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정통 퍼즐을 기반으로 한 수작 게임, Palindrome Syndrome Escape Room 리뷰

  • 입력 2020.10.21 15:59
  • 기자명 김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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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방 탈출 카페를 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가 본 지인들에게 방 탈출만의 묘미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방 탈출에 영혼을 빼앗긴 지인의 말에 의하면 탈출 그 자체가 재미있는 게 아니라 탈출을 하기 위해 단서를 찾고, 이걸 조합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고 한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가며 이것 저것 의심해 보고, 복잡해 보이는 퍼즐을 풀 때면 스스로가 탐정이 된 것 같고,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퍼즐에 그리 조예가 깊지 않은 필자는 그런 재미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프라인으로 즐기는 방 탈출 카페는 물론이고, 방 탈출을 소재로 삼아 만든 게임도 필자는 질색한다. 애초에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거니와 간신히 퍼즐을 풀어도 빨리 다음 과제를 고민하지, 퍼즐 그 자체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뭐랄까. 노력에 비해 성과가 부실하다는 느낌?

방 탈출에 문외한이고, 퍼즐에 흥미도 없는 필자가 오랜만에 집중한 퍼즐게임이 있다. 아니, 사실 중간 중간 막히는 구간이 너무 많아서 포기를 생각한 적도 많지만, 퍼즐 마니아인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엔딩은 봤다. 그런데 그 엔딩이나 이걸 풀어내는 방식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여러 번 곱씹어 본 게임이다. 게임의 제목은 Palindrome Syndrome Escape Room. 1015일에 스팀에서 한국어화되어 발매된 게임이다.

제목에서 스포, 구멍은 있지만 임팩트 있는 스토리

Palindrome Syndrome Escape Room의 제목, 팰린드롬은 분자 생물학에서 어느 방향에서나 같게 읽히는 자기 상보성 핵산 서열. 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분명 읽고 있지만,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 저 정의는 버려버리고, 이해가 쉬운 네티즌 수사대들의 첨언을 종합하면 팰린드롬은 제대로 읽었을 때나, 거꾸로 읽었을 때나 같게 읽히는 단어나 상황을 뜻한다고 한다. 17세기 영국의 작가인 벤저민 존슨이라는 사람이 고안한 개념으로 한국에서는 중국의 회문이라는 말로 번역한다고 한다. 회문을 번역하면 말 그대로 돈다. , 같은 상황이나 단어의 반복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정말 쉽게 말하면 이효리, 토마토처럼 거꾸로 읽어도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를 뜻하는 말이 바로 팰린드롬이다.

시시콜콜한 제목에 대한 설명은 이쯤하고, 이 게임의 스토리를 살펴보자. 취향을 좀 타겠지만, 필자에게는 아주 썩 마음에 드는 스토리였다. 사실 처음에는 스토리라고 할만한 게 거의 없다. 주인공은 먼 미래, 우주의 한 기지 안에서 두통을 호소하며 깨어나고, 기지 전체에 도배되다시피 한 퍼즐을 풀면서 자신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된다. 마지막 엔딩에 가면 모든 기억이 되살아 나는데, 이 결말 자체가 굉장히 강력한 스포이면서 흥미를 돋우는 장치가 된다. 이 리뷰를 보고 플레이할 독자들을 위해 스포는 하지 않고 스토리를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서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Palindrome Syndrome Escape Room. 이 게임은 스토리를 굉장히 압축해서, 두루뭉술하게 보여준다. 엔딩까지 보아도 해결되지 않는 자잘한 의문들은 많다. 주인공이 연구하는 병은 대체 무엇이며, 왜 이곳에 혼자 있는 건지, 무슨 자격으로 어떤 연유로 이 곳에 온 것인지. 등등 세세한 설정에는 여전히 구멍이 뚫려있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 구멍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개발사 측에서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잔가지들은 쳐내고 굵직한 사건 하나에만 집중해서 오히려 몰입도가 높았다. 물론 퍼즐게임의 특성상 퍼즐 부분을 빠르게 지나가지 못하면 게임이 조금 늘어지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엔딩까지만 가면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정말 오랜만에 괜찮은 스토리였다.

헬 수준의 퍼즐. 공책과 검색은 필수다

Palindrome Syndrome Escape Room의 게임방식은 아주 명확하다. 그냥 퍼즐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깨어난 방의 퍼즐을 풀어 문을 열고, 그 다음 방에서 또 퍼즐을 풀어 다음 방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이런 식이다. 퍼즐은 통상 3~4개에서 많게는 5~6개까지 있고, 퍼즐에 대한 힌트는 곳곳에 있는 문서나 벽에 그려진 그림에서 얻을 수 있다. 퍼즐을 풀고 방을 건너갈 때마다 주인공의 과거에 대한 단서가 드러나며, 벽에 쓰여진 글씨에서도 주인공의 과거를 짐작할 수 있게 해 놓았다.

퍼즐의 난이도는...... 헬이다. 개인 기량 차이는 있겠지만, 빈말로라도 쉽다고는 말하지 못할 정도다. 이 난이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동일해서 필자는 처음 일어난 방에서 30분을 헤매고 퍼즐에 조예가 깊은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퍼즐의 종류도 다양하다. 보통 퍼즐게임은 같은 방식을 조금씩 변주해서 풀어나가면서 어느 정도의 반복성을 부여하는 반면, 이 게임은 같은 종류의 퍼즐이 거의 없다. 게다가 정해진 순서도 없어서 더욱 복잡하다. 방에 들어서면 풀어야 할 퍼즐이 대략 6~7. 그 중에서 조작할 기구나 장치가 빠져 있어서 못 푸는 것들을 제외하고 다른 퍼즐을 먼저 풀게 되는데, 나중에 푸는 퍼즐이나, 빨리 푸는 퍼즐이나 똑같이 어렵다. 알파벳 순서를 숫자에 대입해서 푸는 퍼즐도 있고, 숫자의 규칙성, 그림의 규칙성을 찾는 퍼즐도 있다. 이게 참 애매한 것이 물 흐르듯 풀리는 퍼즐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퍼즐도 있어서 난이도를 짐작하기가 어렵다.

음침하면서 폐쇄적인 독특한 분위기

연출이 꽤 좋은 편이다. 가격이나 용량, 볼륨을 보면 인디게임이 분명해 보이는데, 연출이 좋다. 사실 퍼즐게임에서 연출이라고 부를만큼 역동적인 장면이 등장하지는 않는데, 이 게임에서는 특유의 분위기가 연출의 효과를 대신하고 있다. 플레이 내내 은은하게 들리는 BGM도 분위기 있고, 퍼즐을 풀고 방을 넘어갈 때마다 한 번씩 튀어나오는 기계음성도 이런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일조한다. 뭐랄까. 음산하면서도 폐쇄적인?

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공포게임을 무지하게 싫어한다. 공포 비슷한 분위기만 조성되도 바로 게임을 꺼버리고 플레이를 포기할 정도인데, 그런 필자에게도 자극적이지는 않았지만 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가 게임 전반에 스며들어 있었다. 넓은 우주선 안에 홀로 있다는 설정, 피로 쓴 것처럼 붉게 쓰여진 퍼즐의 힌트들. 모든 것이 어우러져 음침하면서도 신비로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필자는 자극적인 장면 하나 없이 이러한 연출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며 게임을 즐겼다.

조작이 불편하고, 볼륨이 적은 건 단점

계속해서 장점만 나열했지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일단 인디게임이라는 타이틀이 걸려있는 만큼, 볼륨이 작고 그래픽이 좋은 편은 아니다. 퍼즐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2~3시간이면 깰 수 있는 게임이다. 중간 중간 퍼즐이 막힌 필자 역시 3시간 30분 정도 만에 엔딩을 봤으니까. 거기다 퍼즐이 한 번 막히면 답이 없다. 게임 내에서 특별히 다른 힌트를 제공하지도 않고, 단순히 계속 짱구를 굴려서 찾는 것밖에 답이 없다.(사실 필자는 해보다 도저히 풀 수 없는 일부 구간은 해외 유튜버의 공략을 참조했다, ㅜㅠ)

조작이 불편한 것도 단점의 하나다. 돌아가는 시점이나 퍼즐을 푸는 데는 방해가 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걸음이 너무 느려서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다. 퍼즐 풀이에 쓰는 문서를 실시간으로 볼 수 없는 것도 불편한 점이었다. 문서를 열어서 보고, 닫은 다음 그걸 기억해서 퍼즐을 풀기는 힘들기에 필자는 이 게임을 하는 내내 노트와 휴대폰을 옆에 두고 플레이해야 했다.

개선할 점이 있지만, 충분히 수작으로 볼 수 있다. 차기작이 기대될 정도

자잘한 단점은 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인디게임이라는 틀에서 봐줄 수 있는 정도다. 모든 걸 감안해도 Palindrome Syndrome Escape Room은 충분히 즐겨볼 법한 게임이다. 엔딩을 봐야만 모든 게 이해된다는 점이 조금 골치 아프지만 스토리 역시 필자의 마음에 아주 쏙 들었다. 개발사인 MC2게임즈의 차기작이 기대될 정도로 오랜만에 즐긴 괜찮은 퍼즐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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