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String, 하프라이프에 보내는 러브레터

  • 입력 2020.10.23 00:58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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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String>은 지난 16년 동안 <하프라이프> 시리즈의 모드(Modification) 게임 중 최고로 꼽힐 수 있다. 그와 동시에 <뉴로맨서>에 보내는 러브레터이자 사이버펑크를 표방한 수많은 문학 작품의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다. 텔레비전의 화면 조정 시간을 보는 듯한 거친 하늘색과 ‘스프롤 현상’에 비유되는 무질서한 도시는 윌리엄 깁슨의 창조적인 스토리텔링과 밀접해 있다.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종말론으로 형성된 이 미래의 세계는 무려 10년을 넘게 테스트를 진행해 왔으며, 비로소 2020년에 정식 출시하게 됐다.

밸브(Valve)의 <하프라이프> 시리즈 모드 게임은 지난 10년 동안 넘쳐 났고, <블랙 메사>라는 걸쭉한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FPS 게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하프라이프> 시리즈는 여전히 많은 팬들이 속편을 기다리고 있다. 팬들의 바람은 소스 엔진을 통해 수많은 변형을 거쳐 왔고, 전 세계적으로 관행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일부 모드는 매우 사소했지만, <G String>은 전체를 변환한 완전히 새로운 게임이다.

개발진이 상상한 디스토피아는 기후 변화로 인해 황폐화된 세계이며, 그로 인한 생존자들이 초강대국인 북미 연합(NAU)에 살고 있다. NAU는 인류 역사에서 본 적이 없는 반인륜적이며 반종교적인 정권에 장악 당하고 있다. 석유 전쟁으로 세계는 더 혼란에 빠졌으며, 이제 감시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화폐는 전자로만 가능하며 금융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인터넷 상에서 철저한 규제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인류가 살고 있는 저궤도(Lo-orb)에는 우리가 꿈꿨던 우주 정거장과 광대한 태양전지판이 있지만, 무분별한 우주 여행의 결과로 인해 쓰레기장이 되었다. 인프라가 철저히 준비되지 않은 탓에 미세한 운석부터 버려진 선체까지 충돌의 위험을 안고 있다. 중궤도(Mid-orb)에는 일부 기술자만이 위성으로 향하고 있으며 여전히 위험의 뿌리는 갖추고 있다. 대신에 고궤도(Hi-orb)에는 고급스러운 호텔이 있다. 태양계에서 가장 부자로 손꼽히는 테드 머독의 아버지가 살았고, 그의 고향이기도 하다. 테드 머독은 여전히 악명 높은 우주의 거물이자 자본가 계급의 상징으로 불리우고 있다. 불안한 미래로 안내하는 반중력 상태를 떠다니며 오히려 폭식을 즐기고, 광적인 수집가를 자처하고 있다. 그들만의 펜트하우스인 ‘Tower One’에 거주하면서 일 년에 한 번씩 금성을 방문한다.

그는 또한 ‘SAMI’라는 섹스봇을 선호한다. 게이머는 이 기나긴 여정에서 많은 로봇을 만날 것이다. 대부분 전원이 꺼져 있거나 폐기된 모델이기 때문에 위협은 되지 않지만, ‘VANA’와 ‘Nanny’가 나타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들도 모두 섹스봇으로 당신에게 다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Bortz Bioengineering(BB)’가 내린 결과물이다.

BB는 공식적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줄기 세포와 극저온 냉동 서비스, 회춘 프로그램, 사이버네틱과 같은 생명 공학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뒤에서는 뇌사 상태에 빠진 인간을 성 노예로 만들고, 인간과 동물간의 잡종을 생산, 거기에 인간 복제와 백신을 조작한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인류애에 크나큰 도전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테드 머독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자본가 계급의 소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BB의 공식적인 책임자 조셉은 인공 두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처럼 매일 충전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여행을 싫어하기 때문에 BB를 고향으로 여기고 있고, 직업이 삶의 전부라고 믿고 있다.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었던 그는 이른바 ‘금요일의 홍수’ 사건 이후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고, 책임을 지고 ‘슈퍼 솔저 프로그램’에 착수한다. 수십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이 사건 이후에 펌프와 수로 및 운하의 복잡한 네트워크가 도시를 보호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

그리고 게이머는 ‘슈퍼 솔저 프로그램’에 참여한 10대 여성 한국인 효리가 되어 이 불가피한 역사의 길을 걸어야 한다. BB가 제공한 ‘전망대(Observation Deck) D-1’에서 최우선 과목을 테스트하고, 고도로 오염된 도시로 향해 나아간다.

게이머가 목도할 서부 대도시는 남과 북으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도시의 북부는 행성 무역 센터(Interplanetary Trade Center, 이하 ITC)와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고급스러운 고층 건물들이 있다. 반면 남부는 훨씬 지형이 크지만, 궁핍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우연으로 얼룩진 인생이 자리하고 있다. 수세기에 걸친 기후 변화와 계급 투쟁이 빚어낸 무법 천지이자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버려진 곳이나 다름없다. 마약과 매춘이 빈번하고, 경찰은 부패했으며 AI는 통제가 어렵게 됐다. 게이머는 지난 1세기 동안 가장 위험한 도시로 선정된 이곳을 횡단해야 한다.

먼저 게이머에게는 BB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바이오 슈트를 착용하였으며 염력과 발열 능력을 사용한다. <하프 라이프>의 고든 박사처럼 여러 물건들을 들어올려 무기로 사용하거나 통로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발열은 말 그대로 불길을 만들어 내는 능력으로 이 역시 막힌 길을 뚫어주거나 무기로 사용한다.

대부분이 떠나 버린 이곳은 해수면 상승이 자주 일어나지만, 공식적으로 해안 도시로 불리지 않는다. NAU는 극동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위해 도시를 팽창시켰지만, 인구 과잉과 자원 부족 때문에 전 세계로 다시 몰아내 버렸다. 마치 이 도시는 정글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에 게이머 앞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곳곳에 남겨진 아시아인들의 흔적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오버랩되면서 오히려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게이머는 4개의 층으로 나뉘어진 도시를 탐험하면서 석유 전쟁 이전에 무너진 국가 시스템을 체감할 수 있다. 가장 낮은 층은 짙은 스모그로 휩싸여 있고, 연료 차량에 의해 침수된 도로는 차단되어 있어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산성비와 유독 가스는 바이오 슈트 없이는 생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가난한 삶이 가득한 지하를 넘어서 500피트 위로 올라가면 햇빛이 드는 곳을 발견할 수 있다. 건설사들은 조금 더 많은 햇빛을 보기 위해 오래된 건물 위에 구조물을 설계했다. 태양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 탓에 이런 수직적인 도시 구조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게이머가 눈치챈 것처럼 이러한 계급 사회는 노골적으로 묘사된다. 500피트 위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중산층’이 살고 있으며 평범한 아파트가 지어져 있다. 더 높은 층에는 유명한 연예인과 거물들이 살고 있다. 우주 여행을 위한 충분한 주차 공간도 있으며 스모그 걱정 없는 훤한 전망대도 있다. 고층 타워 사이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널찍한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출입은 항공으로만 이루어진다. 1500피트 위에는 180층 높이의 ITC가 있고, 개인 우주 정거장과 고급 주택, 멋진 펜트하우스가 자리잡고 있다.

이 게임은 <하프라이프> 시리즈의 또 다른 유희를 찾는 지름길이다. 지금까지 배경 설명이 거창했던 이유는 수두룩한 모드 게임들 사이에서 개발진의 철학이 제대로 묻어났기 때문이다. <하프 라이프>의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저 품질 낮은 FPS 게임으로 보이겠지만, 10년을 넘게 사이버펑크 장르에 보내는 이 헌사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올드 게이머들은 <블레이드 러너> 외에도 <공각기동대>나 <블레임!>과 같은 일본 만화도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 곳곳에 보이는 디스토피아 풍경은 동아시아 문학에 매료된 개발진의 순수한 감성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는 당연히 우리 한국의 정서도 그대로 담아냈다.

무려 12년 가깝게 제작된 이 게임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행보를 보였다. 개발진의 홈페이지에서 그 눈물겨운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게임의 완성도를 위해 사운드트랙 제작과 성우 더빙 등 그가 해낸 작업들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 <G String>은 <하프라이프> 모드를 단순히 사이버펑크 장르로 변모 시킨 것으로 보이지만, 필립 K.딕의 책 첫 장을 다시 만지작거리게 만든다. 개발진의 끈기는 SF에 매료됐던 한 때를 자연스럽게 소환하는 뚜렷한 계기가 되었다.

P.S) 한글 자막을 보려면 다음과 같이 하면 된다. Options > Keyboards > Advanced > Enable developer console(~)에 체크, 이후에 ~누르고 cc_lang Korean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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