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랜더스 링 오브 히어로즈, 클리셰로 얼룩진 턴제 RPG

  • 입력 2020.12.23 12:21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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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랜더스 링 오브 히어로즈>는 최근 범람하는 모바일 게임의 트렌드를 그대로 따라간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게이머들도 전투 장면을 보는 순간 어떤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는지 단번에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몇 분이 더 지나서 길드 가입까지 소개되면 전투 중에 누가 먼저 죽을지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이걸 알아내는데 그 어떠한 추리력도 필요 없으며 백과사전식 지식도 필요 없다. 여타 모바일 게임들도 비슷하게 전개된다고는 하지만, 이 게임은 수집형 모바일 게임의 공식적인 클리셰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캐릭터 모델이나 배경 스토리, 전투와 성장 시스템 등 개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데다 사운드 부분에서도 음소거의 배려(?)를 위해 상대적으로 신경쓰지 않은 모습이다.

개발진이나 게이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비슷한 방식의 모바일 게임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쯤은 인식하고 있다. 아마 수집형 모바일 게임을 즐겨온 게이머들이라면 시스템은 외면하고 리세마라(게임 초반에 무료 뽑기가 원하는 대로 될 때까지 리셋하는 행동) 방법부터 검색할 것이다. 문제는 소유욕을 자극할 만한 캐릭터들이며 그 선택은 당연히 게이머들에게 달려있다.

게임의 스토리는 스카이랜드를 배경으로 포털 마스터들과 카오스 일당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카오스 일당이 포털 점령 계획을 세우다가 미지의 세상과 연결이 되면서 지구의 포털 마스터가 스카이랜드로 오게 된다. 여기에 ‘다크니스’라는 불청객까지 찾아오면서 어둠의 포털 마스터들이 생겨나게 된다. 포털 마스터들의 대립 때문에 힘의 균형은 무너졌고, 스카이랜드를 중심으로 전쟁이 시작된다.

줄거리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이 게임에서 스토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빛의 핵’이라든지 ‘마스터’ 등 쉬운 단어만을 선택했고, 그리스나 북유럽 신화까지 갈 필요도 없이 우화 속의 단순한 교훈도 찾아볼 수 없다. 그 어떠한 이야기도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메인 화면을 들여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성장과 보상 메뉴들이 보이고, 간헐적으로 ‘현질’을 유도하는 광고 그림이 간판을 바꿔 달고 있다. 인터페이스가 익숙하기보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여타 모바일 게임들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포털 마스터와 스카이랜더 캐릭터들은 마치 작은 피규어를 보는 것처럼 아기자기한데 대부분 낯이 익다. 불의 속성을 지닌 ‘이럽터’나 ‘핫 도그’는 그 이름처럼 어딘가에서 본 듯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다. ‘바벨라’라는 캐릭터를 보면 ‘땅’의 속성이 있는데 양쪽에 바위가 달려 있는 무기는 얼핏 보면 역기로도 보인다. 아니나다를까 ‘바벨라’는 게임에서 이길 때마다 체조 선수처럼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3D로 제작된 그 밖의 캐릭터들은 특별히 튀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게이머들이 알고 있는 게임 속 캐릭터들 딱 그 모습이고,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코스튬에서는 섬세한 문양 정도도 찾아볼 수 없는데 저작권을 피해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게임은 턴제 RPG 장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적인 타격이 없고 스킬만 쓸 수 있다. 이제부터는 게이머들의 추측이 대부분 들어맞을 것이다. 스킬을 써야 한다면 마나가 있어야 할 것이고 쿨타임(스킬을 사용하고 동일한 스킬을 사용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존재할 것이다. 턴제 장르니까 마나를 다 쓰게 되면 적들의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이 게임은 마나를 한 뭉치로 해 놨기 때문에 캐릭터들이 사이좋게 나눠서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스킬 마나 계산을 잘 해서 다음 턴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다음 생각할 점은 ‘그로기’ 상태일 것이다. 게이머들은 대부분 ‘침묵’이나 ‘기절’ 등을 떠오를 텐데 게임에서는 ‘녹다운’으로 지칭했다. 하지만 요즘 게임들은 바로 ‘녹다운’ 기술을 쓰지는 않는다. 상당한 핸디캡이니까 전제 조건이 필요한데 게임에서는 ‘인내력’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인내력’ 차감 스킬에 당하면 에너지 바 옆에 있는 숫자가 깎이고 0이 되면 ‘녹다운’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녹다운’으로 가면 심심하니까 ‘브레이크’ 상태를 따로 만든다. 이제 브레이크에 빠진 캐릭터에게 스킬을 시전하면 된다.

스킬에는 당연히 ‘패시브’가 존재한다. 언제나 적용되는 이 스킬 외에 생각할 것은 뭐가 있을까? 직접 사용이 가능한 액티브 스킬은 물론이고 캐릭터 고유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게임은 캐릭터들이 팀을 꾸려서 스킬 마나를 나눠서 사용한다. 그럼 쉽게 떠오르는 것이 바로 ‘리더’이고 그에 따른 스킬이 따로 존재할 것이다.

성장 시스템 역시 추측하는 것이 쉽다. 레벨을 올리면 언젠가는 한계에 다다르고, 그 한계를 돌파하려면 진화나 각성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캐릭터는 1성에서 차근차근 쌓아 올려 5성 이상까지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그에 따른 재료들이 따로 존재하고, 보상이나 ‘현질’로 얻을 수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무기와 방어구 등은 ‘에테르’라는 용어로 되어 있다. ‘에테르’는 가공 원소로 알려졌지만, 여기에서는 우리가 흔히 아는 장비로 이해하면 된다. 캐릭터들 슬롯에 장착하고 강화하고 분해할 수 있다. <디아블로> 시리즈를 접했던 우리 게이머들은 세트 효과를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인챈트 스크롤’를 사용해서 세트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 게임에서 자동 전투가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자동 전투를 설정해 놓고 웹서핑을 하거나 음악을 듣고 있다면 제대로 보상 받기는 힘들 것이다. 각 스테이지마다 보상 조건이 있는데 제일 먼저 걸리는 점은 캐릭터들 전원이 생존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15턴 안에 클리어해야 할 정도로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전략과 전술이 필요할 것인가? 마나를 적절히 계산해서 다음 턴까지 전망해야 승리를 만끽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좋겠지만 이 게임의 전투는 그리 치열하지 않다. 마나 양이 복잡하게 설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레벨을 올려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전투에서 짧은 시간 안에 쉽게 이기는 것은 아니다. 집중 공격이 효과적인 경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으며 전투 시간이 의외로 오래 걸려서 성장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전투가 어려운 것이 이 게임의 장점이 될 수도 없다. 결국 캐릭터들을 소환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될 뿐이다. 캐릭터들의 모델링이나 스킬에 개성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모든 것이 진부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 게임의 스토리텔링이 소홀한 것만은 아니다. 챕터마다 삽화를 보여주면서 친근하게 풀어 나간다. 스토리의 깊이를 떠나서 시나리오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모바일 게임을 별로 접하지 못 했거나 유아틱한 콘셉트를 좋아한다면 나쁜 게임만은 아니다. 자동 전투의 한계가 금방 찾아오게 한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수동으로 전투를 치른다고 해도 머리를 싸맬 일은 없었지만, 보상을 제대로 받으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 개발진의 센스를 느낄 수 있었다. 포털 마스터들의 스승인 마스터 이온이 등장해서는 “전투에 사용했던 에너지는 모두 돌려주마.”라고 말한 것이다. 개발진의 마인드를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묘하게 웃음이 나왔던 장면이었다. 추후 개성적인 캐릭터들과 스토리로 차기작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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