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대한 이야기, PC 'HEAL' 리뷰

  • 입력 2020.04.21 14:37
  • 수정 2020.04.29 13:28
  • 기자명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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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 라이브러리를 천천히 둘러보면 출처를 알 수 없는 1인 개발자의 게임이 몇 가지는 채워져 있다. 이 게임이 도대체 언제, 어떤 할인을 할 때 산 건지, 어떤 패키지에 포함되었던 건지 확실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 1+1의 '덤' 혹은 '서비스'와 같은 느낌으로 받았을 것이다. 

 

1인 개발의 게임은 주로 허접하고 엉성하게 도트로 찍어낸 게임, 이도 저도 아닌 게임이 많다. 단순히 장난에 그치거나, 혹은 실력 부족으로 퀄리티가 안 나오는 게임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하기 꺼려지고, 솔직히 라이브러리에서 지우고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꼭 '망겜' 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걸 진짜 혼자 만들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인의 위엄을 보여주는 게임들도 있다. 개인적으로 '브레이드', '페이퍼즈 플리즈', '스타듀 벨리' 같은 게임은 굉장히 재미있게 플레이했으며, 찾아보기 전까지 혼자서 만들어 낸 게임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번에 소개할 '제시 막코넨' 은 장인의 꾸준히 좋은 게임을 선보인 1인 개발자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지금까지 주로 공포 게임을 만들어왔다. 2014년 'Silence of the Sleep'이라는 게임을 시작으로, 'Distraint' 시리즈를 두 편 선보였다. 이 공포 시리즈는 게이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1인 개발답게 구글에 검색하면 각 게임의 트레일러 영상과 OST도 찾을 수 있다.

 

이런 장인 '제시 막코넨'이 얼마 전 새로운 신작으로 게이머들을 찾아왔다. 지금까지 '공포'를 다뤄왔던 모습과는 조금 달리 공포와 긴장감을 덜어낸 퍼즐게임이다. 바로 노인의 기억에 대한 단편 'HEAL'이다. 과연 이번에도 1인 개발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을 지 한 번 노인의 기억으로 들어가 보자.

'HEAL'은 2D 스크롤 퍼즐 게임으로 플레이 방식이 굉장히 단순하다. 딱히 컨트롤이라고 할 게 없으며, 마우스 클릭이 전부다. 게임의 배경은 노인의 기억일지 아니면 환상일지, 현실인지는 모른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화기, 라디오, TV 같은 물건들이 이 노인 혹은 노인의 기억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임의 핵심은 '퍼즐'이다. 플레이어는 총 7개의 방으로 노인을 이동하면서, 숨겨진 퍼즐을 풀어내야 한다. 따로 숨겨진 오브젝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좌우 이동만으로 물건과 상호작용할 수 있으며, 머리 위에 보이는 아이콘을 클릭하면 바로 퍼즐을 풀 수 있다. 

 

각각의 물건에서 발견할 수 있는 퍼즐은 다른 퍼즐과 연관되어 있고, 중요한 단서가 된다. 즉, 방에 있는 각자의 퍼즐은 한가지 퍼즐을 풀어내기 위한 실마리가 된다. 순서나 과정은 자유롭지만, 마지막 퍼즐은 앞의 과정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퍼즐의 난이도는 무난한 편이다. 다른 퍼즐과 복잡하게 얽혀있지 않고 개별적이다. 방에서 숨겨진 요소를 발견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단순 복잡한 암산이나 계산도 필요 없다. 'HEAL'이 추구하는 방향, '제시 막코넨'의 색깔만 빠르게 파악한다면 쉽게 풀어낼 수 있다.

 

처음 접하는 퍼즐에서는 '이게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거지? 뭐랑 어떻게 연결하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만큼 어떤 유형인지를 파악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게이머들이 느낄 감정을 고려해 낮은 난이도의 퍼즐부터 접근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직관적'으로 풀면 된다는 것이다. 다른 복잡한 퍼즐게임처럼 많이 생각하고, 계산하는 방식보다, 보이는 그대로를 믿으면 된다. 억지를 부리거나, 납득할 수 없는 해답은 없다. 감을 믿으면, 그게 곧 답이다.

게임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약간은 어둡고 우울하기까지 하다. 배경에 깔리는 음악 역시 약간은 음산한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제시 막코넨'이 해왔던 기존 '공포 게임'의 물이 완전히 빠졌다고 보기엔 어렵다. 하지만, 게임의 전반적인 색감이나 분위기는 잘 어울린다.

 

간혹 이런 게임들이 잘 나가다 완전 괴기한 방향으로 빠지거나, 밑도 끝도 없이 '깜놀'만 노리는 경우도 많은데, 'HEAL'은 핵심인 '퍼즐'을 단단히 붙잡고 게임을 진행한다. 

 

장인의 '완급 조절'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분명 '공포'의 맛으로 빠질 수 있는 그림체지만, '이번에는 공포 게임이 아니에요'라고 정확하게 선을 긋고 있다. 갑자기 흐름이 바뀌거나, 기분 나빠지는 요소는 없으니, 게이머는 퍼즐에만 집중할 수 있다.

'HEAL'이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서사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직접 플레이해 본다면 '스토리가 정확하게 뭔지 모르겠다' 를 느낄 것이다. 챕터의 제목만 있을 뿐, 나래이션이나 게임 속의 대화도 없다. 어디까지나 짐작만 할 뿐이지, 스토리에 대한 부분은 어떤 것도 명확하지가 않다. 

 

한 노인의 기억,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별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노인의 마지막 길에 지난 일들을 추억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노년의 쓸쓸함과 우울함을 그려낸 것'인지, '한 남자의 아름다웠던 과거를 추억하는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게이머의 주관적인 해석에 달려있다.

 

개발자의 설명을 옮기자면, '노년기, 인생의 후반부, 그리고 지나온 기억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게임이라고 한다. 이것은 어떻게든 우리의 인생과 연관되어 있고, 그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당사자가 될 수도, 내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치매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노인들에 대한 관심, 혹은 후원 같은 것이 따라붙기를 기대했었다. '디스 워 오브 마인' 처럼 누군가에겐 '간접 경험'에 그치는 게임이지만, 누군가에겐 현실일 수도 있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게임은 '질병'으로도 바라볼 수 있지만,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기도 하다.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HEAL'은 정확하게 후자에 있다. 게임 속의 노인은 우리의 가족일 수도 혹은 자기 자신일 수도 있으며, 누구나 기억하고 싶은 사람과 시간이 있다. 이 이야기를 풀어낸 게임이다.

 

애매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고, 빠른 템포의 퍼즐을 좋아하는 게이머에게는 답답할 수도 있지만,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게임이 가지는 선한 영향력을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를 다뤄온 개발자의 게임이라는 점이 놀랍기도 하다.

 

총 플레이 시간이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게임이지만, '제시 멕코넨'이라는 장인의 단편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퍼즐'이라는 요소를 통해서 '기억'을 그려낸 게임은 어떤 맛인지를 느껴볼 수 있는 게임이다. '제시 멕코넨'의 후속 게임이 기대된다. 여운이 남는 단편을 원했다면 'HEAL'을 한번 쯤 플레이해보길 추천한다.

 

플레이하게 될 게이머를 위해 한가지 팁을 포함하자면, 마지막의 4자리 코드를 2번째 방의 전화기에 꼭 입력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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