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사이버펑크 2077 리뷰, 버그로 뒤덮인 나이트 시티… 그래도 아름다웠다

  • 입력 2020.12.13 12:31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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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프로젝트 레드 스튜디오’가 <사이버펑크 2077>를 발표한 지 벌써 8년이 가깝게 지났으며, 그동안 국제 정세는 빠르게 급변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2019년,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 쇼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모습을 드러낸 시점을 전후로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사건들이 속속 터지고 있었다. 2018년 8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앞에서 폭발물을 탑재한 드론이 굉음을 일으키면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고, 이듬해 9월에는 예멘 반군의 소유로 추정되는 드론들이 사우디의 아브카이크 정유 시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드론으로 인해 베네수엘라 군인들 일곱 명이 부상 당할 쯤에는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었다. 국방수권법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동맹국들에게 중국의 화웨이 제품을 쓰지 말라는 요구가 빗발친 것이다. 정보 기밀을 공유하는 이른바 ‘파이브 아이즈(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는 화웨이의 제품들이 기밀을 훔치고 있다며 강경 대응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이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화웨이의 5G 기술을 경계한다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5G 기술을 당장 받아들이지 않으면 시대에 뒤쳐진다는 불안감 탓에 파이즈 아이즈 국가들은 화웨이 제품들을 전면 금지하지는 않기로 했다.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통하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는 인체 삽입형 ‘칩 인플란트’를 선보였다. 안테나와 회로로 구성된 이 칩은 화폐 없는 세상을 꿈꾸는 스톡홀름의 비전과 들어맞으면서 사이보그의 첫 단계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칩 인플란트’를 개발한 에피 센터의 직원들은 손에 인식된 칩을 통해 물건을 결제하고, 티켓 없이 철도를 이용하고 있었다. 사생활 침해, 이른바 ‘빅 브라더스’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정보 유출을 염려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사이버펑크 2077>은 위와 같은 국제 정세를 복합적으로 해석하면서도 기업의 자본주의적 태생을 강조하고 있다. 2016년을 기준으로 기업 전쟁이 시작되면서 미국의 대붕괴와 통일 전쟁을 거쳐 ‘나이트 시티’라는 배경을 탄생시켰다. 미국의 붕괴는 연방제의 막을 내리는 신호탄이 되었고,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살인과 테러까지 서슴지 않았다. 특히 밀리테크와 아라사카의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정보전은 세계 무역까지 마비시켰다. 결국 유럽과 아시아가 안정을 되찾았지만, 자연 재해와 기후 변화로 인해 많은 인구가 사망했으며 난민 문제와 치솟는 범죄율로 ‘나이트 시티’는 무법 천지가 되었다.

게임의 배경이 되는 ‘나이트 시티’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창의적인 건축물들로 치장된 가상의 도시다. 오프닝은 다소 투박하지만, 렌즈 플레어 효과와 함께 들어오는 도시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경외감이 들 정도다. 도시를 가득 채운 시민들은 피부에 기계를 이식하는 이른바 ‘사이버웨어’의 발달로 시선을 훔치고 있다. 게이머도 직접 체험하겠지만, 기계를 이식하는 과정은 일반 피어싱과 비슷해 보인다. 실제 스톡홀름에서도 팔과 목 부위에 문신으로 도배한 남성이 ‘칩 인플란트’ 시술을 하고 있었다. 에피 센터에서 군사 영역을 강조한 것처럼 ‘사이버웨어’는 상이군인들의 귀국으로 발달이 가속화됐다. 더 깊이 들어가면 ‘사이버웨어’는 구시대적인 0세대를 시작으로 부유층과 권력층을 위한 4세대로 발전했다. 물론 게임에서는 전투에 최적화된 ‘사이버웨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게이머는 노마드, 부랑아, 기업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재키 웰즈라는 사내와 함께할 것이며 덱스터 드손과 이블린 파커라는 의뢰인을 통해 아라사카의 음모에 발을 내딛을 것이다. 게임은 시종일관 시니컬한 태도로 일관하기 때문에 스토리를 숙지할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한 편은 아니다. 금융이 붕괴되면서 세계적으로 실업률이 치솟았고,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난민들이 바로 신생 계층인 노마드다. 이들은 자동차로 전국을 누비면서 패밀리, 클랜, 트라이브, 네이션이라는 단위로 쪼개졌기 때문에 서로 분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셋 중에는 기업 쪽이 아라사카에 더 긴밀히 접근해 있는 편이지만, 어느 곳을 선택하든 게이머는 V로 불릴 것이고, 그에 따른 스토리는 통일되어 있다.

이야기는 아라사카 요리노부가 탈취한 것으로 알려진 바이오 칩에 집중되어 있다. 상위 1%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뜻으로 ‘영혼의 안식처’로도 불리며 그들끼리는 ‘렐릭’으로 통칭하고 있다. V는 덱스터 드손이라는 거물급 브로커를 접촉하면서 바이오 칩을 가져올 것을 의뢰받는데 그 뒤에는 이블린 파커라는 여성도 존재한다. 게임은 브로커와 의뢰인들이 끼어들면서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키아누 리브스를 모델로 한 조니 실버핸드를 만나면서 목적은 명확해진다.  

‘나이트 시티’는 매우 광활한 도시다. 지도를 펼치면 게이머의 평판을 바꿔 줄 만한 미션부터 부가적인 미션, 아주 자잘한 미션까지 다양하게 표시되어 있다. 메인 미션을 제쳐두고 ‘나이트 시티’부터 탐험할 마음을 먹었다면 게임의 플레이타임은 170시간을 족히 넘길 것이다. 반면 메인 미션만 파고든다면 18시간에서 30시간이면 게임을 끝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캐릭터의 ‘스탯’이나 아이템 등 점검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나이트 시티’의 매력을 충분히 즐길 수 없게 된다.

‘나이트 시티’를 탐험할 이유는 명백하다. 개발진이 창조해 낸 도시 곳곳은 대부분 끔찍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V를 만나는 캐릭터들 대부분이 ‘사이버웨어’에 익숙한 어조로 나서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과 동경이 미묘하게 맞물린다. 테크노 섹슈얼이 점철된 유흥 업소와 거리들은 생경해 보이지만, 금기와 윤리를 비웃은 지 오래다.

그런데 이 광활한 ‘나이트 시티’ 뒤에는 ‘버그’라는 그림자가 무겁게 뒤덮고 있다. V가 시민들을 물리적으로 통과해 버리는 자잘한 버그부터 스토리가 진행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버그도 발견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연출 상 보여준 ‘암전’이 사실상 버그였다는 사실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검은 화면 뒤로 총성이 울렸고, 결국 게임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데 알고 보니 ‘카 체이스’의 거친 액션이 오가던 중이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나 볼 법한 멋들어진 연출이 이어졌지만, 버그로 인해 최고의 순간을 놓친 셈이었다. 게이머가 운이 나쁘다면 버그로 인해 발목이 잡히는 일도 생길 것이다. 대시를 하지 못 하거나 미션 방향이 엉뚱하게 설정되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미션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흐름이 우스꽝스럽게 흘러가기도 한다. 특히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버그가 생기면 게임을 아예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개발진은 몇 차례 게임 출시를 연기한 바 있다. 게이머들과 투자자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연기를 발표한 이유는 얼리 엑세스(Early Access)라는 오명은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이트 시티’는 매우 불안한 형태로 남아 있다. 지금도 이 도시에 들어가면 어떤 버그가 습격할지 두려울 정도다. 기업으로 시작했던 나는 미션 설정에서부터 버그가 나면서 대시도 되지도 않았으며, 특정 미션에서는 뜬금없이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나이트 시티’는 별개로 머릿속에는 유비소프트의 ‘와치 독스’ 시리즈가 떠올랐다. 카메라를 해킹해서 적을 교란하는 경우를 봐도 ‘와치 독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인식되기도 쉽다. 특히 자잘한 미션을 수행할 때마다 이른바 ‘유비식 오픈 월드’가 오버랩 되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본인의 사양은 인텔 i7-10700F, 램 16GB, 지포스 RTX 3070이었다. RTX 30 시리즈 중에서 3070도 매우 궁금할 텐데 4K 해상도에 30~50 프레임이 무리 없이 돌아갔다. 60프레임을 방어하고 싶다면 옵션을 조절해야 할 텐데 게이머들 대부분은 ‘레이 트레이싱’과 ‘dlss(딥 러닝 슈퍼 샘플링)’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엔비디아가 자신했던 부분인 만큼 굉장한 효과를 보여준다. 처음 경험한 본인도 1440p 해상도로 낮추면서까지 위의 두 가지 효과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나이트 시티’의 외관을 멋들어지게 포장해 준다.

RTX 3070으로 이 게임을 완벽히 체험할 수는 없는 건 확실해 보인다. 다만 캐릭터의 얼굴로 클로즈업 되는 순간에 프레임 드롭이 일어나는 알 수 없는 현상도 벌어졌다. 4K 해상도였지만, 전투 중이거나 ‘나이트 시티’를 지나가는 시민들이 불어나도 이 정도로 프레임 드롭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 역시 추후 업데이트를 통해 최적화가 필요해 보인다.

<사이버 펑크 2077>이 출시되기 직전까지 화제가 된 또 하나는 역시나 국내 성우진의 풀 더빙이었다. 더빙 제작이 이루어진다고 했다가 자막 제작으로 후퇴하면서 팬들의 아우성이 일어났지만, 지난 10월 9일, 한글날에 풀 더빙 제작을 깜짝 발표하면서 뜨거운 화제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성우진의 목소리 톤과 ‘나이트 시티’의 분위기와는 이질감이 들었다. ‘나이트 시티’는 활기찬 도시로 보이기도 하지만, 학대와 성폭행, 마약 등 대부분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마도 국내 성우진이 지금까지 밝은 애니메이션과 온라인 게임의 캐릭터만을 담당했던 영향도 컸을 것이다. 이처럼 욕설이 일상처럼 번진 대사는 시도해 본 경험조차 없을 것이다. 일부 성우의 목소리 연기는 사건과의 유기적 연결을 방해했으며 조연들의 어조에서는 조급함마저 보인다. 아마도 개발진의 깜짝 발표로 인해 제작 기간이 짧은 것이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국내 성우진이 들려주는 욕설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재미가 있다. 특히 전투 중에 선명하게 들리는 육두문자는 게임을 진행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원동력이 되었다. 오픈 월드를 표방하는 세계적인 대작 게임이 국내 성우진으로 풀 더빙 제작됐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

<사이버펑크 2077>이 갈 길은 아직 멀다. ‘나이트 시티’가 버그로 인해 유령 도시가 되지 않으려면 대규모의 업데이트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1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이트 시티’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소나기로 인해 물이 고여 있는 부분이나 수많은 빌딩과 기계 부품 등 ‘레이 트레이싱’ 효과가 있는 곳은 어디든 갈 작정이었다. 해가 지고 나이트 시티가 어스레해지면 화려한 네온사인과 그에 따른 광원 효과에 젖어 들었다.

이미 게이머들도 알고 있겠지만, <사이버펑크 2077>을 제대로 접하려면 고급 사양의 PC만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래픽 부분에서 플레이스테이션4와 Xbox One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차세대 기종인 플레이스테이션5와 Xbox 시리즈 X는 더 개선되겠지만, 더 나은 프레임과 해상도를 보고 싶다면 PC로 가야 한다.

<사이버펑크 2077>은 4차 산업혁명과 불안한 미래를 기반으로 한 훌륭한 게임은 분명하지만 버그가 맹폭한 탓에 지금도 매우 불안한 상태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나이트 시티’ 곳곳을 누빌 것이다. 개발진의 발빠른 업데이트와 최적화를 기대하면서 탐욕과 퇴폐미가 뒤섞인 ‘나이트 시티’의 골목 구석까지 최대한 깊게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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