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도를 담은 나쁜 결과물. PC '웬즈데이' 리뷰

  • 입력 2020.12.05 13:14
  • 기자명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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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대한 취향은 하나로 통일될 수 없다. 게임마다 주된 여론의 방향은 있겠으나, 그것이 꼭 정답인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개발사의 철학, 혹은 게임을 만든 의도와 연결된다. 개발사가 담은 목적과 의도가 게이머의 취향과 맞는다면, 그 게임은 '좋은 게임'으로 남는다. 시작부터 '나쁜 게임, 형편없는 게임을 만들어야지!' 라는 생각으로 기획되는 게임은 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위쳐 3'와 '레드 데드 리뎀션 2' 같은 게임을 좋아하고, 또 이 게임을 명작이라고 부르는 게이머 중 한 명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게이머가 명작이라고 부르는 타이틀이지만, 여기에 반박하는 의견도 분명 존재한다. 수많은 NPC와의 관계, 대화 선택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서브 퀘스트, 되돌릴 수 없는 선택 등 개발사가 게임에 녹여낸 의도와 전혀 맞지 않는 취향을 가진 게이머도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는 모바일 게임에서 확실하게 나타난다. 최근 모바일 게임의 트렌드는 '이 게임은 선수들을 위한 게임입니다. 과금이 없으면 제대로 즐길 수 없어요. 원하는 걸 얻고 싶다면 나올 때 까지 뽑으세요' 로 요약할 수 있다. 많은 개발사들이 이런 의도로 게임을 만든다. 하지만 여기에 동의하는 게이머들은 많지 않다. 유행을 따르는 국산 모바일 게임 중에서 '좋은 게임'을 찾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개발사의 의도와 게이머의 요구과 극명하게 엇갈리면 그 게임은 소위 '망겜'이 된다. 하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모양이다. 개발사의 이런 의도를 담은 게임은 꾸준히 쏟아져 나온다. 나쁜 의도에도 좋은 결과물은 나오는 셈.

의도가 좋고 훌륭하다고 해서 모두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의도는 좋았지만, 내놓은 결과물이 형편없는 게임도 많다.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깐포지드'라고 불린 '워3 리마스터'다. 지금까지 이 게임을 지켜준 게이머들을 위한 선물이라는 의도를 모르는 게이머는 없었겠지만, 그 결과물은 처참했다. 물론 '나는 괜찮던데. 박스 그래픽보단 낫잖아. 한글 더빙도 해주고' 라고 생각하는 게이머도 있을 것이다. 취향은 다양하고, 또 각각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번에 이야기할 게임은 분명 개발사의 의도가 좋은 게임이다. 초기 펀딩을 놓고 보더라도 이 게임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히 높았다. 게임을 통해 이런 내용을 소개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물은 선한 의도와 높은 기대감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이 게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국산 게임 '웬즈데이'다.

 

'웬즈데이'는 많은 게임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되고 있으며, 출시 전과 출시 후의 온도 차이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이제부터 논란이 되는 이유가 뭔지, 좋은 의도를 담았음에도 게이머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도대체 어떤 결과물이 나왔는지 한 번 알아볼까 한다. 

'웬즈데이'는 포인트&클릭 방식의 퍼즐 어드벤쳐 장르다. 플레이어는 주인공 '순이'의 꿈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고,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은폐한 기록을 찾아내야 한다. 게임적인 특징만 놓고 본다면, 퍼즐의 난이도와 풀이 과정은 쉬운 편이다. 장르 자체에서 주는 재미를 논하기에는 사실 좋은 콘텐츠라고 할 수 없다.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이 장르에서만 보여주는 게임적인 특징을 느끼기가 어렵고, 다른 비슷한 게임과 비교했을 때도 와닿는 부분이 없다.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났었던 역사를 다루는 만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 서사구조의 개연성은 있으나, 모든 사건이 예외 없이 직선으로 진행된다. 정해진 틀과 순서를 바탕에 둔 채 게임은 진행된다.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고 또 기획의 의도가 분명한 만큼 입체적인 캐릭터나 분기가 나뉘는 스토리 같은 걸 기대할 순 없다.

 

캐릭터의 변화나 드라마틱한 분기점이 없는, 누구나 아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많은 내용이 게이머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문제는 이렇게 대부분의 게이머가 이 사실에 대해 알고 있고, 게임의 전반적인 흐름과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면 이를 극복할 만한 '몰입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직선적인 구조에서는 게이머가 몰입할 수 있는 요소나 동기부여가 필요하지만, '웬즈데이'에서는 이런 부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게임은 온전히 '순이'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관찰자'의 입장에서 게임을 진행할 뿐이다. 그렇다 보니 플레이어는 '순이'의 행동과 감정에 공감하기가 어렵다. 정해진 방향을 따라가면서, 스토리를 단순히 '읽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게임의 그래픽, 일러스트는 전반적으로 서로 조화되지 못하고 엉성하다. 게임이 어울리지 못하고, 섞이지 못한 채 떠 있는 느낌이다. 각각 파트의 조율 문제를 떠나서 게임의 완성도 자체가 낮아 보이고, 이런 부분이 이야기의 흐름마저 방해한다. 제각각 따로 놀고 있으며,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 3D 캐릭터의 모션은 단조롭고, 일러스트 몇 가지를 돌려쓸 뿐이다. 상황에 맞지 않는 모션과 일러스트가 자주 보이고 여기에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하는 배경음악과 사운드까지 겹쳐있다.

 

게임의 표현은 게이머가 궁금해하거나 관심을 가져볼 만한 여지를 남기지 않은 채 굉장히 직설적이다. 게임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은유, 비유적인 표현이나 효과는 거의 없다. 대부분 게임에서 만나는 '텍스트'가 게임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다뤘다는 것만 남았을 뿐이지 이를 표현하기 위해 캐릭터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 배경은 어땠는지 남는 것이 거의 없다.

 

마치 어릴 적 플래시로 만들어진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플레이하는 것과 비슷하다.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한 오브젝트와 과정이 게임에 굉장히 많이 묻어있다. 그 의미를 나쁘게 해석할 순 없다. 하지만, 게이머들은 이런 일방통행의 과정보다는 게임이 보여주는 사건이나 캐릭터를 통한 공감을 원했을 것이다. 

잘 알지 못했던 사건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은 좋다. 이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게임적으로는 그렇게 뛰어난 방법이라고 할 순 없다. 이런 방식은 꼭 게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웬즈데이'에는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겠다는 의도만이 남아있다.

 

게임에 메시지를 녹여내는 것에는 굉장히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다. 개발사의 철학이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하우와 방대한 지식, 그리고 게이머의 몰입을 끌어낼 만한 콘텐츠가 정교하게 설계되고 어울려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일방적인 방향과 선택지만 줘놓고 게이머에겐 '빨리 정해진 길대로 진행해'라는 선택을 강요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는 이 과정이 중요하다. 개발사들이 간혹 게이머를 교화의 대상으로 착각하는 경우, 그들의 철학과 의견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개발사의 의도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일방통행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개발사가 제시한 의견을 게이머들이 어떻게 수용하는지, 그리고 반대되는 의견은 어떤 점인지, 개발사는 이것을 받아들이고 소통하면서 더 개선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게임 내적인 메시지에 머물지 않고, 외적으로도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피드백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웬즈데이'는 재미보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집중한 게임이다. '이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라는 의도를 비난하는 게이머는 없다. 역사를 다루는 일은 날카롭고 정교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그 시대로 인해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고, 그들의 마음을 함께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웬즈데이'는 어느 것 하나 건지지 못했다.

 

'웬즈데이'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이런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음에도 과정과 결과물이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게임만 놓고 보자면 그래픽, 일러스트, 서사 구조, 사운드, 장르적 특성, 고증 등 전반적으로 뛰어나다고 볼만한 것이 없다. 게이머들에겐 '교육용 소프트웨어' 수준 정도의 결과물이다. '보여주기식 아닌가?' 라는 의심과 '누군가의 주머니'라는 막연한 단어로 그 화를 분출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웬즈데이'의 현재 논란이 되는 정치적 연결고리와 개발비 지원에 관한 내용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이 정치와 닿아있다는 부분이 좋게 보이진 않는다. 스팀 게이머라면 종종 '워 차일드 재단'에 게임의 일부나 DLC 수익 전부가 기부된다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확실한 목적의 공적인 재단이라면 모를까, 현재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인 정치인과 연결된다는 점을 좋게 볼 게이머는 없을 것이다. 

의혹에 대한 개발사의 의견은 '그렇게 많은 돈을 받지도 않았고, 특정 정치인과 관련도 없다. 그리고 유니티에 관한 건 미안하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게이머들은 더욱 확실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원한다. '웬즈데이'가 이 정도의 결과물이 나온 것이 정말로 개발사의 역량 때문인지, 아니면 뭔가 게이머들이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싶다. 이에 대해 개발사가 보여준 피드백은 변명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웬즈데이'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도 좋지 못한 결과물을 냈다. 여기엔 또 많은 의혹과 확실하지 않은 해명으로 얼룩졌다. 정작 다루어야 할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 '이 문제에 접근하는 역사적인 인식' '개발사가 게이머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남기지 못했다. 오로지 부정적인 잡음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개인적으로 '국가 지원받는 게임이 다 그렇지' '이게 한국 인디게임의 수준' 이라는 이미지가 남은 것이 가장 안타깝다. 지금도 영혼을 갈아 넣고 있는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웬즈데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그리고 글로벌 서비스로 만나게 될 많은 외국 게이머들은 이 결과물에 어떤 평가를 할지를 짐작하자면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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