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엔드리스 워, 업그레이드와 보상의 무한 반복

  • 입력 2020.11.09 19:48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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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MMORPG(대규모 다중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를 즐기는 게이머들의 일상은 성장과 수집을 확인하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 번 재접속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랜덤 박스’ 안에서 나오는 대박 아이템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빠질 수 없다. 목표는 최고급 아이템이나 영웅, 카드 등인데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을 가지고 전투를 치른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질’을 통해 원하는 것들을 비교적 빨리 가진다고 해도 공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데 <테라 엔드리스 워>는 위와 같이 게이머들의 조급한 심리에도 다가서지 못 하는 것으로 보인다. 게이머들이 군침을 흘릴 정도로 개성 있는 아이템이나 영웅 등이 포진 되어야 하는데 게임을 계속 진행해 봐도 좀처럼 그런 동기는 부여하지 못 한다. ‘테라’라는 굵직한 IP(지적재산권)를 활용했다고는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개발진에서 강조하는 SLG(시뮬레이션) 게임의 매력도 도통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시뮬레이션 장르를 도입하는 바람에 속도전이 희석되면서 단점만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게임은 크게 영토 내의 확장과 전투 시스템으로 나누는데 여타 MMORPG처럼 영웅들의 전투를 큰 화면에서도 볼 수 있다. 초반에는 영웅들의 전투에서 시작해 시뮬레이션을 통한 영토 확장이 전개된다. 사령부를 시작으로 메인 코어, 전쟁 본부, 방패병 훈련소, 돌격병 훈련소, 궁병 훈련소 등 전투를 위한 건물을 짓고 업그레이드를 진행한다. 아카데미를 통해서는 경제, 방어, 군사, 사냥 등을 연구하기도 한다. 눈에 띄는 부분이라면 ‘시공의 균열’인데 각 스테이지를 구성해서 영웅들의 전투와 스킬을 볼 수 있다. 자동 전투가 기본이고, 스킬이 준비 되면 수동으로 발동시켜야 한다. 중간 보스와 메인 보스까지 마련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전투는 반복적이고, 캐릭터들도 겹치기 출현한다. 사실상 이것 역시 업그레이드와 보상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비교적 진행이 좀 어려운 편인데 스킬의 발동 시기를 조율하는 등의 전략전술은 전무한 편이다. 오히려 과도하게 어려운 나머지 쉽게 포기하는 경향도 있다. 어차피 게이머의 영토로 돌아가도 업그레이드와 보상은 꾸준히 나오기 때문이다. 게이머가 이 ‘시공의 균열’에서 진을 빼고 기다리거나 업그레이드를 통해 목적을 두고 다시 돌아올 일도 별로 없다. 게임 디자인 자체도 낮은 도트가 결합된 데다가 몬스터들이 겹치기 출현부터 해 버리니 인내와 끈기를 발휘할 이유도 없다. 그리고 게이머가 이 ‘시공이 균열’에서 기다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게임 자체가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게임을 처음 시작하고 있다면 ‘시공의 균열’에서 어느 정도 구조가 보일 것이다. 스테이지를 더 클리어 하려면 영웅들을 성장하고, 더 좋은 장비와 룬을 장착 시켜서 더 강한 캐릭터가 되어서 돌아오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영토 내에서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영토를 확장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튜토리얼을 간절히 바라거나, 적군들의 공격에 대항해 방어할 방법을 찾다가 여러 건물들의 특성을 이 잡듯이 뒤졌던 게 아니다. 이 게임은 좌측 하단에 미션이 표시되는데 그 내용들을 살펴 보면 대부분 건물을 업그레이드하거나 병사들을 훈련하고, 영토 밖에 있는 몬스터들을 잡는 것이다. 순서대로 미션이 표시되는데 터치를 할 때마다 원하는 위치로 이동해서 원활히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문제는 업그레이드와 보상이 거의 무한 반복된다는 점이다. 영토에서 건물을 업그레이드하거나 병사들을 훈련할 때마다 작업 시간이라는 것이 걸리는데 초반에는 무료로 진행되기 때문에 빠르게 진행할 수 있지만, 이후에는 현금 결제가 필요한 수정 아이템이 필요하다. 수정을 쓰고 싶지 않다면 작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본인은 수정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지만,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영토 밖으로 나가 몬스터를 잡는다고 해도 ‘행동력’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진행할 수가 없었다. 결국은 ‘현질’을 통해 게임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인데 동기 부여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게임은 때마침 3일간 접속하면 ‘타무르 헬칸’이라는 영웅을 무료로 보상해 준다고 홍보했다. 3일이라는 기간 동안 업그레이드와 보상이 반복만 된다면 과연 ‘헬칸’이라는 캐릭터가 필요한지 의문이다. ‘보상 심리’라는 것은 자고로 복수의 심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엘리엇 애런슨과 캐럴 태브리스의 <거짓말의 진화>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정당화의 달인들인 동시에 말을 과격하게 하면서까지 보상을 받고야 말겠다는 이기적인 종자들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느 회사에 취업해서 부당하다고 판단되어 퇴사를 한다고 마음 먹는다면 상당한 비판을 받을 것이다. 특히 해당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사람들에게 집요한 욕을 들을 수도 있다. 퇴사를 한 당신의 행동이 옳다면 회사가 비정상적인 곳이고,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들까지 비정상적일 테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얼마 전까지 선배였지만, 그 사람이 보상을 받고 싶다면, 당신을 비난해야 한다. 그 선배가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당신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 한 철없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만큼 인간에게는 부정할 수 없는 보상 심리가 전두엽을 자극하고 있다.

게이머가 단순히 흉악해 보이는 잡몹들이나 메인 보스에게 패배한 것 때문에 새로운 영웅을 바라는 건 아닐 것이다. 당신이 어느 정도 위력을 과시할 수 있는 단계가 있고, 그 과정을 갑자기 위협하고 나서는 그 어떠한 '존재'가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당신은 복수하고 싶은 심리가 발동되고, 시간이 지날 때마다 초조해지기 시작하면서 ‘현질’을 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된다. 그때부터는 물론 게이머의 선택에 달렸다.

게임은 대체로 시뮬레이션의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영웅을 성장시키면 병사들을 동원하는 규모가 늘어가면서 영토 밖의 전투도 수월해진다. 장비를 강화해서 전설 등급으로 올릴 수 있고, 조각을 모아서 영웅들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사령관의 특성 포인트는 병사의 공격력이나 건설 속도를 개선해주면서 때로는 사령부가 업그레이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영토 밖이나 ‘시공의 균열’의 적군들은 더 강해지고, 보상도 더 많아진다. 보상은 게이머의 영토를 업그레이드하는 재료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설명을 들어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막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시뮬레이션 장르를 오랫동안 즐겨 본 게이머들은 새로울 게 없어서 핵심 몇 개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도 받을 것이다.

그래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면 ‘땅따먹기’라도 즐길 수 있는 통로가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지 않을까?

불행히도 이 게임은 ‘테라’ 캐릭터들의 스킨만 활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일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던 ‘시공의 균열’은 MMORPG였던 테라의 성격을 덧씌운 것에 불과했다. 자동 전투로 진행되다가 스킬만 수동으로 발동되는 이 전투 시스템은 개발진이 애초부터 ‘테라’의 추억을 기억하는 게이머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립서비스 정도로 보인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뮬레이션 부분은 너무나 평범해서 특별히 설명할 부분이 없을 정도다.

<테라 엔드리스 워>의 문제는 최근 변화되고 있는 전략 시뮬레이션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 했다는 점이다. 개발진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통적인 시뮬레이션 장르를 표방했다고 해도 동기 부여가 전혀 되지 않으면서 의욕을 부릴 틈조차 없다. 성장과 수집을 목표로 하는 모바일 게임의 특성에 시뮬레이션 장르가 도입하면서 너무 심심한 게임이 나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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