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포함!] 등대를 맴도는 불나방들을 위하여. PC '체이싱 라이트' 리뷰

  • 입력 2020.05.15 19:59
  • 수정 2020.05.21 15:19
  • 기자명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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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에는 '체이싱 라이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내게 한국의 게임 개발자를 아우르는 단어 하나를 꺼내 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등대지기'를 선택할 것이다. 아마 많은 게이머가 공감할 것이다. 밤을 밝혀주는 등대는 강남에 주로 모여 있었지만, 판교로 옮겨갔다. 그들에겐 정말 죄송한 단어이자, 비극적인 별명 '등대지기'.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많은 등대지기가 타의에 의해 규정을 속이고, 남들을 속이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속여가며 영혼을 태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국산 게임'에 대한 게이머들의 기대감은 고갈됐고, 증발했다. 그래도 간혹 궁금한 게이머들이 있을 것이다. 게임 개발자들은 왜 저렇게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지, 게임 회사는 왜 직원들을 집에 보내지 않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저렇게 몸과 영혼을 갈아 넣으면서 만들어 내는 게임들은 왜 다들 그 모양인지. 그들은 밤새 뭘 하는 걸까? 그 수많은 시간과 영혼은 다 어디로 날아가 버린 걸까?

 

게임과 관련된 소식을 전하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 바닥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들의 일과 나의 일이 '공적 관계' '업무차 미팅' '비즈니스'에서 그칠 때도 있지만, 사적인 '이거 너만 알고 있어'의 비밀을 나누는 유대관계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이 바닥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아시잖아요'. 대부분은 씁쓸한 뒷맛이 강하게 남는 것들이다.

 

마치 밝혀져서는 안 될 조심스러운 비밀을 밀고하는 조직의 배반자처럼 소근 거리는 사람도 있고, '다 아는 사실을 말하는 게 왜? 내가 뭐 없는 소리 한 것도 아닌데. 이런 거 소문 안 내고 뭐하냐'며 다그치는 사람도 있다. 그들도 알고 있다. '게임 개발자들은 왜 그렇게 늦게까지 일해요? 근데 왜 양산형 게임만 만들어요?' 의 질문을. 대답을 하지 못할 뿐. 나는 이해한다. 그들도 어디까지나 '직원'일 뿐이고, 직원은 쉽게 말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 아니다.

시작부터 장황하게 '게임 업계'의 이야기, 게임 개발자들의 입장을 풀어낸 이유는 이번에 다루게 될 게임의 도입부가 '이 바닥의 현실'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 과정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체험해 볼 수 있는 게임. 인디 게임 개발사 '비트겐'의 '체이싱 라이트'다.

 

사실 동종 업계의 씁쓸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체이싱 라이트'는 그동안 쉽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과감하게 꺼내 들며 시작한다. 출발은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을 다루고 있다. 아마 신규 프로젝트에 대한 회의가 진행되는 과정인 것 같다. 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감독' '프로듀서' '투자자' '평론가' 등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많이 모여있지만,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감독'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참석한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입장만 이야기하고 있다. 어딘가 타협점 없이 갈등의 금만 가고 있는 상황. 이런 와중에도 배경에 등장하는 '손'과 '코드'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이 이야기는 개발자 본인의 경험일 수도 있고, 개연성 있는 허구로 꾸며낸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굉장히 '사실적'이라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현실'과 굉장히 밀접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물론, 나는 기획자나 개발자가 아니다. 그 근처에서 '게임 개발과 관련한 무엇인가'를 해보지 못한 입장이라 '현실적'이라고 단언할 순 없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까지 보고 들었던 수많은 비밀과, 차라리 세상에 드러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비슷한 부분이 많다.

 

게임이 왜 산으로 갈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지만, 게임은 '돈을 가진 사람'과 '위에 있는 사람'의 맘대로 간다. 하지만 언제나 조력자는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조력자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점과 고민을 먼저 겪었던 사람이고, 훌륭하게 극복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선배'라고 한다.

'체이싱 라이트'의 후반부는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내가 만들고자 했던 게 뭐였지? 난 지금 뭘 하고 있지?' 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더 가깝게 다가선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내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지만, 결국엔 이 선택도 이미 정해진 상태다. 개발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결국 답은 정해져 있다는 뜻인가?' 게임이 계속 어긋나는 이유의 중심에는 '감독'이 있다. 플레이어는 이 '감독'이라는 캐릭터에 점점 자신을 대입하게 된다. '감독'이라는 캐릭터는 계속 고민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지? 뭘 쫓고 있지?'

 

'체이싱 라이트'의 후반부는 확실히 도입부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철학적이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단어. '형이상학적'이다. 메시지를 던지고, 풀어내는 방식은 '난해하다'라는 표현에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체이싱 라이트'는 뭔가 상호작용하는 재미가 많이 생략되어 있다. 게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한편의 '독립영화'에 가깝다. 독립영화는 대중이 원하는 입맛을 걷어내고,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진다.

 

기존의 게임과는 분명 다른 코드가 느껴진다. 독특하고, 난해하다. 게이머들은 개발자가 던지는 이미지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인코딩이 똑같이 들어가도, 디코딩은 게이머마다 다를 것이다. '그래서 뭐 게임은 어떤데? 재밌다는 거야 뭐야?' 라고 물어본다면 재미는 없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게임'과는 다르다. 대신 감동이나 울림, 전율 같은 것은 있다. '게임'의 범주에 넣기엔 확실히 결이 좀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리뷰가 굉장히 조심스럽다. 계속해서 붕 뜨는 느낌, 겉만 열심히 핥아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가면서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게이머들의 해석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영화를 못 본 사람한테 가서 온갖 설명을 다 떠벌리는 꼴이 된다. 알지만 말할 수 없는 그런 입장. 등대지기와 비슷한 입장. 

 

'체이싱 라이트'는 게임 업계에서 일어나는 '전배'나 '팀파'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다. 타이틀 그대로 '한 명의 인간이 빛을 쫓는 과정'을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플레이어는 게임의 개발자가 가진 물음과 그 해답에 대한 이야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굳이 게임계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에 의문이 든다거나, 가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는다거나, 내가 쫓고 있는 빛이 과연 빛이 맞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분명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다만, 개발자가 사용한 이미지나 효과, 텍스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쉽다. 개발자의 의도를 단번에 파악하기 쉽지 않고, 공감하기도 어렵다. 그 의도라는 게 서로 공유되지 못하다 보니 '이 영화가 뭔데? 이 그림은 뭘 의미하는데? 이거 왜 집어넣음?' 의문과 괴리감만 계속 쌓이게 된다. '처음엔 게임 만드는 이야기 같았는데, 뒤로 갈수록 도통 뭔소린지' 라는 느낌을 받는다. 직관적인 방법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분명 불쾌함을 느낄만한 부분이다.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고, 기존의 틀을 깨부수며 등장하는 인디 게임을 접할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는 '평론가'처럼 멀찍이 서서 방관하고, 그럴싸한 단어들로 아는 체만 해왔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앞서 '나는 과연 게임을 기획하고, 개발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을 예술가라고 부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돌이켜 보게 됐다. 단순히 코드 만지는 사람, 상품을 만들고 파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진 않은지, 예술은 인정하지만, 예술가는 인정하지 않는 모순적인 생각을 하고 있진 않았는지. 이런 생각들이 한동안 머릿속에 머물렀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보다 더 밝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빛을 만들어줄 신이나 철인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가야 한다. '체이싱 라이트' 처럼 틀을 깨고, 직접 걷는 이야기들이 많아져야 한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려야 한다. 등대지기가 아니라, 빛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이, 불사조가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등대의 불이 꺼질 때가 온다면, 그땐 분명히 언급될 게임이다. 

 

'체이싱 라이트'처럼 과감하게 틀을 깨는 게임들이 좋은 사례를 남긴다면, '정치'와 '예산'으로 인해 방향과 빛을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이다. 게임이 품고 있는 '예술'의 빛을 들여다본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체이싱 라이트' 처럼 많아지길 기대한다. '상품'아닌 '작품'의 게임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신선한 경험을 전해준 개발사 '비트겐'과 텀블벅에서 '체이싱 라이트'를 밀어준 선지자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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