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게임으로 떠나는 완벽한 여행, 저니 (JOURNEY)

  • 입력 2020.06.16 13:23
  • 기자명 캡틴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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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콘솔판에서 수도 없이 여러 번 명작게임이라고 언급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인사인 저니 (JOURNEY)PC 버전으로 스팀에서 런칭되었다.

크아. 이거 뭐 안 해볼 수가 없는 그런 게임이 아닌가!

그런데 이거 참 해보기도 전부터 생기는 의문점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저니 (JOURNEY)하면 사막 배경의 스크린샷들과 영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저니가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출시 이전 개발단계에서였는데, 감각적인 그래픽으로 주목을 꽤 받았었고 나도 그때 인상 깊게 보았다. 그렇게 보기만 하고 정작 게임은 해보질 않았다. 그리고 제법 세월이 지나 PC판으로 맛보게 되었던 것인데, 아무래도 커다란 로브를 뒤집어쓴 채 사막을 헤매는 캐릭터의 모습을 제외하곤 게임에 대한 내 머릿속 내적 이미지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리뷰를 쓸 때 가급적 사막 사진으론 시작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심지어 장르가 뭐인지도 모르겠는 거다. 보통은 해보지 않은 게임이라고 해도 대충 뭐 하는 게임인지는 알고 있는 편인데, 저니의 이미지는 상당히 내 안에선 모호했다.

하여간 게임을 스타트했고, 단숨에 엔딩을 봤고, 결과적으론 아주 아주 만족스러웠다!

 

PC 스팀이라는 편리한 구동 환경에 수려한 그래픽에 비교해 그다지 높지 않은 사양 (농담이 아니라, 인텔 CPU의 내장 그래픽 카드로도 원활하게 돌릴 수 있다. 그래픽 수준을 감안하면 최적화도 놀랍다). 거기에 원래도 혜자스러운 가격에 오픈 기념 할인 이벤트까지 하고 있다초회차 플레이타임이 2시간 정도로 짧아서 어디에 방점을 찍냐에 따라 혜자게임으로 불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 원 정도의 가격에 아주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건 제법 괜찮은 거 같다. 특히 요즘 코로나19로 여행가기가 더욱 부담스러운 상황. 저니 (JOURNEY)로 아름답고 완벽한 여행에 동참해보시라.

오케이, 그럼 계략적인 정보와 홍보는 여기까지. 이어지는 문단에선 이 뭐라 딱 잘라 말하기 애매모호하게 생긴 저니 (JOURNEY). 어떤 놈인지 놈의 속내를 낱낱이 알려드리겠다!

 

이거 그런 게임 아닙니다.

게임을 플레이하고, 리뷰를 쓰기 전 타이밍엔 혹시 내가 게임에 대해 오해하거나 잘못 안 것이 없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는 편이다. 그럼 대략적인 플레이어들의 궁금증이나 답변 같은 것도 눈에 들어오는데, 그 중 인상 깊은 답글이 있었다. ‘저니 다회차 요소 있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글이었는데. 있냐/없냐에 대한 답이 아닌 이거 그런 게임 아닙니다.’라는 답변이 달려있는거다. 낄낄낄! 맞다. 이거 그런 게임 아니다.

 

혹시 진짜로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두자면 저니엔 다회차 요소가 있다. 여러 번 플레이하면 캐릭터의 외관이 점점 바뀌고, 모든 업적을 클리어하면 특전인 백색 망토를 얻어 캐릭터의 이동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니는 다회차 요소 같은 게 중요한게임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다회차보다는 최초의 경험. 그게 진짜로 중요한 게임이다. “우와. 풍경 진짜 좋다.”라고 감탄하는 경험. “어후 깜짝이야!” 갑작스레 조성되는 공포 분위기에 심장을 졸이는 경험. 고난과 역경을 뛰어넘어 목적지에 도달할 때의 상쾌한 쾌감. 초회차의 모든 경험이 보석처럼 빛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물론 명작 영화를 몇 번이고 재탕해도 또 다른 재미를 느끼듯, 저니를 다회차 플레이하는 것도 나쁘지야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게임 아니다.’라는 답변은 뜬금없지만서도 의외로 완벽한 답변이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게임의 틀과 저니는 좀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드러난 저니를 플레이하기 전날에 던전앤파이터와 V4를 실컷 돌리고 있었고, 또 오늘 저녁엔 친구와 함께 리모트플레이로 컵헤드의 잉크지옥 최종 보스에 도전할 예정인데. 이런 게임들과 저니는 뭔가 결이 달라도 한참 다르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도전하고, 쌓아가고, 축적해가고, 내가 더 강해지고, 내 실력이 더 좋아지고. 이런 대부분의 게임들이 추구하는 무언가와는 아예 궤가 다르다. 뭐가 다른지는 다음 문단에서 이어진다.

 

 

일종의 아방가르드 게임

 

영화에는 굉장히 이상한 장르가 하나 있다. 바로 아방가르드라는 영화들이다. 이것은 일종의 실험영화인데, 대부분 도전적인 기술이나 형식을 보여주는 데 의의를 가지는 영화들인지라 기존의 영화들과는 아예 형식 자체가 다른 게 태반이다.

 

예를 들어 파란색 배경의 도시를 꽃 하나를 꺾어 들고 돌아다니는 아가씨를 무한정 보여준다던가, 무슨 이상한 얼음 같은 것이 빛나며 돌아가는 이미지를 상영시간 내내 보여주는 작품도 있고, 그냥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8시간 동안 찍은 작품도 있다.

 

아방가르드는 일종의 선봉대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며 영화가 표현 가능한 영역을 점차 늘려간다. 그렇기 때문에 백만 천만 관객이 들지 않아도 아방가르드 영화인들은 늘 존중받으며, 동시에 이 신선함을 좋아하는 마니아층도 존재한다.

 

저니 (JOURNEY)에 대한 후기나 플레이 스크린샷들이 아주 애매모호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건 바로 그래서다. 저니는 기존의 장르화, 정형화된 게임들과 좀 다르다. 반대의 예를 들면 가장 정형화, 장르화 된 게임은 최근엔 수집형 모바일 RPG’ 장르일 것이다. 그냥 장르명만 들어도 속 안의 콘텐츠는 물론이고 과금 요소까지 뻔하게 예측이 간다. 저니는 이것과 정반대다. 남들이 잘 만들지 않는 게임이다 보니 장르화 된 이미지가 모호하다.

 

저니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저 멀리 있는 산을 향해 가는 게임이다.

게임의 목적도 제대로 제시되지 않고 사막에 버려진 채로 시작하지만, 플레이어는 명확하게 목적을 알게 된다. 저 멀리에 광대한 빛을 뿜어 올리는 높은 산이 보이기 때문이다. 저기로 가면 되는구나. 그리고 끝없는 여정, 여행. 영어로 하면 저니 (JOURNEY)가 시작된다.

 

저니엔 언어가 없다. 하지만 설명이 없어도 알게 하는 기술의 달인들이 만든 게임 같다. 플레이어는 그냥 빛이나, 소리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어두운 곳에선 희미하게 빛을 내는 물건들을 쫓아가면 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땐 나를 부르는 생물이나 동반자의 소리를 따라가면 된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을 향해 가면 된다. 그 과정이 아무리 힘겹더라도 말이다.

 

진짜 멋진 점은 저니엔 현실 세계에서 정말 좋은 여행을 할 때의 감상이 전부 그대로 담겨져있단거다. 저니의 풍경은 멋지다. 광활한 사막도, 음침한 지하세계도, 눈 내리는 설원도 너무너무 멋지다. 여행은 역시 풍경감상이지. 하지만 여행은 또 녹록하지만은 않다. 역경도 제법 찾아온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와 함께하는 동반자와 서로를 응원하며 나아가게 된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는 현실 세계의 친구와는 또 다른 맛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마침내 여행의 끝,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뒤엔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으로 떠날 수 있다.

 

레벨업과 스킬 트리, 아이템과 전투 없이도 저니는 끝내주게 재밌다. 높은 산에서 내리막길로 향할 땐 경쾌하게 내달리며 슬라이딩을 하며 놀 수도 있고, 길거리의 동물들과 교감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여행의 재미 그 자체다.

 

그러고 보니까, 우린 이미 이런 게임의 장르명을 알고 있다. 꿈과 낭만의 여행. 어드벤쳐! 그렇다. 저니는 가히 어드벤쳐 2.0이라고 불러줄 만한 게임이다.

그런데 저니의 진짜 감동은 상상치도 못한 또 다른 면에 있다. 그에 대해 놀랍고도 감동적인 경험담은 다음 문단에 이어진다.

 

 

역시 겜에는 말이 필요없었다

 

저니는 의외로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다. 게임의 여정 도중에, 혼자서 그 구간을 지나가고 있는 플레이어가 있다면 동반자로 자동매칭을 해준다. 그런데 이 매칭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때문에, 나와 매칭된 플레이어가 언제부터 함께 걷고 있었는지도 잘 눈치챌 수가 없다. 정말로 그냥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슥 따라붙는 느낌이다. 이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저니 초창기에는 동반자를 A.I로 오해한 사람들도 많았다 카더라. 심지어 저니엔 채팅 기능이나, 감정 표시 이모지 같은 기능도 없으니 A.I로 오해할 법도 하겠다 싶다.

 

하여간 나의 여정에도 동반자가 있었다. 물이 차오르는 중간부근의 스테이지에서부터 슬쩍 만나게 된 이 동반자는 고수의 상징인듯한 아주 긴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는데, 의외로 생각보다 나만큼이나 멍청했다. (나중에 검색으로 알고 보니, 목도리의 길이는 단순히 랜덤이며, 다회차 특전은 로브의 문양이란다) 거 참, 채팅이라도 됐으면 또 모르겠는데 우리 둘이서 의사소통할 방법은 딱 하나. 플레이어마다 하나씩 주어지는 새 소리밖에 없었다. 삐약삐약. 우옹 우옹. 예쁜 파장으로 퍼져나가는 새소리로 서로를 부르거나, 나름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하는 수밖에 없었다.

 

재밌는 게 이것도 약간의 의사소통은 된다. 예를 들어 크게 새소리를 내서 자신의 위치를 알려줄 수도 있고, 혹은 도로 위 운전자들끼리 클락션으로 소통하는 거처럼 저쪽에서 웅웅웅, 울면 나도 삐약삐약삐약. 울어서 답해줄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게 한계라는 거다. 눈 내리는 산의 초입, 바람이 무진 부는데 나아갈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반대 길로 가본다. 만약 의사소통할 수 있었다면 , 이쪽 길 맞냐?’이라는 소리라도 하며 전략을 고심해봤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의사소통이야 삐약삐약일 뿐인걸. 결국, 두 명의 바보는 같은 맵에서 같이 한참이나 이리저리 헤맨 끝에야 공략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덤앤 더머가 따로 없었다.

 

동반자와 함께한 초반의 스테이지들은 사실상 내가 캐리를 했다. 난 게임플레이가 굉장히 공격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저니는 상당히 안전한 게임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공략할 이 보이면 무조건 머리부터 들이미는 식으로 해결해버렸다.

 

이런 공략방식이 큰 사고를 낸 건 후반부, 바람이 부는 성터에서였다. 자신만만하게 트라이를 하며 앞서 나가던 나는 난이도가 갑자기 높아진 지형에서 큰바람에 휩쓸려서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 ~. 다행히도, 절벽에서 다시 올라갈 수 있는 루트는 쉽게 발견했다. 문제는 이게,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둔 것인지 아니면 버그가 걸린 것인지 캐릭터가 특정 구간에만 가면 굳어버려 점프가 되지 않아, 절벽을 도저히 기어갈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분명 올라가라고 만들어둔 게 분명해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갈 수가 없었다.

 

아예 아래 방향으로 더 내려가면 또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다시 올라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상황. 난 슬슬 빡종할 (화가 나서 게임을 꺼버릴) 생각을 하고있ᄋᅠᆻ다. 에이, 걍 담에 깨자. 라는 마음이 고개를 슬쩍 드는데, 나를 발견한, 아까 절벽에서 떨어지느라 헤어졌던 동반자가 나를 애타게 불렀다. 웅웅. 웅웅. 절벽 위에서 날 부르는 동반자. 난 이리로 가야 할 거 같은데 어렵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 그가 보는 앞에서 절벽을 오르는 루트를 가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캐릭터는 그 막히던 구간에서 멈춰버렸다. 몇 번이나 해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 광경을 본 동반자가 펄쩍 뛰어내려 절벽 밑에서 내가 발견한 그길로 다시 올라가기도 했는데, 그의 캐릭터는 손쉽게 올라가는 구간이 이상하게도 내 캐릭터가 가면 특정 구간에서 캐릭터가 굳어버렸다. 아 이제 포기하자. 싶기도 했다.

 

더군다나 내가 포기해도 동반자에겐 큰 관계도 없었다. 저니의 동반자 기능은, 사실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게임내의 모든 콘텐츠는 혼자서 충분히 플레이할 수 있다. 더군다나 동반자와 특정 이상으로 거리가 벌어지면 새로운 동반자와 매칭도 해준다. 걍 갈 길 가라. 난 다음에 해야겠다. 라는 마음이 드는데, 동반자가 진짜로 필사적이었다. 아이참. 마음속의 저울이 미묘했다. 빡종 대신 몇 번의 트라이를 더 해봤다. 동반자는 절벽 밑으로 뛰어내렸다 올라가기를 4번 정도 시도했다. 그렇게 나와 그의 캐릭터가 동시에 절벽의 끄트머리까지 올라간 어느 순간, 내 캐릭터가 그 버그 같던 구간을 넘어서 절벽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

 

삐약삐약. 우웅우웅. 삐약삐약. 우웅우웅.

결과적으로 몇 개의 난관과 고난을 더 지나, 그와 나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감각적으로 게임이 끝나감을 알 수 있었다. 게임을 끝내는 게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몇 번이나 아름다운 세계를, 동반자의 캐릭터를 쳐다봤다. 왜냐면 게임이 끝나면,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와 작별해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의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는 끄트머리쯤엔, 여행길에서 만났던 동반자들의 정보가 표시된다. PC 스팀 판의 경우엔 상대방의 스팀 ID가 나온다. 난 할까 말까 하다가 동반자의 아이디를 스팀에서 검색해봤다. 의외로 중국계 느낌의 ID라 홍콩사람인가? 싶었더니 한국 사람이었다. 게다가 평범한 게이머가 아니었다. 세상에, 다크소울 플레이타임 900시간이 넘는 망령이었다. 심지어 어찌나 성실한 게이머인지 그 짧은 사이에, 저니 게임에 대한 후기까지 적어놓았다. 그중엔 내 이야기도 있는 거 같았다. 그가 남겨둔 후기의 끄트머리는 이런 문장으로 끝이 났다. ‘역시 겜에는 말이 필요없었다그 말 그대로다.

 

ID 프로필 페이지까지 들어가고, 후기까지 본 김에 무언가 한마디 남기려다가 말았다.

생각해보니까, 해야 할 이야기는 게임상에서 이미 다 했었기 때문이다. 거의 포기할 뻔했어, 고마워, 야 이거 재밌다. 이리 와봐 신기한 거 있다! 기왕이면 같이 깨야지. 너랑 같이 깨야겠어. 모두 삐약삐약과 우웅우웅으로 주고받았다.

 

이로써 저니는 정말 멋진 여행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주는 게임이다. 멋진 풍경, 신나는 레저활동, 덤벼드는 거대 몬스터(?)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친구까지 말이다.

 

그러니까 구태의연하게 이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말로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거 같다.

 

역시, 겜에는 말이 필요없었다.

 

 

 

 

 

 

/ [PC] 게임으로 떠나는 완벽한 여행, 저니 (JOURNEY)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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