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월드 시커 : 만약 원피스가 아니었다면

  • 입력 2019.04.15 14:13
  • 기자명 조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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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괜찮은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게임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주로 유명한 소설이나 영화 혹은 만화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죠. 이렇게 하나의 소재를 다양한 매체에 사용하는 것을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라고 하는데, 이런 방식을 잘 활용한다면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원작의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부가가치를 극대화할 수가 있고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원작을 다양한 경로로 즐길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도 좋은 매우 훌륭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 말이지요.

하지만 이런 원 소스 멀티 유즈 방식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일단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로열티가 문제됩니다. 유명한 원작을 활용한다면 그만큼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게 되기 때문에, 한정된 예산 안에서 콘텐츠 제작에 할당할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되겠죠. 처음에는 판권이 저렴했더라도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원작자가 금액을 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독자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보다 위험할 수가 있습니다. 유명한 게임 제작사였던 THQ가 파산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해마다 증가하는 로열티를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는 말도 있을 정도죠.

좋아하는 캐릭터가 게임에 등장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설레기 마련입니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게임에 등장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설레기 마련입니다

 

구매자의 입장에서도 문제는 있습니다. 바로 기대치라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죠. 가령 자신이 원작을 훌륭하게 평가한다면 이 원작을 활용한 다른 작품도 그에 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게 됩니다. 이 만화를 재밌게 봤으니 이 만화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도 어느 정도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만약 그 작품이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된다면 더 큰 실망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xx는 그렇지 않아!’라는 반응이 나오게 되는 거죠.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원 소스 멀티 유즈 콘텐츠에서 나올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보면, 높은 로열티로 인해 충분한 제작비를 투자할 수가 없어서 작품성이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콘텐츠를 만들었고, 몇 달 전부터 예약 구매 걸어놓고 출시일만 세고 있던 팬들은 막상 출시가 되자 욕을 하고 환불을 하거나 중고로 팔아버리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는데, 최악을 가정했지만 의외로 매년 볼 수 있습니다. 제작자와 구매자 모두 타격을 입고 원작의 명성에도 흠이 갈 수도 있겠죠. 그래서 이런 제작 방식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원작의 명성에 올라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그 명성에 걸맞을 정도의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에 소개드릴 원피스 월드 시커는 만화 원피스를 원작으로 하는 게임입니다. ‘원피스 그랜드배틀’, ‘원피스 언리미티드 월드 R’ 등 원피스 프랜차이즈 게임을 주로 만들어온 간바리온에서 제작을 맡았군요. 어마어마한 명성을 가지고 있는 명작을 바탕으로 만은 이 게임은 그 명성에 걸맞는 작품성을 갖추고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원작 흥행에 묻어가려는 흔하디 흔한 게임에 불과할까요?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원피스 월드 시커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이것저것 시도한 것은 많지만 무엇 하나 인상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했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 이유를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캐릭터 모델링은 괜찮은 편입니다.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느낌입니다.
캐릭터 모델링은 괜찮은 편입니다.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느낌입니다.

 

 

루피가 되어 감옥섬을 탐험하는 액션 RPG

이 게임은 주인공인 루피가 제일 아일랜드라는 섬에서 동료들을 구출하고 이 섬을 다스리는 아이작에게 맞서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메인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전투와 퀘스트를 진행하고 루피를 육성해가는, 전형적인 액션 RPG라 할 수 있으며, 원작을 바탕으로 하지만 독자적인 이야기와 등장인물을 구상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한 부분입니다. 원작을 바탕으로 오리지널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방식에서는 얼마나 원작을 잘 구현했는지와 오리지널 스토리와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가 모두 중요한데, 일단 겉으로 보이는 컷신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디자인은 합격점을 줄만 합니다. 루피 특유의 태평하면서도 열혈 넘치는 성격이 잘 구현되어 있으며, 오리지널 캐릭터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잔느'라는 캐릭터도 일단 겉모습만큼은 꽤 매력적이니까요.

전투 또한 원작의 특징을 어느 정도 잘 나타내고 있는 편입니다. 필드를 이동하다가 실시간으로 적과 교전하거나 특정한 스토리 혹은 상황에서 이벤트성 전투가 시작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원피스 팬이라면 익히 알만한 견문색과 무장색 중에서 원하는 전투 타입을 골라가면서 간단한 조작으로 화려한 액션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은 칭찬할만한 부분입니다. 기본적인 액션 외에도 게이지를 모아서 다양한 스킬이나 루피의 기어 4를 발동하는 재미도 괜찮은 편이구요. 그래서 게임을 시작하고 나서 한두 시간 정도는 꽤 괜찮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점점 '아...이건 좀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이번 작품의 오리지널 캐릭터인 잔느도 원피스 특유의 느낌이 살아있습니다.
이번 작품의 오리지널 캐릭터인 잔느도 원피스 특유의 느낌이 살아있습니다.

 

 

■ 플레이 시간이 지날 수록 눈에 띄는 단점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게임은 오픈 월드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오픈 월드 좋죠. 최근에 출시된 명작들 중 상당수가 오픈 월드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오픈 월드 = 명작이라는 공식이 성립할까요? 아니죠. 오픈 월드라도 구성이 알차고 디테일하며 개성이 있어야 좋은 월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월드는 그렇지 못합니다. 텅비어있어요. 색감을 잘 써서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긴 하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공허하고 지루하기만 합니다.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해도 텅 비어보이고 그 텅 빈 공간을 채우고 있는 콘텐츠도 없으니까요. 아무리 돌아다녀봐도 살아있는 생생한 월드가 아니라 구색 맞추기로 넣어놓은 죽어있는 공간으로만 보입니다. 왜럴까요?

일단 지나치게 빈 공간이 많습니다. 한번 적을 만나고 다음 적을 만나려면 한참을 걸어가야 하고 그 적도 한번에 3명 정도만 등장할 뿐입니다. NPC도 띄엄띄엄 있습니다. 대도시가 아니면 어쩌다 마주칠 정도로 배치가 부족합니다. 이 넓은 공간에 주인공 캐릭터 혼자만 걷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그나마 별로 많지도 않은 오브젝트는 그 디테일이 크게 부족하다는 인상을 남깁니다. 건물들의 디자인이 그냥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복사 - 붙여넣기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NPC 또한 몇 안되는 외형 패턴을 색깔만 바꿔서 돌려쓰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오브젝트가 비어있는 공간이 많다면 서브 퀘스트나 수집 같은 콘텐츠로 채우는 방법도 있을 텐데, 이런 콘텐츠들 마저 양과 질 모두 빈약합니다.

전투가 화려하긴 하지만 깊이는 없다고 보면 됩니다.
전투가 화려하긴 하지만 깊이는 없다고 보면 됩니다.

 

액션 RPG의 큰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전투 부분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간단한 조작으로 화려한 액션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은 괜찮지만, 그 조작을 익혀서 액션을 심화시키는 과정이 없으니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원패턴으로 공격하다가 게이지가 차면 스킬 구사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견문색, 무장색, 기어 4가 있긴하지만 상대 AI의 패턴이 단조로우니 굳이 복잡하게 모드를 바꿔가면서 싸워야할 이유도 느끼기 힘들고, 어떤 모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단조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잠입 시스템과 원거리 전투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마찬가지로 시스템에 깊이가 있지 않고 적의 배치나 패턴에 개성이 없다보니 굳이 활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시스템으로 그치게 됩니다.

RPG 답게 육성과 아이템 시스템을 활용해서 캐릭터를 키워나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놨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경험치를 쌓아서 스킬을 찍어도 플레이어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크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남습니다. 스킬 트리만 놓고 보면 뭔가 다양해 보이는데, 향상되는 정도가 작거나 활용도가 낮은 경우가 많다보니까 캐릭터를 키우는 보람도 거의 느낄 수가 없죠. 거의 만렙에 가깝게 키워야 다른 액션 게임의 기본 정도까지 따라가는 느낌입니다. 전투도 육성도 뭔가 있어보이는듯 하면서도 결과적으로 단조로운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게임이 전체적으로 루즈하게 흘러가는 편입니다. 그나마 이 게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해적 카르마' 시스템인데, 특정 미션을 클리어하거나 조건을 만족시키면 카르마 수치가 올라가게 되고 이 수치에 따라서 캐릭터의 반응이나 발생하는 이벤트가 달라져서 이 게임의 전체적인 단조로움을 약간이나마 달래주고 있습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원피스의 오픈 월드를 이렇게 썰렁하게 만들어 놓은 점.
가장 아쉬운 점은 원피스의 오픈 월드를 이렇게 썰렁하게 만들어 놓은 점.

 

■ 원피스라는 껍데기가 아니었다면 소리소문없이 묻혔을 알맹이

'원피스 월드 시커'는 겉은 화려하지만 내실이 없는 게임입니다. 처음 게임을 접하면 마치 애니메이션을 게임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비주얼, 간편하면서도 화려한 고무고무 액션,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춘 것 같은 RPG 시스템이 플레이어를 유혹합니다. 하지만 그 비주얼은 텅 빈 오픈 월드를 보며 실망하게 되고, 간편하기만 하고 정교하지 못한 액션에 한계를 느끼게 되고, 보람없는 캐릭터 육성에 이내 고개를 돌리게 됩니다. 같은 장르의 다른 게임들이 월드를 설계하고 액션을 다듬고 깊이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더 보고 배워야 할 정도로 말이죠.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게임에 나온다는 것은 굉장히 설레는 일입니다. 영화나 만화는 수동적으로 감상할 수 밖에 없지만, 게임은 캐릭터를 직접 조종하며 훨씬 더 능동적으로 체험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원피스 정도의 강력한 명성을 가졌다면 기대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죠. 기대는 곧 소비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많은 로열티를 지급하고서라도 원작을 바탕으로 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겠죠. '원피스 월드 시커'는 이런 목적에 맞게, 딱 팔기 좋게, 잠깐 동안 수익을 내기 좋게 만든 게임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기대를 한다면 그에 걸맞는 책임감을 좀 가지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자신들이 만드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작품'이라는 것에 대한 책임감 말이죠.  

 

아쉬운 김에 예쁜 나미나 보고 가시죠!
아쉬운 김에 예쁜 나미나 보고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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