형'이라는 틀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전투는 자동으로 진행되고, 퀘스트는 챕터가 아닌 오픈 월드에서 진행하는 방식이다. 캐릭터는 물, 불, 바람, 어둠 등의 특성과 물리, 마법 형태의 공격속성을 갖는다. 오픈월드 실시간 전투다 보니, 주변의 다른 게이머와 함께 퀘스트를 진행할 수도 있고, 또 네임드 몬스터는 별도의 파티 없이 필드에서 바로 함께 공격할 수 있다. 전반적인 전투의 타격감이나 캐릭터 모션의 수준은 매우 높은 편. 특히, 스킬 이펙트가 과하지 않아서 적이 사용하는 바닥 스킬이 선명하게 보인다.

 

3명의 캐릭터를 한팀으로 묶을 수 있고, 전투 중에 캐릭터를 교체하면 '태그 어택'이라는 스킬이 발동한다. '태그 어택'은 캐릭터마다 서로 다른 효과가 있고, 발동하면 쿨타임이 적용된다. 꼭 고정된 하나의 팀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다양한 조합의 팀을 꾸려서 프리셋으로 저장할 수도 있다. 상황에 맞춰 캐릭터를 교체하거나, 아니면 팀의 구성을 빠르게 변화할 수 있는 것이 '그랑사가' 전투의 특징이다.

 

겉으로 보기엔 '정해진 캐릭터들을 잘 조합해서 팀을 만들고, 속성에 맞춰 태그하는 전투의 재미'라고 보이지만, 사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랑사가'가 얼마나 빽빽하게 준비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캐릭터가 적다고 안심할 순 없다. 어쨌든 이 게임은 철저히 '수집형 RPG'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게이머가 수집해야 하는 것 중 가장 첫 번째는 '그랑웨폰' 이라는 게임의 핵심 시스템이다. '그랑웨폰'은 말 그대로 캐릭터에 장착할 수 있는 일종의 무기와 같은 개념이다. '그랑웨폰'은 등급과 초월에 따라 일반 스킬, 패시브 스킬, 해방 스킬을 개방할 수 있다. '무기'라고는 하지만 인간이나 정령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캐릭터에 장착할 또 다른 캐릭터'를 모으는 셈이다.

 

캐릭터는 성장하면서 최대 4개의 그랑웨폰을 장착할 수 있다. 즉, 하나의 캐릭터에 'SSR'을 4개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랑웨폰'과 비슷한 개념의 '아티팩트'와 '방어구'도 맞춰줘야 한다. 정리해보자면 '그랑웨폰' 4개, '아티팩트' 4개, '방어구' 8개. 하나의 캐릭터가 채워야 하는 슬롯이 총 16개다. 하나의 팀을 운영한다면 3명의 캐릭터, 모든 캐릭터를 사용한다면 6명의 캐릭터에 이 수많은 아이템이 필요하다. 나올 때까지 뽑는다고 끝이 아니다. 여기에 레벨업, 극초월, 강화, 각인 등 기존의 온갖 스펙업 콘텐츠를 거쳐야한다. 

 

'수집형 RPG'답게 제대로 된 캐릭터를 갖추고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게이머가 선택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조금 뒤쳐지겠지만, 처음부터 욕심내지 않고 차근차근 게임을 즐기면서 업그레이드하는 것.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앞서 언급한 '프로'처럼 플레이하면 된다.  

결혼식장의 뷔페에 가면 '먹을 건 많은데, 막상 끌리는 게 없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겐 '그랑사가'가 딱 그런 느낌이다. 게임의 출시 전부터 '우리 정말 많이 준비했어요. 열심히 했어요. 보여드릴게요' 를 말해왔고, 출시에 맞춰 인기 BJ와 스트리머들이 '그랑사가'를 방송하고 있다. 보는 것은 재미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하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게임이 말랑말랑 예쁘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아 보이는데 뭔가 끌리진 않는다. 내가 과연 저 많은 아이템을 모으는 시간을 참을 수 있을지, 그 정도로 오랫동안 이 게임을 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엔픽셀'의 첫 시작인 작품이고, 그만큼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았다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줘서 그런지 쉽게 시작하기가 어렵다. 

 

첫 시작을 멋지게 보여주려 노력한 것은 느껴지지만,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조금 덜어내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최근 나오는 모바일 RPG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조금 힘을 빼고 중요한 것 몇 가지만 집중하는 것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분명 나쁘지 않은 게임이지만, 너무 많고 빽빽하다. '수집' 그 자체를 즐기는 '프로'라면 모르겠지만, '적당히'를 선호하는 내겐 아직 감당하기 어려운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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