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치독스 리전 리뷰, 유비소프트가 런던을 대하는 자세

  • 입력 2020.11.06 14:44
  • 수정 2020.11.06 14:48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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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소프트가 바라본 2018년 10월의 영국은 1666년에 일어났던 ‘런던 대화재’의 전조와 겹쳐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날 런던 거리는 강경 보수층의 오만함을 심판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퍼져 갔고, 지역과 세대간 격차의 갈등까지 번져 있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한다는 이른바 ‘브렉시트’가 국내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이슈로 가시화 되는 순간이었다. 혹자는 대영제국의 영광을 논하기도 했지만, 그 밑바탕에는 신규 회원국들의 출입을 언짢아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민과 난민 문제로 인해 경제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이자 자칭 보수 층을 중심으로 EU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2016년, 브렉시트에 찬성한다는 투표 결과가 과반을 차지하자 오히려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경제는 더 위기에 빠졌다. 영국이 EU를 탈퇴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결국 아무런 안전 장치도 없이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할 처지에 놓이자 생전 처음 시위를 해보는 젊은 성인들이 거리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제 우리가 인식했던 ‘신사의 나라’ 영국은 보이지 않고, 엘리트주의에 빠져있는 강경 보수 성향의 정치인들이 정세를 혼란에 빠뜨리는 해괴한 나라가 되어 버렸다. 일부에서는 옥스퍼드 대학교 동문들의 카르텔 사이에서 자존심 싸움이 벌어졌고, 그 결과가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이르게 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만큼 ‘브렉시트’는 전 세계가 손가락질하면서 가장 멍청한 짓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영국의 정치권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멘탈로 무장한 나머지 동요조차 없었고,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코로나19에도 전혀 대응하지 못해 좀처럼 혼란 속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비소프트의 <와치 독스> 시리즈가 런던으로 배경을 옮기지 못할 이유는 없다. <와치 독스 리전>의 런던은 컴퓨터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거대한 통제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이른바 ‘ctOS’라고 불리는 이 시스템은 전작의 배경이 되었던 시카고와 샌프란시스코에도 등장한다. 게이머는 전작처럼 해커로 활동하면서 이 중앙 운영 체제를 모니터링하고 제어한다. 이제는 미래의 운송 수단으로 꼽히는 드론까지 등장하면서 해킹의 범위는 더 폭넓어졌다. 런던은 사실상 무법 지대가 된 지 오래다.

사실 런던이라는 불안한 배경이 탄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패스트 감염병과 대화재가 일어난 이후에 런던은 찰스 2세에 의해 근대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금융시장의 발달은 산업혁명으로 이어졌고, 그 혜택을 받지 못 한 동부는 슬럼가로 형성되면서 범죄가 판을 치고 있었다. 이 당시에 ‘잭 더 리퍼’라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했고, 코난 도일 역시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셜록 홈스> 시리즈를 집필했다.

유비소프트의 상상력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브렉시트’ 이전의 세상으로 돌리고자 거리로 나왔던 시민들이 바로 주인공이다. 게이머는 핵티비스트 ‘DedSec’의 사나가 되어서 런던의 치안을 장악하고 있는 민간 군사 기업 알비온과 영국 정부의 수상한 관계를 파헤쳐야 한다. 사나가 속해 있는 ‘DedSec’은 ‘배글리’라는 AI가 포함된 전문적인 해커 집단이며, 새로운 형태의 행동주의자들답게 정부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사나는 이미 웨스트민스터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었던 달튼이라는 동료를 잃었으며 그 배후에 ‘제로 데이’라는 정체불명의 해커 집단이 연루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달튼이 당했을 때 사나 역시 누군가에게 기습을 당했기 때문에 현재 그녀가 선택할 방법은 ‘재건’뿐이다.

게임은 라디오, 더 엄밀히 따지면 언론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동기를 부여한다. 라디오 DJ와 청취자들간의 대화를 통해 런던이 얼마나 우습게 돌아가고 있는지 풍자적으로 묘사한다. 그 와중에 사나는 런던 ‘ctOS’에 접속해서 재건을 도와줄 동료를 물색한다. 게이머가 앞으로 직접 조종할 이 캐릭터들은 랜덤 형식으로 등장하는데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도 고정되지 않는다. 직접 테스트해 본 결과, 직업들은 다양하게 변하고, 인물들의 생김새와 옷차림도 달라졌다. 의사, 바텐더,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 축구 선수, 사회 운동가, 신체 피어싱 시술자 등 개성은 뚜렷하다. 대부분 아웃사이더들로 구성됐는데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경력들이다. 예를 들어 가짜 쿠폰을 제작하거나 경찰 국장의 비밀 직통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점은 해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비싼 스포츠카를 구입하거나 동물원 출입 금지를 당했다는 점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유비소프트가 선정한 이 랜덤 캐릭터들 중에서는 전작에 등장했던 ‘에이든 피어스(Aiden Pearce)’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역시 아웃사이더처럼 모자를 눌러썼지만, 롱코트와 마스크를 통해 다크한 히어로를 묘사하고 있었다. 가족을 위한 복수극이라는 점에서 다소 좌충우돌해 보였던 2편과는 비교가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번 <와치 독스 리전>에도 에이든 피어스와 같은 상징적인 영웅들은 없지만 단역과 조연으로만 비쳐졌던 캐릭터들이 주요 임무를 맡는다는 점에서 게임은 꽤 활기가 넘친다.

그렇다고 해서 <와치 독스 리전>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찾는다는 것은 사치일 수도 있다. 게이머는 언제든지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영입하고, 코스튬을 개선할 수 있다. 집단행동의 미학으로 보이지만, 그들 사이에서 세밀하고 촘촘한 상호작용을 기대할 수는 없다. 다양한 인종과 외모가 있지만, 플레이 과정에서는 거의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본인이 선택한 중년의 여성은 스포츠카를 사랑하고, 명품으로 도배하는 것을 즐기지만, <와치 독스> 시리즈의 주인공들처럼 해킹뿐만 아니라 격투기에도 능해야 하며 총기류까지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녀에게 역동적인 액션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이 국내 정치권을 향해 무언의 메시지라도 보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가 할 일은 따로 있지 않았을까?

해외 플레이까지 확인해 본 결과, 플레이어가 다양하게 변하더라도 운전을 능숙하게 하고, 보안 카메라를 해킹, 드론 탈취, 서버 룸 침입까지 모든 과정이 거의 비슷해서 다소 실망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다면 거칠어 보이는 스포츠 선수를 선택하는 것이 더 현명했을 지도 모른다. 이 스포츠 선수 역시 랜덤 형식으로 변하는데 튼튼한 체력이 특징이다. 아마 이 수많은 시민들의 역할이 따로 존재했다면 <와치 독스 리전>은 ‘오픈 월드’ 장르에 새로운 혁명을 가져왔을 지도 모른다.

유비소프트가 런던을 무법 지대로 만들었다는 점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은 클리셰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지금까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통해 ‘대체 역사’ 장르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던 것에 비하면 이 역시 다소 실망스럽다. <와치 독스 리전>의 정부는 이민자들을 홀대할 뿐만 아니라 거리로 내던지며 폭력을 행사한다. 훤한 대낮에 길거리에서 폭행을 저지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런던의 보안을 담당하는 민간 군사 기업 알비온은 흉악한 범죄자들보다 더 많은 시민들을 병원으로 보내 버렸다. 데이터를 불법으로 수집해서 시민들을 감시하고 온갖 가짜뉴스 조작에 정보까지 왜곡한다. 게이머라면 이 흔하디 흔한 디스토피아에 쉽게 빠져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도시 전역을 활보하면서 해킹으로 알비온과 정부를 엿 먹이고, 낙서를 통해 시민들을 동요 시키는 와중에도 새로울 것은 없어 보인다.

<와치 독스 리전>은 일종의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게임은 타격감이 부족해 보이고, 몸을 움찔하게 할 정도로 거친 액션은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지적이고 재밌다. 유비소프트가 관심을 두었던 런던의 시민들은 분명히 개성이 있고, 성숙한 사람들이며, 자기들만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다소 소소해 보여도 충분히 활용할 가치가 있다. 이 게임을 통해 ‘오픈 월드’ 장르에 새로운 이정표가 생길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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