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 미 와이(Tell me why), 심상치 않은 내러티브 어드벤처 게임

  • 입력 2020.09.02 13:26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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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미 와이(Tell me why)는 지금까지 돈노드 엔터테인먼트(Dontnod Entertainment)가 노력한 결과물이다. 그들은 여전히 퀴어 무비에 몰두하지만,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부터 전해지는 스토리텔링이 퀀틱 드림과 텔테일 게임즈의 내러티브에 조금씩 근접하고 있다.

LGBT 이야기는 그동안 문학 세계에서 간과하거나 지나치기 쉬운, 때로는 실망하는데 익숙해 왔다. 돈노드는 전작의 초현실적 세계관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미스터리 장르를 접목시켜 강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이 게임은 10년 만에 재회한 쌍둥이 가족, 타일러와 알리슨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타일러가 7년 동안 재활센터에서 근무하고, 3년 동안 상담사 일을 했다는 점에서 어색한 공기가 감돈다. 두 사람이 나누는 추억거리는 알래스카의 추운 날씨처럼 건조하고 차가울 수밖에 없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설명할 마음이 없다. 이들이 기억하는 과거는 고통스럽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잘못됐으며, 게이머들이 먼저 진실을 탐구하길 바란다. 다행히도 초반의 느슨한 전개 덕분에 게이머들이 개입할 지점은 충분하다. 이들은 단지 10년이라는 기간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함께 그 흔적을 천천히 목도할 필요가 있다.

트렌스젠더와 가족,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와 큰 틀이 닮아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돈노드는 퀴어 게임의 빛나는 예를 만들어 내기 위해 성소수자들과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사 돈노드뿐만 아니라 XBOX GAME STUDIOS에서 근무하는 성전환자, 성소수자, 성별을 확정하지 않은, 어쩌면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스태프들까지 참여해 창작에 도움을 주었다. 캐릭터 디자인과 내러티브 구조, 대사 등에도 폭넓게 참여하며 스토리텔러를 자처했다.

안심해도 된다. 이 게임은 내러티브 어드벤처 장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전개는 예상하기 힘들고, 제작진이 감당할 수 있는지 의문까지 드니까. 예상외로 날카롭고, 무거운 분위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돈노드의 이야기에 천천히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타일러와 알리슨은 쌍둥이라는 혈연관계 덕분에 서로의 추억을 공유하며, 직접 목격할 수 있다. 유대에 집중하면서 과거를 기억하고, 어렴풋한 실루엣을 소환하는 것이다. 게이머는 이 홀로그램을 따라가면서 타일러와 알리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밝혀 나갈 수 있다. 이들 중 일부는 트라우마와 치유라는 큰 주제를 담고 있다. 결국 과거의 기억이 심연 속으로 빠져들면서 혼란을 겪지만, 가족의 사랑이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전개는 꽤 호소력이 있다. 돈노드는 내러티브 어드벤처 장르와는 별개로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는데 큰 욕심을 내고 있다. 그들이 따라가는 추억의 흔적은 상당히 세밀하고, 깊이가 있다. 한글화의 힘 덕분에 어마어마한 텍스트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물론 정서의 차이가 있겠지만, 감정이입을 하는데 조금의 무리도 없다.

타일러와 알리슨의 유대는 자연스럽지만, 균열의 조짐을 보일 수도 있다. 내러티브 어드벤처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다. 쌍둥이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게이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네 식구는 나인 줄 알았는데.”라는 대사만 보더라도 이야기의 전개가 안개 속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암시하고 있다.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는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주변을 산책하고, 특정 물체와 상호 작용을 반복한다. 알리슨은 타일러가 파이어위드라는 재활센터에 머무는 동안 델로스 크로싱(Delos Crossing)이라는 마을에서 천문학과 롤러 더비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타일러는 이제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며 게이머 역시 그들의 눈과 귀가 되어 델로스 크로싱에서 내려오는 여러 전통과 지역적인 문제까지 파고들 수 있다. 물론 드라마의 초점이 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이 변칙적인 메커니즘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알래스카와 그 풍경을 앞에 두고 잠시 숨을 고르는 것도 좋다. 돈노드는 알래스카 출신의 아티스트와 함께 문화와 관련된 자문까지 받아 가며 작업했다.

이 게임의 플래시백은 타일러와 알리슨의 어린 시절 기억과 맞닿아 있다. 매우 중요한 실마리가 되기 때문에 사실상 플롯 장치와 다름없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두 쌍둥이는 혈연관계 덕분에 유대에 집중하며 과거의 기억을 볼 수 있지만, 다르게 기억하기도 한다. 기억의 조각이 두 가지로 쪼개지면서 게이머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것은 게이머에게 결정권을 주기 위한 좋은 핑곗거리가 되겠지만, 설득력도 있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와 어긋나면서 두 사람의 의견이 달라질 수 있으며, 자칫 확증편향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자기합리화의 함정에 빠질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이고, 주변 사람들과 환경이 그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방대한 텍스트는 한글화에 힘입어 게임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시절 간직하고 있던 가상의 동화가 퍼즐을 푸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뒤에도 설명하겠지만, 돈노드는 이런 이솝 우화 스타일 역시 허투루 제작하지 않았다. 빼곡한 목차 뒤에 펼쳐지는 빈틈 없는 한글화와 삽화를 지켜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게임할 맛이 난다.

다만 어색한 한글 번역이 제법 보인다. 직역 수준의 한글 번역도 당황스럽지만, 일부 존칭이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깨는 경우가 있었다. 차후 에피소드가 공개될 때 꼭 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싸라는 단어까지 쓴 것을 보면 충분히 피드백의 여지가 있다.

이 게임 역시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시리즈처럼 에피소드가 분리되어 있다. 알고 있는 것처럼 에피소드 1827일 발매했으며, 에피소드 293일 공개 예정이다. 추후 일주일마다 에피소드가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게이머의 선택이 어떤 결론으로 내달릴지는 마지막까지 플레이해 봐야 알겠지만, 에피소드 1까지 플레이한 입장에서도 스토리의 힘은 강력했다. 물론 에피소드 1은 배경 설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게임의 진짜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인터렉티브의 장단점이나 어드벤처 장르에 대해 논할 게 별로 보이지 않는다.

돈노드는 퀴어 게임의 좋은 예를 만들기 위해 2년 동안 성소수자들과 깊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뿐만 아니라 알래스카 남동부 시골을 콘셉트로 가상의 마을, 델로스 크로싱을 탄생시켰다. 게임의 배경에 등장하는 벽화나 토템 등은 틀링기트족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들은 일반 대중에 어필할 수 있는 서양 예술보다는 부족 구성원과의 유대감에 더 깊은 의미를 두고 있다. 도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영적 세계는 물리적 세계와 연결되면서 조상과의 관계를 결속시킨다. 돈노드는 틀링기트 문화에 대한 지식에 충만한, 또는 엄격한 프로토콜을 자부하는 알래스카 출신의 장인과 디자이너를 현지에서 고용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돈노드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위해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 마을 곳곳에 그려진 벽화나 토템 등에도 그만한 배경 설명이 가득차 있다. 예를 들어 상점 옆에 그려진 벽화는 본고장에서 사랑받는 넙치와 게가 그려져 있다.

모계사회로 알려진 틀링기트족은 어머니로부터 노래와 춤 외에 역사와 특권까지 물려받는다. 이들을 상징하는 큰까마귀(Raven)와 독수리(Eagle)는 가족과의 유대를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한 가족의 사랑을 풀어나가는데 이만한 배경도 드물 것이다.

에피소드 1은 아주 위험한 떡밥을 던지고 끝을 맺었다. 10년 만에 재회한 타일러와 알리슨 사이에 아슬아슬한 전개가 펼쳐질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야기는 트랜스젠더와 그 문화에 집중하면서도 날카로운 스토리텔링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캐릭터 설명에 치우친 나머지 다소 속도감이 느슨한 점은 있지만, 아직 에피소드 1에 그친 상태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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