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슬레이어, 신선한 턴제 시뮬레이션 모바일 RPG
던전 슬레이어, 신선한 턴제 시뮬레이션 모바일 RPG
  • 진병훈
  • 승인 2020.11.02 14: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SRPG를 표방하는 게임들이 그렇듯 <던전 슬레이어>는 전략전술에 중점을 두고 있다. ‘현질’ 유도를 하는 사행성 게임이라는 점에는 부정할 수 없지만, 장기적인 목표를 놓고 고심한 흔적이 뚜렷하다. 특히 전투 시스템이 세밀하게 짜여져 있는 편이라서 범람하는 모바일 게임들 사이에서는 눈에 띄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개발진만의 새로운 해석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SRPG는 시뮬레이션과 RPG의 합성어로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은 ‘턴제 시뮬레이션’으로 인식하고 있다. 격자로 된 타일 위에서 캐릭터들을 이동시키는 전투 시스템이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그 시초는 당연히 보드 게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캐릭터마다 제한된 이동 거리를 잘 활용하고, 격자 위에서 벌어지는 액션 시스템을 충분히 활용하면 꽤 재밌는 전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상대방의 턴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이 장르만큼 전략전술이 중요한 게임은 드문 편이다.

<던전 슬레이어> 역시 보드 게임에서 쓰이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다. 직관적이고 단순하지만, 한 가지 이 게임만의 특징이 있다. 보통 턴제 게임은 적군 앞에서 액션을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게임은 적군을 스쳐 지나가면서 공격할 수 있다. 이른바 ‘무브 스킬’을 통해 이동 공격을 강화시키는 것인데 쉽게 얘기해서 타일 위에 있는 적들을 통과하면 타격이 이루어진다. 반면 ‘액티브 스킬’은 직접 적군을 선택하여 효과를 적용할 수 있다. ‘무브 스킬’과 ‘액티브 스킬’은 중복해서 쓸 수 있어서 타격 비주얼이 비교적 쉽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바셀’이라는 캐릭터가 적군 둘을 통과해서 타격한 뒤에 그 뒤에 있는 세 번째 적군을 향해 ‘정의의 주먹’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이드’는 ‘연속 자르기’를 통해 주변 적군들을 공격하기 때문에 단 한 번의 턴으로 일망타진할 수도 있다. 공격 시스템이 꽤 난잡한 것처럼 들리지만, 즉각적으로 전술을 바꿔 활용하면 꽤 재밌는 전개가 이루어진다. 적군 AI가 그다지 현명하지 못 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동 거리를 계산만 잘 하면 짜릿한 공격을 퍼부을 수 있다.

개발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아군 캐릭터를 통과할 때도 효과를 적용시켜 놓았다. 타일 위에 있는 아군 캐릭터를 통과하면 공격력이 상승하고, 붙어 있으면 방어력이 상승하도록 설정했다. 공격과 방어 모두 아군 캐릭터가 많이 붙을수록 효과가 불어난다.

그렇다 보니 여타 턴제 게임과는 달리 한 번 더 고민하는 습관이 생겼다. 첫 번째 챕터(게임에서는 ‘세계’로 불린다.)에서 적응을 마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공격과 방어 상승을 염두에 두고 이동하게 되는데 서포터형 캐릭터까지 동참하게 되면 전술전략은 더 다양해진다. 

캐릭터들의 직업을 살펴보면 새로울 것은 없다. 워리어, 가디언, 레인저, 매지션, 서포터로 나누는데 그 이름만 들어도 역할 설명은 생략해도 될 것이다. 본인은 서포터를 흥미로운 직업으로 봤는데 대부분이 인식하는 것처럼 단순히 치료만을 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본’이라는 캐릭터는 토템을 타일 위에 설치함으로써 적군들의 알고리즘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또 한 가지는 캐릭터를 통과하면서도 치료를 한다는 점이었다. ‘실마’라는 캐릭터는 타일 위치와 상관없이 아군들의 공격력을 2턴 동안 강화시키고, 타일 위에 있는 아군들을 통과할 때마다 치료를 해 준다. 이 ‘실마’라는 캐릭터 덕분에 각 스테이지마다 출전 순서를 전략적으로 세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대부분은 적군들이 가시권 밖에 존재하지만, 어떤 스테이지는 적군들이 바로 코앞에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실마’를 선봉에 세워서 공격력부터 키울 필요가 있었다.

스토리는 삶의 근원을 상징하는 생명의 나무, ‘세계수’를 지키고자 하는 연합군의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다. 요즘 온라인 게임에서 대세가 되어 버린 것처럼 북유럽 신화 속의 ‘이그드라실’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수를 위협하는 ‘마의 짐승’들을 상대로 여신과 신들이 승리로 이끌었고, 이후에 세계 전쟁이 일어나면서 연합군이 결성된다. 탐욕의 왕 길다스가 세계수의 열쇠를 내세워서 대륙을 집어 삼켰지만, 연합군에 의해 수세에 몰리자 ‘마의 짐승’을 깨워 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마의 짐승’들은 여신과 신들에 의해 세계수 아래에 봉인되었으나, 결국 길다스 때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미궁이 하나 생기게 되고, 세계수의 열쇠 없이는 봉인할 수가 없게 된다.

게이머는 돌격 기수 ‘나비’, 몬스터 헌터 ‘카우스’, 루하의 도서관 사서 ‘루드’, 수호 기사 ‘이크’, 어둠의 마녀 ‘샤우라’가 되어서 모험가들을 모집해야 한다. 이들은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모험가들을 서포터 하는데 스킬이나 공격력 개선, 쿨타임(스킬을 사용한 이후에 동일한 스킬을 사용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 감소 등을 도맡아 한다. 초반에는 이들의 도움이 필요 없지만, 제3세계부터 벌어지는 보스전이나 ‘균열의 틈’에서는 절실할 순간이 찾아온다. 개인적으로는 루드의 ‘여신의 가호’로 부활을 시키거나 샤우라의 ‘텔레포트’로 원하는 위치로 이동시키는 것이 유효했다.   

개발진은 게이머가 적응할 단계를 충분히 마련해 놓았다. 워낙 새로운 전투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행착오도 겪어야 한다. 선뜻 권하고 싶지 않은 방향으로 보이지만, 막상 플레이해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다만 여타 모바일 게임의 단점을 완전히 피해가지는 못 한 것으로 보인다. 초반부터 보상이 남발한다는 점 때문에 출발부터 심심한 면이 있었다. 10분 단위로 주는 보상을 환영한다면 다행이지만, 게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아이템들이 쏟아지니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픽은 깔끔하고 예쁜 편이지만, 보상이 욕심 날 정도는 아니었다. 전설의 장비를 초반부터 내밀었다는 점에서 오해한 면도 있을 것이고, 진짜 강한 적군을 만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초반부터 밸런스가 너무 ‘Easy’ 쪽으로 기울어진 건 아닌가 싶다.

어쩌면 게임의 흐름이 너무 쉽게 끊긴 탓도 있을 것이다. 전투 시스템은 분명히 신선하고 훌륭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일부 아이템의 유무가 왜 중요한지도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는 제3세계까지 진행하면서 아이템과 장비의 활용도에 대해 계속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자동 장착’을 하다 보면 일부 장비와 아이템이 쓸모 없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채기 때문에 장비의 ‘강화’ 부분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았다. 대충 이것저것 해 보다가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리세마라(게임을 플레이하는 중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리셋하는 행위)’나 하면 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스토리에 크게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여신과 신들이 ‘마의 짐승’들을 세계수 밑에 봉인했다는 설정이나 길다스가 세계수의 열쇠를 내세워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점, 그리고 그 봉인이 풀렸다는 이야기도 모두 막연하게만 들린다. 세계수의 열쇠 행방이 묘연하다는 점에서도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호하다. 연합군이 ‘마의 짐승’들을 토벌한다는 핑계로는 그리 충분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모처럼 방향성이 뚜렷한 모바일 게임이 나왔다는 점에서 <던전 슬레이어>는 높이 살 만한 게임이다. 지금 생각해도 초반부터 보상을 남발했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랜만에 턴제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현질’ 유도를 하더라도 개발진이 야심 차게 준비한 전투 시스템에 흠뻑 빠지게 하겠다는 그 의지도 돋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