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웨이(Pathway), 아기자기한 인디 게임의 세계로

  • 입력 2020.06.29 12:11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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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월드 액션 게임 GTA(그랜드 테프트 오토) 5를 무료로 배포하면서 게임계에서 큰 사고를 쳤던 에픽게임즈가 이번에는 인디 게임 <패스웨이(Pathway)>를 전면에 내세웠다. 인디계에서 나름 이름을 알리고 있는 처클피시가 배급을 맡았으며 2019년 스팀을 통해 발매돼 준수한 평가를 받았다.

패스웨이는 1936,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나치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모로코 대서양 연안의 카사블랑카를 첫 시작으로 예루살렘, 시리아, 아라비아 등을 횡단하며 신비한 유물과 고대 사원을 놓고 지속적인 전투를 이어가야 한다.

아마 이 게임을 플레이한 올드팬들은 영화 <인디아나존스> 시리즈, 엄밀히 따지면 1<레이더스>를 바로 떠올렸을 것이다. 나치가 중요한 적으로 등장하는데다 성경을 인용하는 등 <레이더스>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다. 게다가 배경 시기도 정확히 일치한다. 제작사는 5년이라는 기간 동안 자신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고고학자와 모험가의 꿈을 16비트 픽셀의 그래픽에 그대로 녹아내렸다.

전개 방식은 기본적으로 엑스컴(XCOM)과 비슷하다. 각 캐릭터당 행동력이 2가지가 할당되어 있고, RPG 장르까지 표방한 만큼 다양한 능력치들을 보유하고 있다. 생명력에 영향을 주는 활기, 특수한 능력을 소비하는 용기에 영향을 주는 의지력, 원거리 공격에 영향을 주는 재주, 이동 거리에 영향을 주는 민첩, 경험치에 영향을 주는 재능, 회피와 공격에 영향을 주는 반사 신경, 피해 대미지에 영향을 주는 인내로 나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전투가 끝날 때마다 쌓이는 경험치일 것이다. 스킬트리를 통해 추가되는 능력들은 전투에서 매우 중요한 승리 요소다. 예를 들어 아라비아의 오마르라는 캐릭터는 산탄총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탄창을 늘리거나 대미지를 더 상향시킬 수 있다.

턴제 시뮬레이션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전략적인 이동일 것이다. 이 게임 역시 엑스컴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타일로 이동하면서 벽을 두고 적들과 효율적인 전투를 이어가야 한다. 친절하게도 가드가 가능한 방향을 아이콘 형식으로 알려주기 때문에 손쉬운 전술이 가능하다.

다만 전투 중에는 탄환 양이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나치들에게 기습을 당하는 상황이 생기면 행동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팀원 한 명이 금방 사살당할 수 있다. 이 게임은 초반에 31조로 움직이는데 단 두 명으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다행히도 캐릭터들이 모두 사망한다 해도 경험치와 아이템들은 그대로 남게 된다. 다시 한 번 전술을 고심해 보라는 제작사의 의도다. 광활한 지도를 또 한 번 펼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적들의 인공지능에 적응하고 나면 이 게임만의 매력이 뭔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능력치 외에도 각 캐릭터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라는 것이 있다. 바론은 독일의 유명한 협잡꾼이자 항상 탐욕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위험한 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캐릭터는 초반에 팀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저격용 총을 소유하고 있는데 매우 유용하게 게임을 이끌 수 있다. 의료용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러시아 과학자 나탈리아 같은 캐릭터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위험에 노출되는 반면 바론은 전력 질주라는 특수한 액션과 동시에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생존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편이다. 대륙을 횡단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우연과 사고가 터지는데 이때 사기꾼 바론이 등장해서 해결한다.

이처럼 각 캐릭터들의 특권을 활용하면 힘겨운 전투 한 번 없이 유용한 자원을 획득할 수 있다. 여기서도 앞서 설명했던 <레이더스>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오마르가 고대 언어를 분석할 때가 바로 그런 경우다. 여기에 16비트 픽셀의 그래픽이 무색할 정도로 뛰어난 광원 효과를 보여주는데 제작사의 탐험 열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존스 박사가 햇빛을 받아 유물 앞에 서 있는 장면을 연상케 하거나 위험에 빠진 나치들이 의외의 상황을 초래시키는 경우도 <레이더스>에게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각 캐릭터들에게 주어진 아이템의 디테일에도 놀랄 것이다. 아이템에도 레벨이 존재하며, 레어, 에픽, 전설, 유니크로 세분화했다. 여기서 흡사 <디아블로>에도 존재했던 수많은 아이템들이 떠올리게 된다. 레어나 전설 아이템을 획득했다고 해서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대미지나 아이템의 기능들을 잘 훑어보면 광활한 지도 외곽을 탐험하고 싶은 욕심이 날 지도 모를 일이다. 제작사 역시 그런 의도로 흔한 아이템보다도 못한 전설 아이템들을 여기저기 떨구어 놓았다. 아마도 존스 박사가 허탕을 칠 때의 기분을 떠올리며 제작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지도 상에 존재하는 장소들은 플레이할 때마다 무작위로 할당된다. 예를 들어 모로코로 납치된 동료를 구출하는 첫 번째 미션은 어느 장소에서 그의 행적을 찾을 수 있을지 예측할 수가 없다. 비밀 장소를 우회해서 휴식을 취하는 텐트로 곧장 향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결과를 알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하는 루트도 다수 존재하고 있어서 여행 도중에 큰 변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캐릭터가 사망이라도 하면 다시 출발지로 돌아가 전술을 새로 짜야 한다.

끔찍한 예언 같지만, 출발지로 돌아가라는 건 제작사의 노골적인 의도임이 분명하다. 레벨이 그대로 남는 것도 그렇지만, 이동 수단인 지프의 연료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남아도는 탄환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연료가 바닥 나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게임의 전투는 다소 반복적이다. 앞서 거창하게 설명했던 바론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아마도 처음 시작하는 게이머들은 제한된 탄환보다는 생명력과 방어력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초반에 유일하게 의료용품을 취급하는 나탈리아가 금방 사망하는 일이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나면 게이머들은 이제 가드가 가능한 벽들을 찾아서 후퇴하는 일을 우선시하게 된다. 바론을 후방으로 보내 다가오는 적들을 호시탐탐 노리게 하고, 양 갈래로 서브 캐릭터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해서 치료와 갑옷 수리를 병행한다.

탄환이 제한됐다는 설명에서 오해할 수 있는데 전투 중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장전이라는 액션이 이 게임에서 무척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마르가 소유한 산탄총은 초반에 단 두 발로 제한되어 있어서 행동력을 제대로 계산하지 않으면 나탈리아보다도 먼저 황천행으로 갈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공격의 성공 확률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코앞에 있는 적을 두고도 공격에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Miss’가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주장이 과장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바론을 중심으로 한 교란 전술이 가장 유용했다. 이것도 역시 우연이겠지만, 바론이 유난히 ‘Miss’를 머리에 달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혼자서 세 명 이상을 처치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게임의 턴제 전략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게이머들은 매복이라는 특수 액션을 적들에게서 먼저 감지하게 될 것이다. 마치 얼음땡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액션만 취하면 저격이 되기 때문에 빨간색 타일 안에 갇히게 되면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와 수리에 집중하려고 팀원들을 뭉치게 하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팀원들을 산개한 다음에 매복액션을 취하는 적을 먼저 저격해서 승기를 잡을 수도 있다. 적들의 공격에 적응할 때가 되면 역으로 바론이 매복액션을 취하고, 동료들을 활용해 측면을 노릴 수도 있다.

특히 미국의 과학자인 Bellomy 교수가 사용하는 멜트다운 액션이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타일 라인을 타서 그대로 공격하는 이 특수한 액션은 신속하게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중요한 전술이 된다. 뒤에서 잠깐 언급하겠지만 무리 지어 오는 군용견을 처리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제작사의 의도는 캐릭터 선택에서 이미 나타나 있다. 잠금 상태가 되어 있는 캐릭터들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그들의 능력치까지 세분화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지도를 모두 탐험하라는 강요가 그저 허튼 말이 아니다. 특권을 활용해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면 단숨에 네 명의 팀원들로 전투를 치를 수가 있다. 이 게임은 팀원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반가운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나치들에 대한 설명이 별로 없었는데 이들 중에는 갑옷을 입은 자들과 일반 병사가 아닌 간부들이 일부 섞여 있다. 나탈리아 같은 캐릭터들이 금방 사망하고, 저격용 소총을 가진 캐릭터들이 마지막까지 살아남게 하는 원인 제공자들이다. 갑옷을 입은 나치 병사 머리 위에 ‘Miss’가 남발하게 되면 사실상 동료 한 명을 쉽게 잃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간부는 갑옷은 착용하지 않았고 무기류도 약하지만, 추가 공격을 명령하는 액션을 취한다. 자칫 욕심을 냈다가 벽과 거리를 두고 무방비 상태가 되면 바로 사살당할 수 있다.

그 밖에 이동 거리가 뛰어난 군용견은 보통 무리를 지어 다가오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나탈리아의 미끼 작전이나 수류탄 등 광범위한 공격으로 먼저 그 뿌리부터 뽑아 버려야 한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무작위로 배정된 장소와 아이템들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전투가 다소 반복적이라는 단점을 덮어 버리기에도 충분하다. 5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짧다고 느낄 수 있지만, 각 장마다 탐험할 수 있는 지도가 광활한 편이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오히려 캐릭터들의 세분화된 능력치가 번잡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정해진 특권을 머릿속에 넣어 두었다가 예상했던 이벤트에서 꺼내는 일도 많았다. 아프리카를 둘러싼 유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레이더스>처럼 그 시대와 배경을 향한 문제의식을 나름대로 발휘하고 있어서 전투마다 동기 부여도 충분했다. 개인적으로는 스퀘어 에닉스의 영원한 대표작 <파이널 판타지> 여섯 번째 작품이 연상이 됐는데 2D 캐릭터들의 아기자기한 움직임 때문이었던 것 같다. 비록 최근 그래픽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16비트 그래픽의 추억을 되살릴 만한 글씨체와 BGM이 이 게임에 계속 집중하게 했던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

한글 패치가 추진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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