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츠(Nuts), 멸종 위기의 다람쥐를 지켜 주세요

  • 입력 2021.02.10 12:32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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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멸종위기종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거나, 동물 보호 단체에 후원금을 보낸 적이 있다면 ‘너츠(Nuts)’는 꽤 흥미로운 게임이 될 것이다. 게이머는 멜모스 숲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카라반에 상주하면서 다람쥐의 이동 경로를 관찰한다. 멜모스 숲에는 ‘파노라마 랜드’라고 불리는 5성급 콘도가 지어질 예정이었는데 토종 다람쥐 서식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자 건설 계획이 무산됐다. 게이머의 작업 방향에 따라 다람쥐들의 터전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게임은 카메라와 모니터를 활용해 다람쥐를 관찰하고, 다음 움직임을 예측하는 수순으로 이어진다. 대부분은 다람쥐와의 숨바꼭질로 소비되고 있어서 반복적인 면은 있지만, 전제와 동기는 명확하다. 다람쥐의 서식지를 찾아내서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팩스로 보고해야 한다. 게이머와 함께 업무를 시작할 인물은 장비를 담당하는 사이먼과 연구를 담당하는 니나 숄츠 교수로, 주로 니나 숄츠라는 여성과 통화를 주고받으면서 진행된다. 그들은 이미 도토리 창고를 통해 다람쥐들을 유인해 놓은 상태다. 게이머는 사이먼이 준비한 카메라를 GPS에 표시된 지점으로 따라가 설치하고, 다람쥐의 이동 경로를 파악한다.

플레이 방법은 간단하다. 1번 모니터와 연결된 카메라를 GPS에 표시된 지점에 설치하고, 카라반으로 돌아와 녹화 버튼을 누른다. 그럼 1번 카메라에 녹화된 다람쥐의 이동 경로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다람쥐가 나타난 지점을 계속해서 따라가면 된다. 이후에는 카메라와 모니터가 2번과 3번까지 생기면서 더욱 디테일하게 다람쥐의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 있다.

낮에는 카메라 설치, 밤에는 녹화된 영상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게이머의 재량에 따라서 낮과 밤이 계속 반복될 수도 있다. 어쩌면 초반에 이해가 덜 된 나머지 낮과 밤이 지속돼서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너츠’는 자연스럽게 자연 다큐멘터리 속의 생활을 연상케 한다. 멸종위기종을 구하기 위해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서식지를 보호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게임성보다는 윤리와 도덕성에 무게가 실린다. 게임은 단순히 ‘다람쥐 찾기’에 머물지 않고, 산업의 폐해와 인류애를 끊임없이 거론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모두 니나 숄츠의 목소리를 담당한 성우의 연기력도 포함된다.

게임의 아트 스타일은 굉장히 평범하다. 그저 태블릿 PC에 끄적인 것처럼 세세한 구석은 없고, 색감이나 명암 등도 거의 실종된 상태라서 외형으로만 보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다람쥐를 찾기 시작하면 언제부턴가 서식지를 찾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멸종위기종에 대한 단순한 보호 본능이나 애호가 수준의 차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람쥐들은 ‘너츠’의 세계에 있지만, 지켜내야 할 명분으로 보였고, 꽤나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다만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반복적인 면이 있다. 다람쥐의 이동은 랜덤이 아니라 일정하기 때문에 사각지대만 잘 찾아서 카메라를 설치하면 빠른 시간 안에 서식지를 찾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플레이타임을 고려해 봤을 때 빠르게는 3~4시간, 느긋하게 즐긴다면 6~7시간 정도 소비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니나 숄츠에게 보고할 내용은 아주 단순해서 전개에 애를 먹는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너츠’의 숲 속은 음영의 차이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육안으로 구분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동일한 색상이 낮과 밤에는 반전이 되기도 하지만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는 아니다. 대신 물감을 짜내서 그린 듯한 색상과 라인은 깔끔한 편이다. 덕분에 눈의 피로가 없어서 몇 시간 동안 다람쥐를 따라갈 수 있었다. 다람쥐 3마리의 서식지를 찾아내는 업무는 꽤나 기나긴 시간이었지만, 피로가 누적되는 일은 없었다. 바위와 나무 등이 대부분 겹쳐 보여서 애를 좀 먹었지만, 다람쥐의 이동 경로와 패턴을 예측하는 일은 대부분 쉬운 편이다.

이 게임은 아주 단순하지만, 도중에 내 관심 밖으로 물러난 일은 없었다. 2번 카메라에 다람쥐가 포착되면, 2번 카메라를 주축으로 1번과 3번 카메라를 서둘러 설치하고 있었다. 다람쥐의 행동반경을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지만, 행동이 많이 튀기 때문에 과장된 추리는 오히려 시간만 낭비할 수 있다. 다람쥐가 재빠르게 나무를 오르내리고, 바위 사이를 우아하게 점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잠시나마 다큐멘터리 팀원 중에 한 명으로 빙의 될 수도 있다.

각도와 거리 조절에 소홀하면 다람쥐를 놓칠 수도 있다. 감시가 완벽하다고 믿은 게이머의 상황 판단 때문이다. 그렇다고 게임이 그 빈틈을 파고들지는 않는다. 다람쥐는 늘 그 경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으니 카메라만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으면 된다. 게임을 시작할 때 그 기분보다 이 상황을 좀 더 엄중하게 지켜본다면 게임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게임은 다람쥐의 행동을 영상으로 녹화해서 사진을 찍고, 니나 숄츠에게 팩스로 보낸다. 서식지를 찾아내기도 하고, 다람쥐들이 모인 장소를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뜻밖의 성과에 니나 숄츠가 감탄하고, 다음 업무를 전달하는 과정의 흐름이 깔끔한 편이다. 실제로 다람쥐 애호가의 의뢰를 받고 야생을 찾았다면 하이킹의 시간이 무척이나 길 것이다. 다람쥐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영상을 녹화하고 채널을 바꿔가면서 사진을 찍는 일도 꽤 재밌는 시간이 될 것이다. 방송국 장비를 만져 본 사람은 알겠지만, 선형 방식의 편집기는 그만의 촉감이 있다. 다이얼을 꾹꾹 눌러 주다가 리와인드하는 과정이 이 게임에 고증이라도 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물론 편집 기술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스위치를 바꿔 가면서 인쇄를 하는 그러한 과정이 꽤나 설득력이 있다.

여기에서 게임은 지속적으로 거창한 ‘작업’을 치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카라반에는 게이머가 찍은 사진과 문서를 게재할 수 있는 게시판이 있다. 니나 숄츠와 통화를 하면서 그녀가 보낸 기사를 읽을 수 있고, 사진을 같이 보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게임의 레벨 디자인은 무척 평범하지만, 멸종위기종을 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반면 자연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없었거나 반복적인 플레이를 싫어한다면 금방 싫증이 날 수 있다. 다람쥐를 찾는 과정이 반복되면 취향에 따라서 몇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카메라를 설치한 다음에 카라반으로 돌아와서 녹화 버튼을 누르면 밤, 영상을 확인한 다음에 카라반을 나서면 낮이 시작된다. 다시 카메라를 새로 설치하고, 각도를 조절하고,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게이머가 이러한 과정을 ‘작업’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저 이 게임은 반복적이고 번거로울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다람쥐의 이동 경로도 일정하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어떠한 역동성도 없다는 점이다. 레벨 디자인이라도 수준급이라면 숨쉬는 제스처라도 취할 텐데 게이머가 창의적으로 개입할 지점은 없다.

다행히도 ‘너츠’는 폭넓게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단순히 시작된 이 다람쥐에 대한 연구는 예측할 수 없는 음모론으로 이어지고, 확실한 동기를 부여한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이 스토리텔링의 마지막에서는 가슴이 벅차오를 수도 있으니 인내와 끈기만 있다면 충분히 즐길 만한 게임이다. 다람쥐의 서식지를 한 번이라도 찾아냈거나, 협곡 사이에서 우연히 포착했다면 그건 게이머의 단순한 도전 정신만은 아닐 것이다. 다람쥐의 움직임이 꽤나 사랑스럽고, 귀엽기 때문에 마음 한 편에서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게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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