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시리즈의 귀환. PS4 신 사쿠라대전 리뷰

  • 입력 2019.12.26 11:41
  • 수정 2019.12.26 15:42
  • 기자명 김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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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패키지 게임 시장을 장악했던 일본의 게임은 대부분 캐릭터에 크게 의미부여를 많이 한다. 물론 대부분의 명작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일본은 명작이든, 수작이든, 망작이든. 캐릭터의 특징이 명확하다. 아마도 캐릭터 굿즈 상품이 많은 탓이겠지만, 가끔은 캐릭터에 너무 집중하느라 게임 자체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대로 게임에 캐릭터가 잘 녹아든 경우에는 이를 시리즈로 이어나가며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도 한다. 그렇기에 일본 게임 중에는 10, 20년이 넘는 시리즈가 수두룩 하다.

사쿠라대전 역시 그런 케이스. 사쿠라대전 시리즈는 1996년에 처음 발매되어 무려 23년째를 맞이하는 굉장히 유서 깊은 게임이다. 한 번 크게 히트하면 관련 파생상품이 무수히 출시되는 일본의 특성상 애니메이션, 소설, 드라마, 연극으로까지 제작된 전통의 게임, 사쿠라대전의 새로운 시리즈가 나왔다. 기존 시리즈와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시리즈의 명성을 이어가기에 적절한 게임인지, 하나하나 알아보자.

 

이해하기 힘든 연출, 오징어를 유발하는 대사

 

스토리는 시리즈 전통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남자 주인공이 화격단이라 불리는 곳에 부임하면서 일어나는 일들로 화격단은 괴물, 귀신의 습격에 대항하기 위해 나라에서 운영하는 단체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화격단이 주요 도시에 상주하고 있으며 주인공은 최초의 화격단이라는 제국 화격단에 부임한다. 연극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일이 터졌을 때만 출동한다는 설정도 시리즈를 그대로 빼다 박았고, 남자 주인공이 여자대원들에 둘러싸여서 하나하나 호감도를 올려가는 방식 역시 시리즈와 동일하다. 신 사쿠라대전은 사쿠라대전 5에서 12년이 지난 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5명의 대원을 데리고 주인공이 다른 도시의 화격단과 경쟁하며 성장, 정체불명의 적과 싸우는 스토리다.

스토리 자체는 크게 문제가 없다. 지금까지 사쿠라대전을 있게 한 일등공신으로 검증받은 스토리니까. 문제는 군데군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연출과 오글거리는 대사가 등장한다는 거다. 첫 전투에서 라이벌 격인 상하이화격단의 샤오룽이 등장하는데, 단순히 주인공의 화격단이 다 망한 화격단이라며 마구잡이로 공격한다. 처음에는 저 자식이 정신병자나 미친 악역인가 생각했는데, 전투가 끝나자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 없이 자기네 중국집에 놀러오라며 태연하게 악수를 건넨다.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다.

오글거리는 연출 역시 몰입을 방해한다. 여자 히로인인 사쿠라의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주인공이 갑자기 각성하는데, 여기서 삼류 소년만화에서나 할 만한 사쿠라를 보면서 나는 포기하지 않겠어!’ 같은 대사를 내뱉는다. ‘우리가 있어!’ ‘힘을 내!’ 이따위 말로 각성한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손발이 오글거리는 대사들을 시시때때로 날려대서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느낌표 따라다니기 게임인가? 자유도라는 게 거의 없다

게임의 시스템 역시 전통의 사쿠라대전을 벗어나지 않는다. 어드벤처 파트에서는 여자 대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호감도를 올리고, 서브 퀘스트를 진행, 전투 파트에서는 맵 하나를 해결한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이게 자유도가 0에 수렴한다는 거다. 처음에 퀘스트가 주어지고, 주인공이 가야 할 곳이 많아지면서 나는 굉장히 설렜었다. 일정 시점이 오면 내가 전투도 선택하며 캐릭을 성장시킬 수 있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사람들도 만날 수 있겠지. 이런 기대를 2장 끝날 때까지 했지만 결국 내가 생각한 자유도는 없었다.

한 사람에게 대화를 걸면 그와 관련된 이벤트가 일어나고 끝이고, 퀘스트도 어디가서 뭘 사와라. 누굴 찾아와라. 식의 굉장히 간단하고 선형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전투는 시시때때로 긴급출동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거의 경험하질 못했다. 메인스토리를 이어나가야만 전투를 경험할 수 있는 시스템인 것.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미니맵에 있는 느낌표만 열심히 따라가며 정해진 이벤트를 보는게 다다. 코이코이라는 고스톱 콘텐츠가 있긴 한데, 이 게임을 고스톱 즐기려고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나처럼 정통 RPG를 기대하고 이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은 실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애니메이션이 움직이는 듯한 그래픽, 중독성 강한 BGM

나는 JRPG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그래픽이라고 생각한다. 게이머로 하여금 흡사 애니메이션을 플레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그래픽. 캐릭터의 움직임이나 삽화 등이 디테일하게 묘사된 아름다운 삽화. 이런 것들에서는 JRPG를 따라갈 만한 곳이 없다. 실제로 신 사쿠라대전의 그래픽은 꽤 뛰어났다. 시나리오 중간중간 실제 애니메이션 장면을 삽입하여 색다른 묘미를 주기도 했다. (굳이 넣을 필요가 없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모른 척 지나가자.)

캐릭터로 20년 넘게 버텨온 게임 시리즈인 만큼 등장하는 캐릭터 하나하나에 공을 들였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지금 함께 하는 캐릭터 뿐만 아니라 과거 시리즈를 이끌었던 캐릭터들의 브로마이드도 존재해서 전 시리즈를 플레이해봤던 게이머들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배경 역시 제법 수려하다. 원색의 색감과 부드러운 조작감이 얹어져서 캐릭터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뭔가 게임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주고 있다.

그리고 BGM. 약간 레트로풍의 BGM이 사용되었는데,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오글거리는 연출, 삼류 소년 만화 같은 스토리와도 어울려서 나도 모르게 BGM을 따라서 고개를 까딱까딱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쉬워도 너무 쉬운 전투. 임팩트가 없다.

사쿠라대전은 본래 전략 RPG 요소가 다분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진삼국무쌍 같은 액션게임으로 발매되었다. 이런 무쌍류 액션의 포인트는 바로 써는 맛. 많은 적들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쾌감이 필수적이어야 하지만 신 사쿠라대전은 그런 면에서는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연출 자체는 꽤 훌륭하다. 개발진들이 고생했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 물론 여기서도 오글거리는 연출과 대사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액션게임스러운 연출은 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사쿠라대전 시리즈 자체가 전투에 큰 비중을 둔 게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투파트를 무쌍류로 만들려면 기본적인 건 마련해놔야 하지 않을까. 시점 고정이 없어서 기체가 이리저리 도는 건 물론이고 전투 맵도 가독성이 떨어져서 같은 길을 여러 차례 돌아가게 만든다.

기술은 꼴랑 필살기 하나에 버튼 조합도 단조롭다. 적 디자인도 마음에 안든다. 강마라면서 사람들이 무서워 하는데, 인 게임에 구현된 걸 보면 걸어 다니는 깡통로봇이다. 다른 그래픽을 보면 충분히 멋있고, 위압감 있게 구현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의문이다.

전투 시스템을 평하고 싶은데, 시스템이라는 게 없다. 그냥 게이지 모아서 필살기 쓰고, 같이 출전하는 캐릭이랑 호감도 높고 같이 싸우다 보면 패시브 조금 오르고. 그게 다다. 뭔가 기체를 업그레이드 하거나, 레벨업 시스템을 통해서 성장하는 요소를 도입했으면 전투가 이렇게까지 재미없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너무 밋밋하다. 작중에서 제국화격단이 성장했다고 하는데, 레벨업이나 추가되는 장비 모두가 첫 전투와 동일한데 대체 왜 성장했다고 하는건지. 의문이 들 정도다.

미연시인가, RPG인가

신 사쿠라대전은 RPG 게임이라기보다는 미연시 게임으로 접근하면 즐길 거리가 제법 있는 게임이다. 캐릭터 하나하나의 스토리도 잘 살렸고, 관련 이벤트도 많이 마련해 놔서 캐릭터에 집중하는 이들은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액션이나 정통 RPG를 기대한 게이머라면 많이 실망할 테니 다른 게임을 찾아보라 권유하고 싶다. 반대로 애초에 이런 시스템에 익숙한 시리즈 팬들이나 미연시를 좋아하는 분들은 한 번쯤 플레이해봐도 좋을 법한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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