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 갈다가 모험하고 온 이야기에 대해서, PC 'Creaks' 리뷰

  • 입력 2020.07.30 13:18
  • 기자명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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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플랫포머 어드벤쳐 게임을 플레이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원래는 FPS나 RTS, MMORPG처럼 누군가와 경쟁하면서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빠른 템포의 장르를 좋아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이를 먹고 피지컬이 안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게임의 취향도 변했다.

 

전에는 몰랐던 '혼자 플레이하는 재미'나 '느림의 미학' 같은 것을 알게 됐다. 순발력이나 타이밍을 요구하는 게임도 좋지만, 새로운 걸 느끼고 '감상'하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 순간의 선택으로 승부가 결정 나는 '피지컬'류의 게임보다는 차라리 '뇌지컬'이 필요한 게임 '도전'보다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이 좋다.

 

어드벤쳐에 퍼즐을 섞은 장르는 개발사가 그려낸 '새로운 세상'을 보는 재미가 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 혹은 요즘 일부에서 유행하는 '이세계'를 감상하는 경험은 늘 즐겁다. 단순히 구경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독특한 방식의 퍼즐을 풀면서 개발사가 구현해낸 세상에 점점 녹아들게 된다. 

 

이번에 소개할 게임 역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모험'의 기대감을 가득 채워줄 만한 게임이다. 우연히 전구를 갈다가, 찢어진 벽지 뒤의 공간을 발견한 주인공이 칙칙한 지하세계를 탐험하는 이야기. '틈 뒤에 새로운 세상 있어요!' 'Creaks'다.

플레이어가 선택한 카드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필그림스'나 독특한 우주 공간을 그려낸 '사모로스트' 시리즈를 플레이한 경험 있는 게이머라면 개발사 '아마니타 디자인'의 이름이 생소하진 않을 것이다. 'Creaks'역시 '아마니타 디자인'이 새롭게 만들어낸 세상이다. 이번 신작 역시 개발사의 개성을 그대로 이어가면서도, 전작들과는 다르게 조금 분위기를 잡았다.

 

'Creaks' 역시 앞서 언급했던 개발사의 게임들처럼 텍스트를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게임의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주인공의 행동이나 배경음악의 효과 만으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스토리의 비중이 아예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이 게임이 보여주고자 하는 분위기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야기의 시작은 방안의 전구를 교체하려다가 우연히 벽 한쪽의 찢어진 벽지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한다. 벽지 뒤에는 어딘가로 이어지는 좁은 터널이 있었고, 그 끝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아주 긴 사다리가 있다. 거대한 동굴처럼 보이기도 하고, 혹은 태엽들이 다닥다닥 붙은 거대한 기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하 세상은 아주 좁은 통로와 사다리가 계속 연결되어 있다. 이제 주인공은 여기가 어디인지, 그리고 계속된 사다리는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과연 출구가 어디인지를 찾아야 한다. 어둡고, 칙칙하고, 어딘가 괴기스러운 지하세계는 주인공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존재들은 사나운 기계 모양의 개, 촉수를 달고 둥둥 떠다니는 외계인, 주인공의 행동을 따라 하는 허수아비 같은 것들이다. 어딘가 비슷한 특징이 없고, 컨셉도 제각각인 이런 존재들의 공통적인 약점은 바로 '빛'이다. 주인공을 위협하는 몬스터들은 빛을 받으면 '지구본'이나 '탁자' 같은 가구로 변한다. 처음에 전구가 깜빡이는 걸 보여준 연출은 아마 이런 약점을 미리 알려주기 위한 복선이었던 것 같다.

 

이런 몬스터들을 피해서 진행하다 보면 사람처럼 행동하는 '새'를 볼 수 있다. 이 새는 어떤 책을 찾는 것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멍청해 보인다. 처음엔 들켜선 안 될 것 같지만,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가다 보면 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플랫포머 기반의 어드벤쳐는 사실 '퍼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게임에서 제시하는 퍼즐의 난이도와 해결 방법은 게이머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 즐거움이 달라질 수 있다. 좌우로 움직이며 점프를 하는 게 전부인 게임도 있지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순발력과 피지컬을 요구하는 게임도 있다. 그리고 오로지 '뇌지컬' '추리 능력'만을 요구하는 게임도 있다.

 

이번 'Creaks'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보다 플레이어가 '직접 움직이며 해결하는 퍼즐'에 좀 더 비중을 뒀다. 기존 작들이 '포인트 앤 클릭' 방식의 조금 단순한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게임 속 주인공을 움직여야 한다. 그렇다고 수많은 트라이가 필요하거나, 복잡한 조작이 필요하진 않다. 제한 시간에 쫓긴다거나, 제한된 플레이 횟수 같은 페널티가 없어서 충분히 생각할 만한 시간 여유가 있다.

게이머들의 호불호가 갈린다면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기존작들의 경우엔 마우스로 게임을 진행했고, 그만큼 앞의 상황을 예상하지 못하는 전개로 흘러가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Creaks'는 '예상치 못했던 전개'의 측면, 즉 스토리텔링 부분의 참신함이 전작보다 많이 약하다. 우선 게이머가 주인공을 조종하며 이야기를 주도하고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퍼즐'은 비슷비슷한 패턴을 조금씩 바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진행하다 보면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이야기의 흐름이 계속 끊어진다. 조금만 움직이면 퍼즐에 발목을 잡히고, 게임 플레이의 템포는 늘어진다. 특히 막히는 구간에서 머리를 쓰다 보면 앞의 이야기도 흐릿해진다. '분위기는 대충 알겠는데 뚜렷하게 뭐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모르겠네'의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게임 자체가 엉망이라는 뜻은 아니다. 게임의 후반부에는 대충 정리가 되는 느낌이지만, 게임 내내 풀어내는 이야기의 '개연성'은 많이 약하다. '아마니타 디자인'이 보여주던 기존의 작품들과는 그 방향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게이머마다 받아들이는 것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 바로 독특한 배경과 OST다. 우선 'Creaks'에는 다양한 공간이 얽혀있다. 천체 관측소, 식물 연구실, 도서관 같은 공간과 저택의 복도, 해골 조각상이나 크툴루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촉수까지. 어둡고, 칙칙하며 무거운 분위기를 물씬 뿜어낸다. 하지만 공포, 호러의 느낌은 아니다. 분명, 기괴하고 낯설지만 색다른 매력들이 곳곳에 뒤섞여 있는 세상일 뿐이다. 일부러 기분 나쁘게 만든 느낌은 아니라는 뜻이다.

 

특히 개인적으로 잔잔하게 깔리다가, 퍼즐의 결정적인 힌트나 흐름에서 변화하는 배경음악이 좋았다. 확실한 지표가 없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도움을 주는 것은 배경음악이다. 지루함, 기괴함을 느낄 수 있는 게이머들을 달래주며,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준다. 

 

여기에 다시 한번 이 분위기를 오해하지 않도록 준비한 것이 바로 '수집 요소'다. 이번에는 독특한 '유화'를 게임 곳곳에 배치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도와주던 전작들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단어 그대로 '볼거리'일 뿐이지 게임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일종의 '미니게임'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게임의 숨겨진 방, 혹은 진행하면서 마주하는 복도에는 '유화'가 걸려있다. 이 그림은 아래의 체인을 당기면, 오르골처럼 조금씩 움직이며 음악을 연주한다. 아쉽지만 이 '유화'만의 독립적으로 이야기로 연결되진 않는다.

 

'유화' 역시 작은 퍼즐 요소가 숨겨져 있는데, 난이도는 아주 쉽다. 순서에 맞춰 클릭해주는 정도. 가볍게 감상하고 끝낼 수 있는 수준인 만큼 모든 업적을 깨는 것이 어렵지 않다.

'Creaks'는 개발사가 잘하는 것을 꾸준히 했을 때, 하던 걸 계속해나가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이다. '아마니타 디자인'은 확실히 어드벤쳐와 퍼즐을 어떻게 다루고 조합해야 하는지, 게이머들이 어떻게 하면 새롭게 만들어낸 그들의 세상에 녹아들게 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전작들과는 다른 방식을 준비했지만, 독특한 분위기와 디테일은 명작을 빚어낸 저력을 어김없이 보여준다. 물론, 게임의 전체 이야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그 흐름을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Creaks'는 플레이어가 경험했던 기억의 조각이 마지막에 가서야 다 정리되고 맞춰진다. '아 이제야 이해가 되네'하는 방식이다.

 

전작의 방식을 기대했다면 조금 다른 느낌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플랫포머 어드벤쳐를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분명 만족할 것이다. 다양한 컨셉의 세계관을 오밀조밀하게 잘 엮었고, 적당한 수준의 퍼즐과 다양한 수집요소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그래픽에 독특하게 그려낸 세계를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장르를 좋아한다면, 그리고 '아마니타 디자인'의 게임과 코드가 맞는다면 꼭 플레이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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