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감동을 줄 수 있을까? PS4 어라이즈 심플스토리 리뷰

  • 입력 2020.01.02 18:11
  • 기자명 김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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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혹은 현실에는 없는 색다른 이야기를 간접경험해보기 위해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신기한 건 기술과 그래픽의 발달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를 늘려준다는 것이다. 30년 전만 해도 게임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스토리라고 할 만한 것도 많지 않았고, 게임에서 감동을 얻었다는 이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게임에 음악이 입혀지고, 그래픽이 현실과 그다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좋아지면서 게임에서 얻는 감정들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게임에서 사랑과 우정 같은 간단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중세 기사의 긍지나 명예 같은. 현 시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게임을 단순한 스트레스용 오락기 정도로 치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이 게임을 권해주고 싶다. 어라이즈, 심플스토리다.

희노애락이 있는 할아버지의 기나긴 인생 이야기

어라이즈 심플 스토리는 덩치 큰 할아버지가 화장되면서 시작한다. 유목민족 같은 옷을 입고 있는 할아버지는 눈이 쌓인 거대한 언덕에서 화장되고 잠시 후 일어나서 과거의 일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형식으로 스토리가 이어진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답답했던 게 사실이다. 등장인물들은 눈도 없고, 대사도 없다. 단순한 제스쳐 하나로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파악해야 하고, 당장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딱 30분 플레이 한 후 나의 생각이 얼마나 멍청하고 낭만없는 생각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로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해주고 있었다. 슬플 때는 고개를 떨구고, 기쁠 때는 그 큰 덩치가 총총거리며 뛰어다닌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모종의 이유(이건 말하면 스포다. 이해를 바란다)로 좌절했을 때다.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할아버지가 내가 아무리 방향키를 입력해도 한 걸음 가서 무릎 꿇고, 두 걸음 비척거리고 다시 무릎을 꿇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대사도 없고, 내레이션도 기합이나 신음소리가 다지만 거기서 거의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그냥 할아버지의 인생을 어렸을 때부터 쭉 이어서 체험하는 게 다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깊이가 있다. 왜인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평범하게 연애하고, 결혼하고, 죽음까지 이르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한 남자의 인생인데 무언지 모를 울림과 감동이 있는 스토리였다.

시간을 돌려서~

게임은 전체적으로 굉장히 편안하게 흘러간다. 죽음에 대한 제약도 없고, 뭔가를 시도했다가 실패했을 때의 패널티도 없다. 그냥 작은 퍼즐들을 풀면서 길을 나아가는 방식이다. 죽음에 대한 제약이 없으니 샛길로 빠져볼 수도 있고, 이게 맞나를 시험해 볼 수도 있다. 조금 특이하다고 느꼈던 거는 시간조작을 통해 길을 만들어 가는 시스템이라는 거다.

일정 시간을 빨리 돌릴 수고, 뒤로 돌릴 수도 있는데, 그 과정을 통해 갈 수 없는 곳도 가게 된다. 예를 들면 그냥은 높아서 갈 수 없는 곳을 시간을 빨리 돌려서 눈을 쌓고, 그걸 밟아서 올라가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방식이 굉장히 신박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물의 흐름, 불이 번지는 경로, 지진으로 인한 지각변동 등 내가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길이 만들어져서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시간을 멈출 수도 있어서 번개가 칠 때, 바위가 굴러올 때 특정 순간에 시간을 멈추고 지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독특한 방식이기에 길을 찾기 위해서 약간의 고민이 필요하지만 한 번 익숙해지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각 장마다 하나의 특정 행동을 키워드로 진행하기 때문에 그것만 잘 캐치하면 된다. 어느 장에서는 시간을 돌려 벌레를 타야 하는 게 주요 키포인트고, 어느 장에서는 시간을 돌려 연꽃을 타야 하는 게 키포인트고. 이런 식이다. 난이도도 딱 적당히 어려운 정도라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길 수 있다. 스토리가 나름 생명인 게임인데, 게이머들이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할까봐 걱정이었는지, 군데 군데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최고의 순간을 그림으로 기록해 놓았다. 이걸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각 장마다 컨셉 확실한 그래픽

스크린샷만 봐도 알겠지만, 이 게임은 전형적인 힐링 게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힐링 게임의 특징인 아름다운 배경, 그래픽은 필수다. 그래픽은 원색을 활용해서 구분이 명확하고 선명하게 구현해 놨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뭐 하나 거슬리는 부분이 없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느낌이랄까. 기본적으로 죽음 이후 생을 돌아본다는 스토리라서 할아버지가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배경으로 드러난다.

어린 시절을 뜻하는 1, 2장은 그래서 맵 자체가 굉장히 유아틱하고 천진난만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묵직해지고, 각 장의 키워드에 맞춰 맵이 조성되어 있다. 별빛을 타고 하늘을 날기도 하고, 연꽃을 타고 강들을 지나기도 한다. 마치 디즈니의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을 한 편 감상하는 것처럼 몽환적이고 반짝거리는 배경, 그래픽이 시선을 확 잡아끄는 게임이었다.

클래식이 이렇게 찰떡일 줄이야. 환상적인 BGM

이 게임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BGM이다. 사실 나는 이 게임을 하기 전까지 BGM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BGM , 그냥 게임의 양념같은 거지. 중요한 건 스토리랑 게임성 아냐?’ 이따위 겜알못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라이즈 심플 스토리를 통해 BGM이 얼마나 중요한지, 게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다. BGM의 대부분은 피아노 연주로 이뤄지는데, 클래식인 것 같다.

어디서 좀 들어본 듯한 음악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BGM,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할아버지의 감정의 변화에 따라 BGM이 결정되고, 맵의 진행상황에 따라 BGM이 결정되는데, 이게 게이머의 몰입을 이끄는 일등 공신이다. 할아버지가 기뻐할 때는 환희에 가득찬 음악이 흘러나오고, 할아버지가 슬퍼할 때는 어두운 음악이 흘러나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BGM이 이렇게 찰떡같이 배치된 게임을 나는 처음 플레이해봤다. 스토리의 상황, 할아버지의 감정상태에 따라 BGM과 맵, 그래픽까지 삼위일체를 이뤄서 뭐 하나 버릴 구석이 없다. BGM의 퀄리티도 굉장히 좋아서 가수 음반 하나 사는 돈도 아까워하는 내가 BGM이 앨범으로 나오면 살까를 고민했을 정도로 귀를 호강시켜 준다. 그래픽과 게임도 좋았지만 이 게임의 화룡점정은 어디까지나 BGM이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의 인생이 주는 힐링과 감동

어라이즈 심플스토리는 분명한 힐링 게임이다. 대부분의 힐링 게임이 그렇듯 플레이 타임도 짧은 편이고 여러 가지 콘텐츠가 마련된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힐링 게임을 한 번도 플레이해 본 적 없고, 플레이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내가 눈물 찔끔 흘리면서 감상했을 정도로 연출력도 좋다.

할아버지의 일생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같이 미소짓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좌절하고. 마치 픽사의 애니메이션 업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게임에서 감동을 얻고 싶은 이들. 한 번 쯤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은 이들은 이 게임을 플레이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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