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빛 좋은 개살구, 천공성연대기 리뷰

  • 입력 2020.05.11 14:09
  • 기자명 김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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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리뷰하면서, 그리고 20년 넘게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건 재미있는 게임은 어느 한 가지 요소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매 번 말하게 되는 것 같은데, 스토리가 아무리 좋아도 그래픽이 이상하면 즐기기 어렵고, 그래픽이 아무리 실사 뺨쳐도 스토리가 산으로 가면 몰입할 수가 없다. 번역 하나만 이상해도 게임성이 확 떨어지고 오류가 잦으면 게임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게이머들은 즐길 게임이 수두룩하고, 출시되는 게임도 많아서 조금만 취향이 안 맞거나 신경이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플레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게임을 종합예술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을 정도.

국내 게이머들 사이에 중국게임이 양산형, b급 게임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의 흔한 양산형 게임들은 하나같이 꼭 뭐 하나가 부족하다. 그래픽이 좋으면 스토리가 똥이고, 스토리가 좋으면 번역이 엉망이다. 그도 아니면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거나 튜토리얼이 없는 수준이라 진입장벽이 높은 경우도 있다. 하나만 고치면 될 것 같은데, 그 하나가 너무 커서 게임을 지워버리게 만든다. 오늘 소개할 게임, 천공성연대기가 이런 중국 양산형 게임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 게임이 중국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 당연히 중국게임인 줄 알았는데, 모바일 게임 기업 게임펍에서 만든 신작 게임이다. 제작사에서는 RPG와 전략, 레트로를 모두 껴안은 하드코어 게임이라고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과연 실상은 어떠할지, 알아보도록 하자. 천공성연대기는 57일 출시했다.

뭔 소린지 설명 좀.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

필자가 이 게임을 중국게임으로 착각한 가장 큰 이유는 대사와 세계관이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다양한 종족이 공존하는 수진세계라는 곳에서 주인공, 천우가 살아가는 이야기다. 천우는 모든 기억을 잃고 한 문파에서 거둬지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전쟁에 참여, 스스로에 대한 기억을 깨우치며 모험을 떠나게 된다.

스토리 자체도 그렇고 배경이 되는 수진세계 역시 중국의 무협지를 연상시킨다. 인기 웹 소설을 기반으로 해서 세계관이나 기본 스토리 자체는 나름 탄탄한 것 같은데, 문제는 이걸 게임에 제대로 녹여내질 못했다는 거다. 일단 익숙하지 않은 온갖 세계관 용어들이 처음부터 난무하는데,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없다. 은관이 어떻고 금관이 어떻고. 마인이 어떻고.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이번에 쳐들어오는 적은 금관이고 세계 몇 위 고수다. 마인이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이런 대사를 아무런 사전설명 없이 마구 내뱉는다.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 설명도 이런 식이다. 뜬금없이 대검을 든 인물이 등장해서는 주인공의 의동생이라고 자처하고. 난생 처음 보는 인간이 나와서 주인공의 친구란다. 기억을 잃었다는 주인공이 얘랑 어떻게 친구가 됐고, 둘이 무슨 이해관계가 있는지는 나오지도 않는다. 그리고 굉장히 기분 나쁘게 생긴 마족 같은 인간이 계속 주인공 곁에서 알짱거리면서 조언을 주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이 놈에 대한 설명도 없다. 그냥 주인공과 절친한 사이인 건지, 아니면 주인공의 내면에 사는 또 다른 인격인건지. 연출도 애매하고 설명도 없어서 그냥 어림짐작해야 한다.

대사도 문제다. 이게 정말 전문 작가를 고용해서 쓴 시나리오와 대사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이 많다. 주어가 빠진 것도 있고, 주인공이 독백처럼 상황설명을 하는 대목도 있다. 웹 소설을 압축해서 보여주려다 보니 벌어진 현상 같은데, 그럴 거면 차라리 상황설명을 나래이션으로 돌리던지. 뜬금없이 주인공이 일기를 쓰는 것도 아닌데 혼자서 어제는 누구랑 싸웠고, 나는 무슨 명령을 받았고, 이러저러한 연유로 여기 왔다. 그러더니 사건이 발생한다. 이런 스토리에 대한 불친절이 계속 이어져서 필자는 아직도 이 게임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다 품으려던 거 아닌가

개발사는 천공성 연대기가 RPG와 전략, SLG를 아우르는 게임이라고 광고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즘 나오는 게임들은 장르의 구분이 없어진 지 오래니까. 천공성 연대기는 기본적으로 카드 수집형 게임이다. 스토리 상으로 보면 주인공과 그 동료들이 거북성이라는 근거지를 바탕으로 적들과 싸우게 되는데, 이 거북성을 발전시켜나가고 동료를 모집해서 쳐들어오는 적들을 괴멸시키는 형식이다. 거북성 발전을 위해 건물을 지으니 시뮬레이션이 맞고, 수집한 동료를 성장시키니 RPG도 맞다. 전투는 예전 팔라독이나 기타 디펜스 게임처럼 우측에 있는 균열에서 적들이 쏟아져 나오면 이를 미리 설정해 놓은 동료를 소환해서 막는 방식이다. 일부 전략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

하지만 필자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런 식으로 여러 장르를 찔끔찔끔 건드리기보다는 차라리 하나를 깊이 있게 만드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 여러 장르의 장점을 몽땅 집어넣으려다 보니까 각 장르를 조금씩만 건드리는 수준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깊이가 없어져 버렸다. RPG만 해도 성장 요소가 무척 많다. 레벌업도 할 수 있고, 각성도 할 수 있고, 아이템 착용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와 닿지가 않는다. 강해진다는 체감도 안되고, 그냥 할게 있으니 클릭 몇 번 해준다. 수준? 건설 역시 마찬가지. 건물을 짓는다고 크게 달라지는 게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외양이 변하는 것도 아니라 필요성을 못 느낀다. 쉽게 말하면 직관성과 개연성이 떨어져서 플레이할 이유를 못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1차적인 책임은 복잡해 보이는 레트로 풍 그래픽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설명할 튜토리얼의 부재다.

튜토만 1시간. 지친다. 지쳐

솔직히 고백하면 필자는 이 게임을 하다 잤다. 존 것도 아니고 숫제 그냥 쿨쿨 잤다는 말이다. 그만큼 초반에 엄청 지루했다는 뜻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주인공이 주구장창 설명만 늘어놓는 거에 지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튜토리얼이 너무 길었다. 기본적으로 선형적인 게임이 아니라면 모든 게이머는 자율적인 플레이를 좋아한다. 이 버튼을 눌러라. 이 버튼을 눌러라. 이렇게 설명해 주는 건 앞에서 게임의 시스템을 알려주는 10분 안에 끝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 게임은 튜토리얼만 1시간 가까이 된다. 일단 본격적인 스토리 진행이 되는 거북성 진입까지만 해도 한참 걸리고, 거북성 진입해서도 계속 이 얘기 저 얘기 왔다갔다 하느라 실제로 플레이어가 조작할 건덕지는 거의 없다. 그나마 있는 일부 조작도 튜토개념으로 여기만 클릭하세요. 하면서 반짝거리고 있고. 대체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 튜토리얼을 만들어 놨는지 의문이다. 거기다 튜토리얼이 친절하지도 않다. 이 버튼 누르세요. 누르세요. 따라가다 보면 피로감에 설명을 읽을 힘도 없다.

전투와 건설, 육성 중에 그나만 가장 괜찮았던 파트는 전투다. 디펜스 게임처럼 영웅을 소환해서 스킬과 병력으로 적을 막는 방식인데, 나름 전략의 요소도 있고 플레이어가 개입할 여지가 많아서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다만 다른 콘텐츠는 그냥 버튼 누르기 식으로 흘러가서 아쉬웠다.

그래픽은 좋은데. 일러도 좋은데.

천공성 연대기는 레트로 도트 그래픽이다. 당연히 3D나 최근 나오는 게임들에 비하면 그래픽이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전투의 연출 자체는 꽤나 수준급이다. 도트에서만 볼 수 있는 화려한 액션도 많이 구현해 놨고, 스킬의 이펙트도 제법 좋다. 일러스트 역시 영혼을 갈아 넣었나 싶을 정도로 멋있다. 여성 캐릭터, 남성 캐릭터 구별없이 모두 캐릭터만의 특이점을 잘 잡았고, 만화나 애니매이션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작화로 시선을 끌고 있다. 그래픽과 일러스트 부분에서는 딱히 지적할 점이 없을 정도다. 딱 하나 단점은 메인 화면 역시 레트로로 표현해 놨는데, 거북성의 너무 많은 부분을 담아넣다 보니까 조금 복잡하고 정리가 안 된 느낌이었다는 점 정도? 그래픽에서는 깔 게 그거 하나 뿐이었다.

스토리 표현이 게임을 망쳤다.

천공성 연대기의 그래픽과 일러스트, 전투 시스템은 충분히 즐길만 하다. 하지만 그 외의 것이 너무 기준 미달이다. 특히 스토리. 스토리 라인 자체가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그걸 표현해내는 방식이 너무나도 구시대적이다. 인물 간에 개연성도 좀 부여해주고, 스토리 표현에 더 공을 들였다면 그래도 플레이할만한 게임 정도는 됐을 것 같은데. 스토리는 전혀 상관없이 그냥 디펜스 게임 정도만 즐기고 싶은 게이머는 플레이해봐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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