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솔로, 국내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의 터닝 포인트가 되길

  • 입력 2021.01.12 17:11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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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카바 인터랙티브’의 <모태솔로>는 ‘인터랙티브 무비’라는 장르 외에도 여류 감독인 ‘페니 마샬’식의 순수성도 엿보이는 게임이다. 영화 <빅>에서 톰 행크스의 건반 두드리기를 연상하면 그 순진함에 코웃음이 나올 수 있지만, 어른들이 강요하는 사회성이 왜 부작용을 낳는지에 대해 더 큰 의미를 두기도 한다. 그녀의 작품에는 열정이 있지만, 유아틱하다는 아이러니 덕분에 어른들을 향한 풍자가 더 도드라졌고, 지금까지도 꽤 가치 있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솔로 탈출이라는 테마로 개발된 이 게임이 청정 구역의 유기농 순양처럼 느껴지는 건 그래서 꽤 반가운 일이었다. 장르 특성상 국내에서 그리 많은 시도가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대사들이 워낙 ‘아재 개그’식이고, 끈기가 있어서 외면하기 힘들 정도였다. 비록 대사 중간중간이 붕 떠 있고, 개연성은 찾기 어렵지만,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간편한 인터페이스가 게임을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3인 체제로 개발된 이 인디 게임이 국내 ‘인터랙티브 무비’의 터닝 포인트가 되려면 더욱더 자연스러운 전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순수성이 유머로 이어지는 아이러니 덕분에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급격히 동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게임은 국내 인디 개발진들에게도 큰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게이머는 IT 회사에 다니는 29세 남자 강기모(배우 박찬호)와 김유미(배우 이다영)의 소개팅 자리에 끼어들게 된다. 모태솔로라는 주제답게 강기모의 시선을 따라가도록 되어 있다. 게임의 대부분이 강기모의 입장에서 진행되고, 중간중간에 소개팅 성공 비법을 열변하는 두 사람의 캐릭터가 있다. 여기에 모 BJ 여성까지 등장하는데 게임을 푸는 열쇠라기보다 부가 콘텐츠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게임의 소개팅 기회는 단 한 번뿐으로, 총 다섯 번 재시작을 할 수 있게 하면서 놓친 영상들을 골고루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스트리밍’ 개념을 도입해서 재시작 횟수를 제한한 것인데 옵션에서 해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개발진이 제작한 영상들을 모두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히스토리가 저장이 되면서 재시작 지점부터 마지막 엔딩까지 자동으로 사라지게 되니 주의할 필요는 있다. 예를 들어서 유미의 기분을 제대로 맞춰주지 못 한 탓에 게임이 그대로 끝이 나면 다행이지만, 수월하게 엔딩까지 갔다면 재시작 지점부터 게임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물론 ‘스킵(skip)’ 시스템이 있지만, 영상 한 챕터가 통째로 날아가기 때문에 지나간 스토리들을 충분히 숙지할 필요가 있다.

게임은 현재 얼리 엑세스(Early Access) 기간으로 해피엔딩 2개와 배드엔딩 2개가 준비되어 있다. 내년 상반기에 출시할 정식 버전에서는 4개의 엔딩과 그에 관련된 스토리들이 추가될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게임의 영상들을 모두 보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종 엔딩까지 가는 길이 그리 순탄한 건 아니다. 단 한 번의 선택으로 게임 오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꽤 신중해야 한다. 그만큼 솔로 탈출이 어렵다는 개발진의 메시지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강기모라는 캐릭터가 의외로 진상이라는 문제가 있다. 상호작용 기회가 별로 없는 것도 문제지만, 사소한 선택 하나 때문에 남자들도 고개를 돌릴 정도로 촌극을 벌이기도 한다. 그에 따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할 것 같지만, 유미의 반응도 의아한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이 소개팅은 1시간도도 아니고, 10분도 못 가서 배드엔딩으로 갈 운명으로 보이지만, 게임은 그러한 과정을 무시하고 전개하기 때문에 사실상 개연성을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게임이 일관성이 있고, 끈기가 보여서 결국은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이 온다. 막장 드라마가 시선을 끌고, 시청률이 높은 것처럼 강기모라는 캐릭터가 이상한 방향으로 갈수록 흥미를 유발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게이머가 해피엔딩으로 가려면 이런 광경을 포기해야 하지만, 유미가 기존 성격을 드러내면서 강기모를 일갈하는 장면이 제일 재밌는 것이다. 어쩌면 본인뿐만 아니라 게이머들도 계속 강기모가 솔로로 남길 희망할 수도 있겠다. 이상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 것도 개발진의 의도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의 전개가 매끄러운 건 아니다. 게임의 상호작용이나 선택의 지점들이 솔로 탈출과는 무관해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인터랙티브 무비’라는 장르에 부합하도록 설정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빈틈이 있었던 것 같고, 얼리 엑세스 기간이라는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강기모가 유미한테 추천할 만한 티(Tea)를 카페 게시판에서 미리 물색하는 이 단순한 과정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는 건 그만큼 인상적인 전개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 소개팅 여성의 취향이나 기분을 알아낼 수 있도록 더 다양한 실마리가 추가되면 게임에 집중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또 한 가지는 의미 없는 대사들이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솔로 탈출이나 소개팅과는 별개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나누는 대화와도 거리가 있어 보였고, 어색한 지점도 많았다. 캐릭터들이 구사하는 어조나 단어들도 의외로 순진해서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는 게이머들에게는 실망감을 줄 수도 있다. 대사 곳곳에 넣어둔 유머 코드들도 모두 ‘아재 개그’ 스타일로 보이는데 혹자는 손발이 오글거려서 집중하기 힘든 부분일 수 있다. 개발진의 연령대를 알 수가 없지만, 트렌드에 민감한 청소년 세대나 젊은층의 감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 보이는 건 오롯이 본인의 기분 탓이 아니길 바란다.

그래도 다행히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럽고 재치가 있다. 개발진이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것처럼 배우들의 연기가 없었다면 게임 모태솔로도 없었을 것이다. 어색한 대사를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주고받으면서 게이머가 심심한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강기모의 시선을 빼앗은 붉은 원피스의 여성은 솔로 탈출이라는 테마와 무관하게 해당 여배우의 무대를 마련한 것으로 보였다. 노골적으로 소개팅 자리를 망치려는 이 붉은 원피스의 여성에게 소비된 시간은 꽤 길었다. 소개팅 자리에 나온 유미와 갈등을 겪는 강기모는 넷플릭스의 검색 태그 중에도 나온 것처럼 그야말로 ‘푼수 캐릭터’로 전락하고, 의도치 않게 웃음을 자아낸다.

<모태솔로>는 스팀에서 ‘한국어 지원’을 애써 찾는 게이머들뿐만 아니라 ‘인터랙티브 무비’ 팬들에게도 꽤나 반가운 게임일 것이다. 솔로 탈출과 소개팅, 처음 만나는 여성과의 어색한 순간을 그렸다는 점에서 친근하다는 장점도 있다. 지금 생각해도 주고받는 대사나 흐름이 고개를 갸웃하게 할 정도로 어색한 면은 있지만, 오랜만에 국내 인디 게임 시장에서 가치 높은 콘텐츠가 등장한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이 게임은 간편한 인터페이스뿐만 아니라 영상미 자체의 퀄리티도 높은 편이라서 개발진의 미래가 매우 밝다고 볼 수 있다. 3인 체제로 완성됐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아서 인디 게임 시장에 발을 들이려는 초보 개발진들에게 상징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스팀으로 출시된 이 게임은 추후 굿즈 판매와 동시에 여러 이벤트를 준비해 놓았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가 활성화되면서 무명 배우들의 무대도 커질 것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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