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윅 헥스(John Wick Hex), 성공적인 실시간 전략의 시도

  • 입력 2020.12.09 14:31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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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하는 ‘존 윅’은 보통 비좁은 실내로 들어서면서 위기가 시작된다. 적들 대부분은 사각지대에 숨어 있는 게 아니라 우연히 몇 발자국 앞으로 전진했다가 ‘존 윅’과 마주치게 되고, 그들 중 대부분은 짧은 격투 끝에 머리에 총알이 박히고 만다. 운이 나쁘면 난잡한 몸싸움 속에 휘말리면서 만신창이가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존 윅’은 재장전을 하거나, 탄창이 없으면 급한 대로 적들의 총으로 교체하기도 하고, 붕대를 감으면서 상처를 치료하는 등 나름대로 바쁘게 일하고 있다. 이 창의적인 액션 시퀀스는 단 몇 초 만에 끝이 나 버리기 때문에 굉장히 자극적이고, 때로는 끔찍할 정도로 과격해 보인다.

<존 윅 헥스(John Wick Hex)>라는 게임이 ‘실시간 전략’이라는 장르를 들고 나온 건 그래서 의아하게 보인다. 마우스를 클릭하면서 전진하다가 첫 번째 적과 맞닥뜨리면서도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레이더망 안에 적들이 걸려들면 게임은 일시 중단이 되고, 그럴 때마다 새로운 작업을 수행한다. 바로 총을 쏴 버릴 수도 있고, 직접 다가가서 제압을 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이동하는 것 자체도 하나의 작업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논스톱 액션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도브 프리미어’에서 볼 법한 타임라인이 상단에 보이는 것도 영 어색하기 짝이 없다. 게임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존 윅’이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타임라인이 흐르는데 새로운 총으로 교체하는 것조차 ‘0.1초 단위’로 계산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액션이 모두 ‘존 윅’의 뛰어난 탐색 기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게 이 게임의 철학인 것이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그것’이 제대로 먹히고 있다.

영화 속에서도 등장했던 도서관을 배경으로 생각해 보면 ‘존 윅’은 항상 비좁은 공간 안에서 무척이나 힘든 액션을 성공해야 했다. 그가 생존하려면 머리에 정확히 총을 쏘는 것보다 일시 후퇴해서 기회를 엿 보는 게 더 유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존 윅’ 곁에는 최소한 다섯 명 이상의 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다가온다. ‘존 윅’은 자신보다 높은 책장을 엄폐물로 사용하면서도 적의 이마에 정확히 총구를 겨누고 있다. 그러한 판단이 1초보다 빠른 경우도 있고, 더 늦어지면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오합지졸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양손으로 권총을 꽉 쥐고 있는 ‘존 윅’의 승리로 끝이 난다.

위와 같은 장면을 상상해 보면 30초 안에 끝이 나겠지만, 게임에서는 최소한 1분 이상은 전술적으로 지켜봐야 한다. 권총을 발사하거나 타격을 하는데 1.5초, 제압은 2초, 총 투척은 1.2초가 걸린다. 한 발자국을 내딛는데 0.4초뿐이 안 걸리지만 세 발자국만 걸어가면 1초가 넘어가기 때문에 단숨에 두 명 이상의 적들이 다가올 수도 있다. 산탄총이나 리볼버 같이 무거운 무기를 발사하면 시간이 더 소요되기 때문에 역으로 당할 수도 있다.

이처럼 게임은 0.1초 단위로 끊기면서 전개가 되기 때문에 타임라인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나 게임 초반부터 적들의 타임라인도 염두해 두라고 경고하기 때문에 첫인상부터 불안한 조짐이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이 게임은 약속된 타임라인이 머릿속에 금방 장착되기 때문에 굉장히 빠른 적응력을 보여준다. 싸움꾼과 권총을 든 사내들을 한 명씩 처치하면서 어느 정도 시행착오를 겪고 나면 언제부턴가 뛰어난 몰입감을 자랑하게 된다.

나는 얼떨결에 시야가 제한된 공간으로 이끌렸고, 세 명의 사내로부터 둘러싸이게 됐다. 다행히도 기둥이 엄폐물이 되었고, 눈앞에 있는 적과 먼저 맞닥뜨리게 됐다. 제압은 2초(체감상 더 걸렸던 것 같다.)나 걸리기 때문에 1.5초로 타격해서 기절시켰다. 이후에 뒤따라오던 사내에게 총알 두 발을 머리에 박아 주었고, 기절했던 사내를 마무리 타격으로 쓰러뜨렸다. 이제 막 머리를 내밀고 있던 사내가 총구를 들이밀었지만, 머리를 숙이면서 남은 총알 한 발을 발사했다. 하지만 체력 한 칸이 남아있던 그 자가 잠시 몸을 숨기더니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서 남은 선택권은 총을 투척하는 것뿐이었고, 나는 영화 속 ‘존 윅’처럼 해내고야 말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모습이 자주 비쳐지는 건 아니다. 이 게임의 플레이타임은 짧지만, 당신이 0.4초를 소중히 여기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하게 들어서다가 싸움꾼을 만나게 되면 분명히 그 뒤에 총기류를 소지한 사내가 두 명 이상이 붙었다는 것쯤은 금방 파악할 것이다. 그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다면 이미 당신은 여러 차례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이제 거구의 사내가 등장하게 되면 시간 싸움은 더 격렬해진다. 이때부터는 영화 속 ‘존 윅’이 되려는 욕심은 버려야 할 것이다. 대기(0.2초)와 일보 후퇴를 병행하게 되면서 치열한 ‘생존’ 싸움이 시작된다.

아마도 개발진은 초반부터 시간 계산에 얽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승강기 버튼을 누른 다음부터 시작되는 습격은 이 게임의 백미로 통하는데 머릿속에 잡념을 싹 지우고 보면 매우 멋들어진 액션 연출이 그려진다. 자연스럽게 하나의 애니메이션으로 인식해 보면 게이머는 굉장한 일을 했던 것이다. 먼저 승강기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문에서 기관총을 든 사내가 등장하고, 퇴로 쪽에는 싸움꾼 한 명이 가로막고 있다. 승강기의 전자음을 듣고 더 많은 적들이 튀어나온다는 것쯤은 금방 눈치챌 것이다. 게임은 사정없이 구석으로 내몰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 안에 적들을 효율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겁부터 먹고 돌아왔던 길로 돌아가 대기를 하거나 문 쪽으로 먼저 접근해서 진입을 막겠다는 생각을 했다가는 수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적들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된다. 튜토리얼에서 재장전을 언급은 하지만, 게임의 대부분은 총기를 교체해 가면서 싸워야 한다. 총을 줍는 것도 타임라인에 찍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그렇게 시작된 습격이 ‘존 윅’의 승리로 끝이 나면 게임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게임은 ‘실시간 전략’ 장르가 비교적 뒤늦게 발동되는데 요시코가 있는 갤러리로 가기까지는 그저 워밍업에 불과하다. 정확하게 챕터 3까지는 타임라인을 염두해 두지 않아도 전투에 큰 무리는 없다. 개인적으로도 챕터 3까지만 플레이했다면 이 게임에 대해 크게 오해했을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거구의 사내가 총기를 들고 등장하기 때문에 2초가 걸리는 제압까지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때부터는 일격에 쓰러뜨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탄약이 충분하지 않은 산탄총을 쓰고 버리거나, 탄환 한 발이라도 쏜 다음에 총 투척까지 하게 되면서 싸움이 많이 지저분해진다. 그야말로 치열한 시간 싸움이 임박해온다.

다만 낡아 보이는 레벨 디자인과 반복적인 플레이는 답답한 면이 있었다. 게임은 주로 네온사인 이펙트를 활용했는데 엄폐물로 활용되는 사물들은 대부분 인식하기 어려웠다. 다행히도 각 스테이지는 짧지만, 사망할 때마다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많았다. ‘존 윅’을 노리는 사내들은 약속된 장소에 있지만, 정해진 길을 따라서 이동하다 보니 레이더망에 두 명이 동시에 걸리는 일도 생긴다. 재수가 없으면 권총과 기관총을 든 사내가 동시에 당신을 노릴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의미 없이 총알받이 신세가 되기 때문에 임의로 게임을 재시작 할 수도 있다. 유일하게 ‘존 윅’을 치료하는 붕대는 각 챕터마다 2개뿐이다. 물론 추후에 여분을 마련할 수도 있지만, 게이머의 의도와 상관없이 체력을 낭비하게 되면 주저하지 않고 게임을 재시작 할 것이다.

이 게임은 흥미롭지만, 어떤 면에서는 좌절하기 쉬운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다. 빡빡한 시간 계산이 계속되니 오래 집중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나는 몰려드는 적들을 뛰어넘기 위해 ‘존 윅’을 계속 플레이하고 있었다. 비록 영화 속 논스톱 액션은 없지만, 빠른 판단력을 믿음으로 영화 속 키아누 리브스를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있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최고 회의’도 존재하고 윈스턴(이안 맥쉐인)과 샤론(랜스 레드딕)의 실제 목소리도 들을 수 있어서 동기부여도 충분하다. 게임에서도 그들만의 ‘언어’가 최대한으로 묘사되고 있어서 암살자의 세계에 잠시 빠져들 수도 있었다.

방금 플레이해 보니 여전히 이 게임은 반복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0.1초 단위로 계속 끊기면서 ‘대기’ 버튼만 몇 번을 누른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아주 유쾌한 흐름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건 새로운 퍼즐 요소로 보이면서도 꽤 놀라운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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