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라이크'에 '메트로베니아'를 더했을 때. PC '그라임' 리뷰

  • 입력 2021.08.24 17:34
  • 기자명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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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 영상과 인게임이 전혀 다른 게임이 가끔 있다. 하도 속아서 이제는 이런 낚시에 잘 걸리지 않지만, 게이머란 재밌어 보이는 게임 영상에 본능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또 속는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다 착한 사람들이다.

 

이번에 소개할 '그라임'이 그렇다. 심오하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내는 배경에, 블랙홀의 머리를 한 주인공이 추락한다. '와 분위기 장난 아니네'의 생각이 들게 하는 트레일러. 이미 머리속에는 독특한 방식의 전투에 공포스러운 분위기, 징그러운 몬스터가 나올 것 같은 장면들이 지나간다.

 

하지만, 나는 또 속았다. 'FPS'도 아니고 'TPS'도 아니다. '민트초코' 마냥 찾는 사람들만 찾는다는 그 장르다.

'그라임'은 근본을 '소울라이크'에 두고 있다. 이 장르는 게이머의 취향을 타는 것은 물론, 다른 게임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높은 난이도가 특징이다. 트레일러 영상의 분위기만 보고도, '다크 소울'의 매콤한 맛을 느낀 게이머가 있을 것이다.

 

독특한 점은 여기에 '메트로베니아' 규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메트로베니아'에 대해서는 게이머마다 다양한 혹은 엄격한 기준을 세우지만, '길 찾기' '죽으면 다시 시작'의 큰 틀은 같다. 인내와 반복의 시간이 필요하고, '피지컬'이 안된다면 '근성'으로 극복할 수 있다.

 

'소울라이크'와 '메트로베니아'의 조합. '다크소울'을 마치 '록맨'처럼 한다고 생각하면, '그라임'이 어떤 게임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장르는 게이머의 취향을 타는 만큼, 개발사도 '선수들만 입장해주세요'를 대놓고 드러낸다. 어렵고 짜증 나도 선수들은 도전한다.

트레일러는 난해하고, 기괴한 장면을 보여준다. 초월적인 내용을 담은 스토리나, 심오한 세계관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스토리의 전개는 '프롬 소프트웨어'가 '다크소울'과 '블러드본'에서 보여준 방식과 비슷할 것이라 기대했다. 플레이어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여기저기 숨겨져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라임'의 이야기는 큰 흐름이 연결되지 않는 듯 어색하다. '이게 뭔 소리야'의 물음표만 띄우게 하는 NPC들의 대사가 가득하다. 몰입할 수 있을 만한 입구가 없다. 개발자들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이머가 이 독특한 세계관에 빨려 들어갈 만한 블랙홀을 찾기가 어렵다.

 

분위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물론 취향에 따라 이런 기괴함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게이머도 있을 것이다. 얼굴 없는 주인공, 의미 없는 말을 해대는 NPC, 암석과 식물의 뒤틀린 혼합으로 이루어진 세계관. 때깔이나 컨셉은 괜찮은데,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 뭔가 궁금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흡입력이 약하다. 스토리를 추구하는 장르가 아니기에 실망감은 덜하지만, 오프닝에서 간단한 세계관 설명이나 방향 같은 커다란 흐름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쉽다.

'체력' '스테미너' '거리 재기' '타이밍'. '소울라이크' 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그라임'에서도 중요하다. 딜레이 없는 공격, 제한 없는 체력 회복과 같은 방식의 전투와는 출발점이 다르다. 그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장르의 꽃인 '패링'이다.

 

게임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패링'이란 적의 공격을 튕겨내거나, 그 공격을 받아치는 기술을 뜻한다. '그라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적의 공격에 맞춰 '패링'을 성공하면, 그 몬스터를 '흡수'할 수 있다. '흡수'는 데미지도 높고, 적에게서 '숨결'을 훔칠 수도 있다. 적에게서 얻는 '숨결'은 모아서 체력으로 변환할 수 있다. 거의 유일한 회복 기술인 만큼 적들을 많이 '흡수'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앞서 언급했듯, '그라임'은 개발사와 게이머 간 이미 합의가 된 장르의 게임이다. 모르면 맞아야 하고, 알아도 틀리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등장하는 몬스터마다 다양한 공격패턴이 다양하고, 타이밍도 제각각이다. 여기에 몇몇 적은 무적이 되는 순간도 있다.

'그라임'은 세계관만큼 독특한 형태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무기는 보스를 잡아서 얻거나, 필드에서 획득할 수도 있다. 맵에 숨겨진 NPC에게서도 특정 아이템을 가져다주면 얻을 수 있다. 무기에도 '소울류'의 방식이 적용된다. 특정 무기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요구 스텟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민첩'의 수치를 15 요구하는 무기가 있으면, 캐릭터의 '민첩' 스탯을 15 이상 찍어야 한다. 그래야 사용할 수 있다. 스탯에 따른 공격 보너스도 추가된다. '포효의 철퇴'라는 무기는 캐릭터 스탯 중 '위력'과 '공명' 수치가 높을수록 공격력도 올라간다. 무기는 두 가지를 퀵슬롯에 등록해 자유롭게 바꿔서 사용할 수 있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필드에서 얻게 되는 소모성 아이템도 퀵슬롯에 등록할 수 있다.

캐릭터의 '특성'은 일정 수의 적을 '흡수'해야지만 얻을 수 있다. 특성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사냥 포인트'가 필요하다. 결국에는 맵에 보이는 적을 어느 정도는 '흡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번 투자한 특성은 다시 되돌릴 수도 있지만, 공짜는 아니다. '모들리 진주'라는 아이템이 필요하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맵에 숨겨진 공간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다.

 

몸체의 업그레이드에는 '덩어리'라는 자원이 필요하다. 일종의 '소울'이다. '덩어리'는 주로 적을 제거했을 때 자동으로 얻을 수 있고, 소량이지만 주변의 오브젝트를 파괴해서도 얻을 수 있다. '덩어리'는 '열의'라는 수치가 높을수록 그 획득량도 증가한다.

 

'그라임'의 독특한 시스템인 '열의'는 적을 공격하거나 제거했을 때 그 수치가 오르고, 공격을 당하면 수치가 감소한다. '열의'가 높으면, 적에게서 획득하는 덩어리의 양도 최대 100%까지 늘어난다. 여기에 각종 특성까지 추가하면, 공격력이 높아지거나 힘의 회복이 빨라지는 보너스 효과도 받을 수 있다. 

 

그라임에서는 캐릭터가 죽는다고 해서 그동안 모아왔던 소중한 '덩어리'를 모두 잃지 않는다. 대신 열의만 0으로 바뀔 뿐이다. 한번 죽었을 때, 다시 그 자리까지 가서 덩어리를 회수할 필요가 없다. 물론, 시체를 찾으면 열의의 절반을 다시 획득할 수 있지만, 열의는 다시 몬스터를 제거하면서 금방 채우면 된다.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이 한 번에 물거품 되는 것을 방지해준다. 굉장히 친절하다. '업그레이드하고 갈걸' '아끼지 말고 아이템 그냥 살걸' 했던 아쉬움이 '그라임'에는 없다. 솔직히 '소울라이크'가 가진 고유의 색깔과는 다르다. 불편함과 불합리함 때문에 이 장르를 좋아하는 게이머들에게는 거부감이 들 것이다. 

각 구역의 마지막에는 역시나 보스가 플레이어를 기다리고 있다. 세계관에 잘 어울리고, 각각의 개성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아쉬운 점은 보스의 공격패턴 패턴이 쉽고, 공략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열 번에서 스무 번 정도의 트라이를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게 공략했다.

 

보스들의 공격은 대부분 정직한 '정박'이고, 패턴도 그다지 많지 않다. 때리는 척하면서 '엇박'으로 들어온다거나, 다양한 패턴으로 플레이어를 정신없이 흔들지 않는다. 

 

보스가 무적기술을 사용할 때는 피하고, 일반공격 타이밍에 맞춰 '흡수'만 해줘도 피가 쭉쭉 빠진다. 평소 피지컬에 자신 없는 내가 쉽게 느낄 정도니, '그라임'의 보스전은 쉬운 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라임'의 가장 불편한 점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 숨어있다. 게임에서는 일종의 체크포인트 역할을 하는 거점 '서로게이트'가 있다. 일종의 '화톳불'이다. 캐릭터의 스탯 업그레이드와 체력회복, 부활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근데 '서로게이트'간의 이동이 안 된다. 단순히 '성장'이라는 탭만 있을 뿐이지, 이동과 관련된 선택지가 없다.

'어차피 지나온 곳인데 다시 거길 뭐하러 가' 라는 생각이 안 들면 상관이 없겠지만, '여기봐봐 뭔가 있지? 근데 지금은 안돼. 나중에 스킬 배워서 와' 라고 설계해놨다. '서로게이트'를 활성화하면, 맵의 모든 적과 함정이 다시 리셋된다. 맵이 짧은 것도 아니어서 '그 아이템 뭐지? 궁금한데' 라는 생각이 들면, 다시 몬스터들과 마주하며 꾸역꾸역 돌아가야 한다.

 

모든 아이템, 숨겨진 구간을 찾아봐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게이머들에게는 정말로 고통스러운 시스템이다. 제발 그 아이템이 '덩어리 몇 조각'만 아니길 바랄 뿐이다.

트레일러에는 속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 그만큼 '메트로베니아'와 '소울라이크'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들이 잘 섞여 있다. 전혀 새로운 것이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괜찮은 게임이다. 그동안, 이 장르에서 추구해온 전투방식을 비틀지 않았다. 모르면 맞고, 죽으면서 배운다.

 

독특하게 구성된 세계관과 캐릭터. 긴장감 있는 전투와 다양한 공격방식. 각각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게임이다. 비슷한 종류의 '2D 다크소울'이라 불린 게임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질 것이 없다. '메트로메니아'와 '소울라이크'. 인내와 고통과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게임. '아 눌렀는데'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게임. 이런 모든 조건을 극복할 자신이 있다면, 꼭 한 번쯤 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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