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RPG 감성으로 돌아온 리그 오브 레전드 이야기, 몰락한 왕

  • 입력 2021.11.22 22:48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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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레전드를 지켜보면서 늘 의아했던 건, 챔피언들의 개인 스토리였다. MOBA(멀티플레이어 온라인 배틀 아레나)라는 장르 뒤에 가려진 서사가 궁금했고, 그에 따른 세계관을 확장하지 못 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다행히 아케인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좋은 출발을 보이고 있고, ‘Airship Syndicate(에어십 신디케이트)’에서 최근 출시한 몰락한 왕JRPG를 표방하면서 괜찮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에어십 신디케이트는 4년 전에 제작한 배틀 체이서 나이트 워부터 시작해 주목을 끌었다. 개발진은 몰라도 배틀 체이서라는 제목은 낯이 익을 것이다. 이 게임 역시 JRPG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결론적으로 몰락한 왕은 리그 오브 레전드의 스킨을 따온 배틀 체이서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전투 시스템부터 시작해서 아트 스타일과 애니메이션까지 비슷한 구석이 굉장히 많아서 에어십 신케이트100% 창작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아마 리그 오브 레전드를 경험하지 못한 게이머라면 고전적인 JRPG라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몰락한 왕은 리그 오브 레전드 마니아에게는 꽤 괜찮은 선물이다. 룬테라에 속한 빌지워터와 그림자 군도까지, 모두 RPG 장르를 핑계로 마음껏 탐험할 수 있다. ‘배틀 아레나라는 숨가쁜 전장을 잠시 뒤로 하고, 이제는 룬테라라는 거대한 세계관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배틀 체이서까지 경험한 게이머라면 단순히 스킨용에 실망할 수 있지만, ‘에어십 신디케이트의 기술력이 더해진 이야기 흐름은 나쁘지 않게 흘러간다.

그럼 그 수많은 챔피언들 중에 누가 주요 인물로 등장할까? 게임의 주 무대가 빌지워터부터 시작해 그림자 군도로 확장된다는 점 덕분에 리그 오브 레전드 마니아는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미스 포츈과 그녀와 앙숙 관계인 갱플랭크, 학살의 부두를 주름잡는 작살잡이 파이크, 그리고 조력자로 나서는 일라오이가 게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에 아이오니아에서 온 전사 야스오와 프렐요드의 영웅 브라움도 함께한다. 태생을 확인할 수 없는 아리는 치료 능력으로 챔피언들을 돕는다.

스토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콘셉트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보면 된다. 미스 포츈과 그리 사이 좋아 보이지 않는 파이크가 동료가 됐다는 점 외에 딱히 눈에 띄는 부분은 없다.

그보다 이 게임이 JRPG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할 거리가 많다. 지도 규모와 퀘스트를 폭넓게 확장했다는 점 외에 전투 시스템이 눈에 띈다. ‘배틀 체이서처럼 턴제로 전투를 치르지만, 전투 순서를 보여주는 선공 바를 활용했다. 캐릭터의 초상화가 무작위로 나열되고, 순서대로 턴이 시작되기 때문에, 사실상 타임라인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기본 공격을 하면 위치가 변하지 않지만, 강력한 스킬을 사용하면 순서에서 밀리기 때문에 발동 시간이 늦어진다. 여기에 타임라인을 세 갈래로 나누어서 각 위치에 핸디캡을 부여해 위치를 강제로 변경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2행에 위험 영역이 놓이면, 게이머가 스킬을 활용해 1행이나 3행으로 이동해 회피할 수 있다. 반대로 이익 영역이 놓이면, 오히려 그 안으로 들어가서 치료나 방어와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이 선공 바를 통해서 게이머의 공격 순서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선공 바라는 개념이 유독 낯설게 느껴진다. 사실상 이 게임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스템인데 초반을 지나서 동료가 3명으로 더 늘어난 시점에도 적응하기가 힘이 든다. 여기에 과충전이라는 개념을 넣은데다 전투로를 전환한다는 설명이 덧붙여지니까 초반에는 좀 어리둥절할 수 있다.

과충전은 이번 전투에서만 소비되는 임시 마나다. 생성된 전투에서만 활용되고, 다음 전투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과충전은 즉석 스킬로 축적이 되는데, 마나가 소비되지 않는 기본 공격으로 이해하면 된다. 보통 두 번 정도 즉석 스킬을 사용하면, 마나가 소비되는 전투로 스킬을 처음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과충전이 중요한 이유는 체력과 마나 소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포션을 구입할 수 있는 돈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편이라서, 되도록 과충전을 활용해 포션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위험 영역을 피하려면 전투로 스킬을 활용해야 한다. 마나가 소비되는 이 전투로 스킬은 선행로’, ‘균형로(기본값)’, ‘강력로로 나누어서 공격할 수 있다. 각각 1, 2, 3행으로 초상화가 이동하면서 공격하는데 그 어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강력로로 갈수록 강력해지기 때문에 발동이 늦어진다. 하지만 이익 영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일부러 선행로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불행히도 이게 끝이 아니다. 각 캐릭터마다 약화 공격을 발동해서 대미지를 중첩시킬 수도 있다. 우리가 JRPG에서 경험했던 독성 공격을 떠올리면 된다. 이 게임은 다소 복잡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지만, 턴이 시작될 때마다 피해가 발생하고, 출혈과 같은 핸디캡이 적용되면서 대미지가 점점 누적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스 포츈은 기본 공격을 하면 사랑의 한 방이 핸디캡으로 적용된다. 이후에 하트 브레이커라는 전투로 스킬을 사용하면 사랑의 한 방이 적용된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큰 피해를 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여타 캐릭터들도 그와 비슷한 누적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약화가 있으니 강화도 있다. 그런데 강화 공격은 대부분 적군들의 메리트로 작용한다. 사실 이 게임의 초반을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가 된다. 초반에는 아무래도 체력이나 방어가 낮은 편이기 때문에 과충전을 활용할 정도로 여유롭지 않다. 물론 눈치가 빠른 게이머라면 재치있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게임 중반까지 애를 좀 먹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 자체가 매우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 텍스트로 대하면 끝까지 읽기 싫을 정도로 복잡해 보이지만, 게임에 들어가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정도다.

문제는 의외의 지점에서 발견됐다. 지도를 더 넓히고, 퀘스트도 다양해진 건 좋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다. 캐릭터의 이동 자체부터 굉장히 느려서 퀘스트 하나 해결하는데도 은근히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게임을 하다 보면, 전투 장면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만큼 퀘스트에 따라오는 인터페이스가 간소화 되지 않았고, 여기에 자잘한 버그까지 겹치면서 게임의 전개 자체가 매우 느리다. 그 때문에 지도가 넓은 게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포션에 허덕이면서 전투를 치르다 보니, 불만이 쌓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JRPG를 표방한다고는 하지만, ‘파이널 판타지시리즈처럼 딱히 아기자기한 구석이 없어서 평이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부가적으로 진행되는 퀘스트들이 다소 지루한 감이 있고, 안내도 친절하지 않아서 시간을 허투루 소비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그래도 다행히 중반부를 거치면 전투 시스템을 이해하게 되면서 숨통이 좀 트이게 된다. 과충전을 제대로 활용할 정도가 되면 포션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 전개가 초반보다 많이 수월해진다. 그러다 보니 퀘스트가 쌓여도 이전처럼 부담이 없다. 넓은 지도와 인터페이스가 여전히 불편하지만, 비밀 스테이지를 찾을 만큼 여력이 생기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금 이 게임에서 시급한 건, 캐릭터의 이동부터 빠르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전투 스피드에 비해 턱없이 느려서 지루한 전개를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퀘스트 해결 지점이 오락가락거나, 아이템 수집이 막히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쓸데없이 헤매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점들만 해결한다면 몰락한 왕은 다음 업데이트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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