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중독 그리고 애증. PC 'FM2021' 리뷰

  • 입력 2020.12.02 14:03
  • 기자명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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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 이 단순한 알파벳 두 글자는 많은 뜻을 지니고 있다. 사용하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서 규칙을 뜻하기도, 어떤 신호를 뜻하기도, 그리고 길이 단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각각의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 이 'FM'이란 단어는 게이머들 사이에선 오직 하나의 게임으로 통한다. 아주 위대하고 위험한 게임의 약자. '풋볼 매니저'다.

 

현실의 축구를 사랑하는 게이머라면 한 번쯤은 찍먹해봤을 게임이고, 축구와 게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 게임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소문으로라도 들어봤을 것이다.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시험과 취업을 포기하며, 멀쩡하던 가정을 파탄 나게 만드는 게임. '남자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정할 때마다 항상 한자리를 차지하는 게임. 온갖 부작용과 사회문제를 만들 정도이며, 그 중독성은 마약 다음으로 꼽힐 정도다.

 

이렇게 게이머들과 축구 팬들의 영혼을 나락으로 끌어들인 그 악마의 게임 'FM'이 올해에도 신작을 선보였다. ‘FM2021’이다. 사실 이렇게 매년 뒤의 숫자만 바꾸어 출시하는 스포츠 게임의 경우엔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 일종의 '로스터 패치' 수준의 개선이 대부분이고, 이 패치마저도 게임을 사랑하는 게이머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장르를 대신할 게임은 없고, 이미 중독은 되어버렸기 때문. 할 수 없이 욕하면서도 플레이하게 되는 '애증'의 존재가 바로 'FM'이다.

 

이번 리뷰는 'FM' 시리즈는 과연 어떻게 진행되는 게임인지, 그리고 이번 'FM2021'에서는 어떤 점들이 개선되었는지를 가볍게 살펴볼까 한다. 

'그래서 직접 조종하는 게임인가요?' 간혹 이런 생각을 하는 게이머들도 있다. 실제로 이 생각은 내가 'FM' 시리즈를 처음 접하기 전에 했던 생각이다. 스쿼드를 짜고, 전략을 설정하고, 거기에서 내가 직접 플레이어가 되는 축구게임인 '피파'나 '위닝 일레븐' 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FM' 시리즈는 내가 직접 조종하는 게임이라기보다는 '움직이게 만드는 게임'이다. 피치 위에서 직접 플레이를 하진 않지만, 선수들을 뛰게 만드는 '감독'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축구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FM'은 승리를 위해서 많은 것을 요구한다. 선수를 관리하고 또 선수들을 돕는 많은 인력을 관리하고, 구단의 재정과 유소년 육성, 선수의 이적과 임대, 계약 등 축구와 관련된 거의 모든 활동을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축구 자체보다는 이와 관련된 '비즈니스'나 '인재활용'이 더 요구되기도 한다. 이런 실제 축구와 닮은 요소들은 'FM 시리즈'를 끊을 수 없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FM'에는 뽑기나 강화의 요소가 없다. 물론 '운'이라는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축구게임과 결이 다르다. 플레이어가 했던 선택에는 그에 맞는 결과가 따라온다. 올바른 선택을 했다면 좋은 결과가 따라오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팀은 계속 패배할 것이고 곧 감독직을 잃게 될 것이다.

'FM'은 단어 뜻 그대로 '매니지먼트'를 핵심으로 한다. 그만큼 수많은 텍스트와 수치들에 익숙해야 한다. 뉴비에게는 '진입장벽'이고, 기존의 FM 게이머들에게는 '게임에 빠지지 않고 탈출할 수 있는 축복'이라고 느껴지는 이 빽빽한 문자와 숫자들. 현실 축구 클럽과 그에 속한 선수들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또 가지고 노는 것이 'FM'이다.

 

앞서 언급했듯 매니지먼트에는 많은 분야가 포함된다. 선수단의 세력이나 정치적 관계, 팀의 전술과 전략, 코칭 스태프, 훈련 일정과 부상 관리, 선수의 임대나 이적에 관한 계약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구단 재정까지. 이런 모든 것들을 파악하고 일어나는 일들에 가장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고 커리어를 쌓을 것인지, 아니면 클럽 전체의 미래와 비전을 보면서 함께 성장할 것인지에 따라 게임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분야를 처음부터 배우고, 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FM'은 축구게임 중에서도 정직한 편이다. 플레이어가 노력한 만큼, 그리고 잘 선택한 만큼 그에 맞는 합리적인 결과가 따라온다. 대부분은 그렇다.

축구는 결국 골을 넣고, 승점 3점을 챙기는 것이 목적이다. 구단 내적으로 아무리 관리를 잘하고, 분위기가 좋은들 경기에서 이기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들을 최적의 포지션에 배치하고, 또 상대 팀에 맞는 전술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FM2021'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조금 간결하게 바뀌었다.

 

이제 경기중 선수들의 컨디션을 수치 대신 아이콘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존의 숫자로 표시되던 컨디션과 사기는 이제 초록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는 아이콘을 보면서 파악해야 한다. 다만, 경기중 변화하는 선수의 평점은 그대로 적용된다. 경기 중간에 등장하는 히팅맵이나 기대 골 수치, 승률에 관한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점도 눈에 띈다.

 

그래픽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FM'은 사실 지금의 시대와는 맞지 않는 찰흙 그래픽으로 유명하다. 이는 그래픽의 완성도 보다 AI의 정교함과 데이터를 반영하는 완성도에 초점을 맞춘 개발진의 뜻이기도 하다. 물론 정확하게 어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플레이 모션이나 시점 변화는 이제 '겨우 봐줄 수 있을 정도'의 영역까지는 도달했다. 그리고 신작 때마다 늘 나오던 이야기. 사실 크게 기대되진 않지만, '합리적인 결과'와 전혀 상관없이 '멍청하게 서 있는 선수'의 모습도 이제는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이번 'FM2021'의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감정표현'이다. 이제 데이터와 숫자에 '감정 표현'이라는 선택지가 추가된다. 플레이어는 라커룸에서 선수들과 대화를 하거나, 기자회견에서 기자들과 대화할 때 선택지에 맞춰서 감정을 고를 수 있다. 이제 물병을 던지거나 팔을 휘젓는 등의 적극적인 형태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 '소통'의 방식도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팀 내 선수와의 대화는 이제 언론이나 다른 누군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소통할 수 있게 된 것. 일종의 소셜 네트워크 방식을 통해서 선수를 칭찬하고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부분은 '영입'에서도 적용된다. 보드진과 스태프의 영입과 관련된 회의를 진행할 때 지금 스쿼드에 어떤 선수가 필요한지를 조금 더 자세하게 요청할 수 있다. '그냥 좋은 선수' 가 아니라 지금의 팀 컬러에 맞는 선수, 어떤 장점이 필요한 선수 등 플레이어가 정말 필요로 하는 선수를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존의 말도 안 되는 선수들의 데이터가 올라오는 것을 이런 요구사항으로 미리 추려낼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운로드' 탭을 사용해 에디터를 내려받을 수 있다. 어쩌면 이제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에디터라는 것을 사용하면, 장르를 불문하고 게임이 추구하는 본래의 재미가 반감된다. 'FM'은 치열한 주급 협상과 이적 계약이 묘미인 게임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간단한 '편집'만으로 선수의 능력치를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은 다른 게임 같으면 '반칙'의 개념이겠지만, FM에서는 일종의 '치료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얼마 전 '죽어도 선덜랜드' 라는 다큐를 보면서 '저게 진짜 축구의 본 모습이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팀이 멋진 플레이를 하는 것’ 정도의 팬인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즌이 계속되고, 좋아하는 팀이 우승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찐' 되어갔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선수가 영입되거나, 좋아하던 선수가 팀을 떠날 때. 그리고 잘못된 경기 운영과 전술로 팀이 패배할 때. 클럽과 관계된 누군가가 구설에 휘말릴 때. 그럴 때마다 알 수 없는 분노의 감정에 불이 붙으며 ‘아니 내가 해도 저거보다 잘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그를 떠나서 축구를 정말 오랫동안 봤던 팬들은 알 것이다. 축구란 ‘이겨서 기분 좋다. 져서 아쉽다’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FM'은 '나만의 축구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게임이다. 오로지 승부가 아니라 선수와 스태프, 클럽 전체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천천히 그리고 하나씩 쌓아가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지만, 한 번 빠지게 되면 또 쉽게 나올 수 없는 게임이다. 

 

정말로 축구를 사랑하고, 앞서 언급했던 감정을 느껴본 게이머라면 'FM'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번 'FM2021'은 전작들에 비해 괜찮다는 평이 많다는 점이다. 축구란 무엇인지 게임에 중독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그리고 정말 미워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FM2021'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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