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순한맛, 속은 매운맛. PC 'Art of rally' 리뷰

  • 입력 2020.09.28 12:55
  • 기자명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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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게임과 예술의 상관성' 혹은 '게임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시각은 게이머마다 차이가 있다. 세계 각국의 게임 커뮤니티에서 이에 대한 논의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게이머마다 그리고 게임 평가를 주로 하는 사람마다 '좋은 게임' 혹은 '예술적 가치를 지닌 게임'을 선정하는 기준과 조건은 서로 다르다. 당연히 이 주제의 '어그로' 수위는 거의 최상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라스트 오브 어스 2'가 대표적인 사례다. 거센 폭풍이 한 번 휘몰아친 뒤로, 논쟁에 대한 시각 차이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게임을 다른 분야에 비빌 수 있는가?' 에 대한 기준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게임은 재밌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게이머가 감동 한다면 그게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굉장히 간단하고 원론적인 말이다. 수많은 게임사가 이 간결한 조건을 채우기 노력하고 있으며, 쉽지만 어려운 이 조건을 담아내기 위해 개발자들의 영혼은 타들어 가고 있다. 

막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꼭 뭔가 엄청난 조건을 갖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크소울 3 무명왕의 난이도' '위쳐 3 프리실라의 노래 컷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레이드 콘텐츠' '레데리 2의 자유도와 몰입감' 이런 것들이 바로 재미와 감동을 담아낸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게임 자체가 훌륭한 경우도 있지만, 게임을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는 '게이머'들도 있다. 각종 e스포츠에서 쏟아지는 프로게이머들의 플레이를 보면 '과연 같은 게임을 하는 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이들도 예술가, 아티스트나 다름없다. 게임과 예술, 게임이 다른 분야와 동일 선상에 논의되려면 게임 자체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이를 즐기는 게이머들의 참여와 공감도 필요하다.

논란의 대상이 될 위험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꺼낸 이유는 이번에 다룰 게임이 'ART'라는 단어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Art of rally'라는 게임이다. 미술, 예술, 그림이라는 뜻의 'art' 와 경주를 뜻하는 'rally' 가 붙었다. 자동차 경주의 어떤 예술적인 면을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다.

 

레이싱 게임에 '예술'을 엮는다고 한다면, 아슬아슬한 코너링과 자로 잰듯한 드리프트가 떠오른다. 레이싱 게임에는 영 소질이 없는 편이라 인 코스와 아웃 코스, 전륜과 후륜의 차이, 드리프트의 원리가 뭔지도 사실 잘 모른다. 후하게 쳐줘도 '카트'나 '범퍼카' 수준인 뉴비인데 과연 이 게임이 담은 예술성을 느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과감하게 'Art of rally'라는 이름을 단 이 게임은 과연 어떤 예술적 가치를 담아왔는지, 또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레이싱 게임으로서의 재미는 있을지 한 번 감상해보자.

'아트 오브 랠리'가 추구하는 예술적 가치는 '미니멀리즘'이다. 이 게임은 덜어냄과 단순함, 최소한의 간결함을 추구한다. 화려하고 복잡한 그래픽 대신 폴리곤 덩어리를 큼직하게 툭툭 썰어낸 듯한 투박함을 그대로 내놨다.  

 

그렇다고 디테일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왜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플레이어의 국가와 혈액형을 선택해야 한다. 레이싱 게임답게 자동차에 대해서는 제법 자세하게 설명한다. 차량의 엔진 구동 방식, 흡기방식과 변속, 간단한 장단점과 스토리 등을 알아볼 수 있다. 어디까지나 '텍스트'가 자세하다는 뜻이지, 직접 수치를 조절하거나 개입할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첫 주행에서는 두 종류의 차량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고, 색상을 선택할 수 있다. 색상의 종류가 다양하진 않지만, 준비한 프리셋의 조합은 괜찮은 편이다. 아마 레이싱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튜닝이나 업그레이드와 함께 '데칼'과 '페인팅'으로 직접 꾸밀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게임은 '최소한'의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차량의 색을 고른다거나, 휠의 종류, 범퍼, 스티커 등의 선택지는 없다.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되면 간단한 오프닝과 함께 운동장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차 한 대를 볼 수 있다. '아트 오브 랠리'의 첫인상이 '단순함' 이었다면 튜토리얼부터는 그 생각이 조금 바뀐다. 

여러 장르의 게임을 하다 보면 대충 때깔만 봐도 어떤 게임인지 감이 올 때가 많다. 특히나 이런 레이싱 게임은 케쥬얼 아케이드 레이싱인지, 아니면 현실의 차량을 그대로 가져온 시뮬레이션인지 겉만 봐도, 찍먹만해도 바로 알 수 있다.

 

'아트 오브 랠리' 의 첫인상은 '카트 라이더' 정도의 아기자기한 게임이다. 알록달록 폴리곤 그래픽 배경에 자동차 역시 굉장히 귀여운 느낌이 든다. 쉬운 조작, 우당탕 범퍼카, 부스터와 미사일, 아이템 파밍과 튜닝을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은 완전히 깨진다. 이 게임은 '시뮬레이션'에 가까운 레이싱 게임이다. 즉, 현실의 차량 운전을 추구한다. '아세토 코르사'나 '프로젝트 카스'를 해본 게이머라면 어떤 느낌인지 알 것이다. 

 

'카트 라이더' 혹은 '니드 포 스피드' 정도의 캐쥬얼 아케이드 레이싱인줄 알았는데, 시작과 동시에 제대로 된 코너링도 하지 못했다. 겉은 굉장히 단순하고 쉽고 귀엽지만, 이 조작 방식은 상당히 높은 수준을 요구할 정도로 맵다.

'안쪽으로 코너를 돈다. 갑자기 차체가 바깥쪽 코너로 쏠리면서 튕겨 나간다. 급하게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꺾는다. 차량이 360도 회전한다.' 아마 시뮬레이션 레이싱 게임을 접해본 게이머라면 이런 경험을 한 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아트 오브 랠리'는 보이는 것과 다르게 만만하고 귀여운 게임이 아니다. 일단 '변속'과 '클러치'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옵션에서 어느 정도 보정 값을 조절할 수는 있지만 '이 정도는 좀 봐줄 수 있지'의 아케이드 레이싱 게임과는 다르다. 무작정 가속 버튼만 누르고 있다가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혹독한 레이싱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시뮬레이션 레이싱 게임을 즐기던 매니아들에게는 귀엽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아케이드 레이싱인 줄 알았던 게이머들은 속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전자의 경우엔 '기존에 하던 게임보다 쉽고 귀엽네. 힐링 된다'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 '귀엽고 예쁘긴 한데 엄청 어렵네. 속았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레이싱 게임인 만큼 '커리어' 모드와 '타임 어택' 모드를 플레이 할 수 있으며, 자유롭게 맵을 고를 수 있는 '커스텀 랠리'도 지원한다. '아트 오브 랠리'는 여러 차량이 한꺼번에 경주해서 1위를 가리는 방식이 아니다. 오로지 시간 단축을 위한 자기 자신과 싸움이며,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것 말고는 다른 차량을 볼 순 없다. 

 

굉장히 삭막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게임엔 '예술'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깔려있다. 바로 배경이다. 맵 곳곳의 숨겨진 아이템이나 스샷포인트를 모으면서 이 배경을 감상하는 것이 '아트 오브 랠리'의 색다른 재미다. '미니멀리즘'이 보여주는 단순함과 덜어냄의 아름다움이 잘 담겨있다.

 

'아트 오브 랠리'에는 핀란드, 노르웨이, 독일, 일본 등의 국가의 도로를 달려볼 수 있다. 조작은 현실성을 추구하고, 배경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동화 같은 느낌을 보여준다. 근데 또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의 광원 효과도 뛰어나고, 단순하지만 개성이 살아있는 관중들도 톡톡 튄다. 레이싱 게임인데 자동차보다 주변 배경에 더 눈길이 가는 독특한 게임이다.

'아트 오브 랠리'는 아기자기한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것 같은데 굉장히 어려운, 어른들을 위해 만든 장난감을 다루는 것 같은 게임이다. 아케이드 레이싱을 기대한 게이머라면 제대로 움직이는 것도 힘들 만큼 어려운 조작에 당황스러울 것이고, 시뮬레이션 레이싱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의외로 힐링 요소 가득한 게임이다.

 

하지만 이런 반전은 오히려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게임 장르에 입문하는 계기가 된다. 일부러 게이머들을 속이려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무심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많은 공을 들인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게임'이 주는 재미나, 레이싱 게임에서 기대했던 질주본능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아쉽다. 

 

'잘못된 만남'이 계기가 되어서 시뮬레이션 레이싱에 입문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타이틀은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쉬워 보이지만 어렵고, 무심한 것 같지만 세밀한 게임이다. 겉만 보고 속지말라고 조언하고 싶고, 또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꼭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독특한 레이싱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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