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이 12분에 갇힌다면? PC '트웰브 미닛' 리뷰

  • 입력 2021.09.07 16:03
  • 기자명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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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증명되어도, 인류는 과거나 미래로 여행할 수 있는 날을 꿈꾼다. 아쉽게도 아직은 현재에 갇혀 있다. 어쩌면 '시간여행'이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다루는 소재인 채로 인류의 역사가 끝날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 없기에 후회와 추억이 남고, 미래로 앞당길 수 없기에 예측을 하고 희망을 꿈꾼다. '시간'을 다루는 게임은 이런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다. 그중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타임루프'다. 영원히 반복되는 시간에 플레이어를 가둬버리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떠보니 이미 지나온 하루를 다시 시작하게 되고, 영원히 '같은 하루'에 갇혀버리는 스토리는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다. 이 같은 반복 속에 어떤 사연의 주인공을 어떻게 몰아넣느냐에 따라, 로맨틱 코미디가 되기도 하고 스릴러나 공포가 되기도 한다.

 

이번에 소개할 게임은 바로 이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게임 '트웰브 미닛'이다. 플레이어는 영원히 반복되는 '12분'을 경험하며, 게임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야기의 흐름을 풀어나가는 것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려있다. 아주 사소한 선택은 운명을 바꿔놓을 것이다. 12분마다.

플레이어는 평범한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남자가 된다. 집에 돌아온 나는 방 안에 있는 아내에게 인사를 한다. 방문 너머로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옷을 갈아입으러 침실로 들어간다. 문득 침실에 걸린 그림이 새롭게 느껴지고, 화분도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다.

 

아내의 서랍 첫 번째 칸이 열려있다. 아내는 자신의 물건에 손을 대는 걸 싫어하지만, 강렬하게 몰아치는 궁금함에 이미 손이 먼저 움직인다. 잘 포개진 옷 위에 빨간 끈으로 포장된 상자가 하나 놓여있다. 가끔 이런 선물로 날 깜짝 놀라게 하지만, 오늘은 누구의 생일도 아니고 기념일도 아니다. 무슨 선물일까?

 

상자 안에는 의외로 아기의 옷이 들어있다. '달리아' 엄마의 이름이다. '아내가 왜 이런 아기 옷을 포장해놨지?' 궁금한 생각이 들 때, 방에 있던 아내가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얼른 티 나지 않게 아기의 옷을 상자에 넣어 다시 서랍에 넣어둔다.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 디저트를 만들어 놨다고 말한다. 그녀는 내게 주고 싶은 깜짝 선물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미 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내가 상자를 본 걸 혹시 눈치채지는 않을까?' '어떤 반응을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스친다. 

 

아내는 임신했고, 내게 아빠가 될 거라 말한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속으로는 자신이 없었지만, 아내와 함께라면 우린 잘 해낼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다. 잠깐이나마 아내와 나의 아이가 함께 식탁에 앉은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 순간,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경찰이라는 남자가 무작정 집으로 들어온다. 다짜고짜 집에 들어온 그 남자는 아내와 나를 결박하고 바닥에 넘어트린다.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구지? 아내에게 하는 말은 무슨 뜻이지? 8년 전에 그녀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없지만, 우선은 아내를 구해야 한다. 손은 뒤로 묶여 있지만, 일어설 수는 있다. 아내를 그 남자에게 떨어트려야 한다. 바로 그 순간 남자의 주먹이 내 얼굴로 날아온다.

다시 12분 전. 어떻게 된 일일까? 분명 꿈은 아니다. 냉장고에 디저트도 그대로 있고, 아내의 서랍에 선물상자도 그대로 있다. 나는 아내에게 내가 겪은 일을 설명하고, 또 납득할만한 증거를 찾기 시작한다. 

 

아기 옷을 이야기하니 아내는 마지못해 믿어주는 눈치다. 나는 아내에게 설명할 것들을 찾다가, 밖에 천둥이 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 남자는 다시 올 것이다. 그 남자에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다시 12분 전.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다시 그의 주먹을 맞았다. 여전히 그 남자는 아내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계. 도대체 어떤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 시계에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제대로 알아야겠다. 이번에는 집에 들어온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옷장에 숨어 그 남자가 오기를 지켜보기로 한다.

 

그 경찰이라는 남자는 다시 찾아왔다. 곧장 아내를 바닥에 밀어 쓰러트린다. 마음이 아프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반드시 알아낼 것이다. 그 남자는 다시 아내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시계? 시계에 도대체 뭐가 있다는 거지? 욕실? 아내는 시계를 거기에 숨겨둔 모양이다. 어디 있는지 알았으니 다시 12분 전으로 되돌아간다면, 찾아서 확인할 것이다.

 

이제 남자에게서 아내를 구해야 한다. 옷장의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미처 손쓰기도 전에 총성과 함께 아내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다. 그 남자가 자리를 떠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반드시 시간을 되돌려야한다. 아내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 시계. 시계를 찾아야 한다. 그 시계의 비밀을 알아내야한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바닥에 쓰러진 아내를 바라본다. 그렇게 다시 돌아간다. 12분 전으로. 

거의 모든 장면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에 극 초반부의 이야기만을 간단하게 구성했다. 위의 내용은 수십 가지의 스토리 중 하나일 뿐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수 없이 변화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선택한 루트를 설명한 것이기에, 도입부의 내용은 선택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출발점에는 몇 가지 단서가 있다. '아내의 과거' '시계' '낯선 남자' 정도다. 이 연결고리를 알아내는 것에서 게임은 시작한다. 하지만, 마지막은 다르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해본 게이머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플레이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최악의 마지막을 목격할 수도 있고, 내가 바라던 장면을 그릴 수도 있다. 물론 어떤 가장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좋은 방향은 있겠으나, 플레이어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정답은 없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이야기의 흐름에 집중할 수 있는 '포인트&클릭' 방식이다. 거실과 침실, 화장실에 있는 다양한 오브젝트를 상호작용 할 수 있다. '머그잔' '선물상자' '냉장고' '디저트' '그림' '화분' 등 다양한 오브젝트를 소지품으로 가지고 있거나, 다른 장소에 배치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이야기를 풀어나갈 배경은 그다지 넓지 않다. 주로 거실과 침실, 화장실이다. 활동 반경이 좁은 데다가 제한되는 부분도 많다. 서랍이나 냉장고, 혹은 화장실의 선반에 있는 아이템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은 정해져 있다. 그중에서도 게임의 실마리가 될만한 오브젝트를 찾아야 한다.

 

'트웰브 미닛'은 애초에 퍼즐을 염두에 둔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상호작용은 대부분 직관적이다. 그리고 모든 대화가 텍스트로 표시된다. 주인공과 아내의 대화를 꼼꼼하게 보고 기억한다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변화 없이 같은 시간에 계속 갇힌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반복'을 좋게 받아들이는 게이머는 많지 않을 것이다. 게임의 절대 규칙인 '다시 12분 전으로'는 게임 내내 계속된다. 이야기를 진행할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했던 일을 다시 또 똑같이 해야 한다.

 

이 과정은 게임이 계속되면서 더욱 심해진다. 나올 때까지 찾아야 하고, 찾지 못하면 똑같은 시간만 보낼 뿐이다. 만약 1에서 10까지를 게임의 진행 과정이라고 한다면, 1에서 9까지의 과정을 또 반복한다. 마지막 10의 변화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똑같은 움직임과 대사 등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또 겪어야 한다. '왜 변화가 없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면 어딘가 잘못된 것이다. '타임루프'를 다루는 게임인 만큼 이 악몽을 어쩔 수 없이 경험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면, 최대한 단서가 될만한 사건이나 대사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사건의 흐름을 조율하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잘 정리하는 것이 좋다. 아내의 행동을 유도하거나, 물건의 위치를 다시 배치해야 한다. 이 과정이 여유롭지 않다. 의문의 남자는 플레이어에게 시간을 그다지 많이 주지 않기 때문이다.

'트웰브 미닛'은 플레이어를 시간의 반복에 가둬놓고,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단서를 찾는 게임이다. 그만큼 반복의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저주' 같은 고통만 남을 것이다.

 

게이머들이 이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기 위해서인지, 최근 방송게임 플랫폼에서 많은 스트리머가 플레이하고 있다.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스토리를 단순히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쉽게 이야기의 끝을 볼 것 같은 게임은 4시간, 5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기 때문이다. 

 

내게는 이런 게임에 큰 거부감이 없어 재미있는 경험이었지만, 취향에 맞지 않는 게이머라면 '했던 걸 또 한다고? 그것도 몇십번이나?' 라며, 첫 번째 루프에 포기할 수도 있다. 섣부르게 추천할 수 없는 장르의 게임임에는 분명하다.

 

누구보다 조심해야 할 게이머는 '나는 모든 아이템, 분기점, 앤딩을 봐야 해' 라는 게이머들이다. '트웰브 미닛'은 플레이어의 선택 하나에 분기점뿐만 아니라, 앤딩이 완전히 뒤바뀐다. 이런 '완벽 강박증'을 가진 게이머라면, 정말로 '타임루프'에 갇혀버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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