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분위기가 압권이다. iris and the giant 리뷰

  • 입력 2020.03.05 15:23
  • 수정 2020.03.12 11:28
  • 기자명 김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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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임에는 게임 그래픽과 BGM 등이 어우러져 내뿜어내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이 분위기는 생각보다 게이머들에게 굉장히 큰 요소로 다가오기 때문에 분위기 하나로 성공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분위기를 망쳐서 성공하지 못한 게임도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분위기를 잘 살린 대표적인 게임이 디아블로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쿼터뷰 형식의 핵 앤 슬래시 장르를 처음 시도하여 대중화시킨 디아블로지만, 그 게임의 대중적 성공 이면에는 금방이라도 멸망해버릴 것 같은 트리스트럼의 음침한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 횃불 하나와 자신의 능력에만 의지하면서 무엇이 있을지 모를 던전으로 향하는 주인공과 그 안에서 만나는 기괴한 모습의 악마들. 스토리 역시 꿈도 희망도 없는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리는 쪽으로 구성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밝고 희망찬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던 게임시장에 음침한 분위기의 디아블로는 독특하고 유니크한 게임이었다. 잔인하고 공포스러우면서 긴장감을 유발하는 특유의 분위기는 디아블로를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만들어주었고, 마치 디아블로의 상징처럼 남아버렸다. 그랬기에 이후 개발된 디아블로 시리즈의 게임들은 모두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고, 디아블로는 지금까지도 성공한 시리즈로 남게 되었다.

디아블로의 경우처럼 게임에서 분위기가 게이머에게 미치는 효과는 꽤 크다. 게임을 하면서 플레이나 시스템, BGM 모두 문제가 없는데, ‘, 뭔가 모르게 재미없다.’고 느끼는 게임이 있다면 그 게임의 분위기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이다. 필자는 워낙 게임을 좋아하고 많이 즐기다보니 그런 분위기 탓에 아예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 경우는 없지만 간혹, 너무 발랄하고 병맛 넘치는. 그런 게임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차라리 보더랜드처럼 병맛만 넘치든가, 아니면 예전에 리뷰한 도라에몽 진구의 목장이야기처럼 발랄하기만 하던가 해야지. 그 두 개가 합쳐지면......

아무튼 이처럼 게임의 분위기가 본인과 맞지 않으면 플레이하기조차 싫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많은 게임들이 독특하거나 새로운 분위기의 게임을 내놓길 꺼려한다. 사람은 익숙한 것에만 손이 가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지난 228. 오랜만에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의 게임이 출시되어서 리뷰를 해볼까 한다. iris and the giant. 한국어로 아이리스와 거인이라는 인디게임이다.

한글화는 아쉽지만 독특한 분위기는 최고

이 게임은 오프닝부터 독특하다. 여느 게임과 달리 오프닝이라고 부를만한 시네마틱 트레일러나 오프닝 동영상이 없이 어느 한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빠가 수영장에 데려다 줬다고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한 소녀의 나래이션에 이어서 소녀의 감정과 상황이 을씨년스러운 BGM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게임 시작 메뉴가 뜬다.

게임은 소녀가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면서 자신의 잠재의식? 의식세계 같은 곳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소녀는 이 기이한 세계에서 계속 등장하는 적, 혹은 거인들을 물리치며 한 단계 한 단계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녀가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혹은 마음 속 상처들을 게이머들에게 보여주며 치료하는 식이다. 게임의 주제가 되기에는 조금 불편하고 무거운 이야기지만 게임 전체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게 녹여내서 생각만큼 불편하지는 않다.

스토리에서 약간 아쉬운 것은 한글화 미지원이라는 것이다. 시스템 언어 부분에 일본어 중국어가 다 있는데, 유독 한국어만 없다는 것은 꽤나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나래이션의 빈도가 그렇게 많지 않고, 대부분의 설명 역시 중학생 수준의 영어만 가능하면 해석 가능한 정도라 진행에 문제는 없었다. 그럼에도 한글화가 되었다면 조금 더 편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로그라이크, RPG, 카드배틀이 적절히 조합된 시스템

아이리스와 거인들은 RPG와 로그라이크, 카드배틀이 섞인 게임이다. 로그라이크 게임들처럼 랜덤요소가 있고, 한 번 죽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 RPG처럼 적을 죽이면서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전투는 카드를 이용해 진행된다. 먼저 전투 부분을 살펴보자.

이 게임의 핵심인 전투는 모두 카드로 이뤄진다. 매 층을 올라갈 때마다 아이리스는 자신의 가방 안에서 검, , 도끼, , 채찍 등 고유한 효과가 있는 다양한 무기 카드와 벼락, , 폭탄, 치유 등의 마법카드를 랜덤으로 뽑게 되고, 턴이 지날 때마다 한 장, 혹은 두 장씩 카드가 추가된다. 이 카드를 이용해서 앞에 있는 적들을 모두 죽이거나, 윗 층으로 가는 계단까지 도달하면 한 층을 클리어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검은 같은 종류의 카드를 자신의 턴에 계속 쓸 수 있다. 검을 3장 들고 있으면, 한 턴에 3명의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뜻. 활은 멀리 떨어진 적을 공격할 수 있고, 도끼는 세로 일렬의 적을 모두 공격할 수 있다. 이처럼 카드마다 특징이 있어 나름 전략적으로 생각해서 전투를 진행해야 한다. 나의 HP는 왼쪽에 표시되고, 대부분의 적들은 종류가 무엇이든 공격 한 번에 죽지만, 방어구를 끼고 있는 적은 여러 번 공격해야 한다. 특정 마법 공격으로만 죽일 수 있는 적도 있다. 전투 시스템은 간단하지만 꽤 어렵다. 이 부분은 밑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

전투를 통해 적을 죽이거나, 바닥에 있는 크리스탈을 일정개수 이상 모으면 레벨업을 한다. 이 때는 스탯이 오르거나 하는 게 아니라 매번 특수한 능력을 고를 수 있는데, 3~4개에 이르는 특수능력이 랜덤으로 제시되고, 이 중에 원하는 능력을 얻는 방식이다. 적 중에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고, 덩치가 큰 녀석이 보스로 이 놈을 죽이면 조금 더 특수한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이 능력 역시 랜덤으로 제시되는 3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다. 게임의 구조 자체가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는 단순한 구조인데다가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할 일은 오로지 전투 뿐이라 전투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어려울 것은 없다. 그럼에도 게임 자체의 난이도는 꽤 있는 편인데, 이는 로그라이크류 게임의 핵심인 회차 시스템에 기인한 것이라고 본다.

간단한 시스템에 속지 말자. 이 게임, 꽤 어렵다.

아이리스와 거인들에 등장하는 적들. 특히 보스들은 꽤 까다로운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겪은 가장 성질나는 보스는 한 번에 3마리를 죽이지 않으면 계속 재생되는 보스였다. 공격력도 높은 보스가 한 놈은 바로 앞에 또 한 놈은 저 ~ 뒤에 위치해 있어 그 놈을 일단 끌어와 한 방에 정리해야 했다. 불 카드가 없이는 죽지 않는 보스도 있었는데, 이런 놈들은 수중에 불 카드가 없으면 꼼짝없이 그냥 죽어야 한다.

이처럼 플레이해보면 알겠지만, 이 게임은 몇 번의 게임 오버는 강제하고 있다. 죽으면 그동안 모은 크리스탈과 죽인 적들을 계산해 다음 게임을 시작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특수한 능력. 일종의 특전을 준다. 아이리스가 계속 데리고 다니며 유용한 패시브 능력을 얻을 수 있는 친구의 해금, 새로운 마법 카드의 해금 등 이 특전 역시 제시되는 여러 가지 중 본인의 선택으로 얻을 수 있다. 결국 죽고, 죽고, 또 죽으면서 아이리스의 능력을 키워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강력해진다는 것. 실제로 처음보다는 두 번째가, 두 번째보다는 세 번째 플레이가 훨씬 수월하게 느껴지고는 한다. 문제는 회차 시스템이라 아무리 강력해져도 시작은 맨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중간에 게임을 끄면 다음에는 끈 층부터 시작하지만 한 번 죽으면 말짱 도루묵이라 지루함을 느낄 유저도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와 무거운 BGM의 묘한 조화

이 게임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건 음울한 분위기와 여기에 어울리는 그래픽, BGM이다. 친구들에게 놀림 받고 외로워하는 소녀의 이야기인 만큼 게임 내내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진다. 시종일관 낮고 느리게 전개되는 BGM은 사람의 마음을 절로 먹먹하게 만들고, 이 와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서술하는 소녀의 목소리는 묘한 긴장감을 안겨준다. 여기에 절정은 바로 그래픽이다. 지금은 세계적은 명장으로 거듭난 팀 버튼의 초창기 작품들. 유령신부, 크리스마스의 악몽 같은 애니메이션이 떠오를 만큼 인상적인 그림체가 게임 전반을 휩쓸고 있다. 몸과 손, 발은 가늘지만 머리는 큰, 거기다 기괴하고, 조금은 무섭게 표현되는 연출까지. 처음에는 마치 아이가 그린 것처럼 아기자기한 그림체 덕에 가벼운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프닝만 지나도 이 게임이 가진 무거운 주제의식과 음산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수준급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게임. 호불호는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추천!

아이리스와 거인은 전투나 그래픽, 이야기 전개방식 등 모든 면에서 수준급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게임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역시나 한글화. 필자는 처음에 이 게임이 자폐증을 가진 아이의 내면세계를 표현한 게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일러스트를 보면 또 그냥 아이들에게 놀림 당하는 아이의 외로움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고. 이 부분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부족한 영어실력 덕분에 아직도 제대로 된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글화 외에도 반복적인 죽음이 강제되어 같은 스테이지를 계속 반복해야 한다는 점, 카드뽑기나 레벨업 능력치 상승 같이 중요한 부분들이 운에 좌우된다는 점 등은 분명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그라이크의 전략성과 RPG의 성장이라는 장점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녹여낸 게임이기에 한 번쯤 플레이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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