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원작의 재현이 가능할까? 동방불패 리뷰

  • 입력 2020.09.14 17:26
  • 기자명 김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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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대학교를 다닐 때 아는 선배 한 명이 해 준 이야기가 있다. “무협은 어떤 루트를 타든 결국에는 복수로 귀결되지만, 판타지는 복수 이외에도 다룰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재밌다.” 그 선배는 판타지 소설을 출판하여 나름 인지도를 쌓아가던 중견 작가였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협에 대한 환상과 재미가 줄어든 건 아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협소설은 대부분이 김용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등 현대 무협소설의 기틀을 마련한 김용은 중국문학의 대부로 불리며 신필이라는 이명까지 얻을 정도로 대단한 작가였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원초적인 재미를 건드리면서도 그 안에 사회에서 논의가 되는, 혹은 인간이 살면서 한 번쯤은 깊게 고민해야 할 철학적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깊이가 있으면서도 대중성을 잡은 소설로 무협소설을 하나의 장르로 끌어올린 인물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 김용의 소설을 기반으로 만든 만화, 드라마를 아버지와 함께 자주 보곤 했었다. 좀 더 커서는 이 콘텐츠로 만든 게임도 아주 즐겁게 플레이했던 기억도 있다.

김용의 소설 중 소오강호라는 소설이 있다. 화산파 제자인 영호충이 겪게 되는 사랑과 모험을 다룬 이야기인데,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최고수이자, 악역의 이름이 바로 동방불패다. 동방불패는 일월신교의 교주로 겉은 남자이지만, 내면은 여자인 불가사의한 인물로 김용의 여러 소설 중에서도 그 캐릭터성이 가장 돋보이는 인물 중 하나다. 당장 소오강호에서도 주인공 영호충보다 동방불패가 더 기억에 남는 독자들이 많을 정도. 워낙에 매력 넘치고, 동성애를 연상케하는 캐릭터성으로 사회적으로까지 문제가 불거졌던 인물이라 동방불패는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콘텐츠에서 재탄생되고, 인용되었다. 지난 910, 구글과 애플에 정식 출시된 동방불패 모바일 역시 마찬가지. 영화와 소설 속 내용을 고스란히 재현했다고 자부하며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오픈한 동방불패 온라인의 내실은 어떠할지, 살펴보기로 하자.

소오강호와 동방불패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 알면 좋지만 모르면... 글쎼?

게임의 기본 세계관은 김용의 소설인 소오강호다. 그리고 여기에 소오강호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중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했던 영화 동방불패의 세계관이 일부 가미되어 있다. 주인공은 영종이라 불리는 무림의 암약세력의 일원이다. 영종은 선연선생이라 불리는 이가 무림의 아이들을 거둬서 세작으로 키운 단체로, 이 세작들은 무림 문파 곳곳에 숨겨져 있다, 플레이어는 화산파와 무당, 항산, 소림, 일월신교. 다섯가지 문파 중 하나에 속한 세작이 되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원작처럼 벽사검보를 둘러싼 각 문파의 알력다툼을 그리고 있으며 곳곳에 소설과 영화를 본 이라면 반가워할 이들이 굉장하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만큼 임팩트 있는 캐릭터 임평지가 초반에 등장하고, 스토리를 진행하면 영호충 역시 만날 수 있다. 필자처럼 일월신교에서 시작하면 교주인 동방불패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문제는 원작의 많은 인물들이 너무 중구난방으로 많이 등장한다는 거다. 솔직히 소오강호나 동방불패를 아는 이들에게는 큰 문제가 없다. 이들은 대충 소설의 내용이나 등장인물의 배경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 게임을 통해 동방불패 세계관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생소할 수밖에 없는 이름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동방불패는 과연 여자인가 남자인가. 벽사검보가 무엇인가. 임평지는 누구고 임평지의 가문은 왜 멸망당해야 하는가. 이 과정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려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스토리의 전체 흐름은 원작을 따라가지만 군데군데 스토리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초반에 약역으로 등장하는 청성파 인원들의 사투리 음성...... 청성파 인원은 장문인부터 말단 문파원들까지 모두가 어설픈 사투리를 구사한다. 그런데 이 사투리가 재밌지도 않고 자연스럽지도 않다. 오히려 살인, 멸문같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 무거워야 할 작품 분위기가 지나치게 가벼워진다. 코믹한 분위기를 원했던 것 같은데 전혀 웃기지 않고 마치 원작을 조롱하는 듯 해서 불쾌하기까지 했다.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다.

강호를 돌아다니는 듯한 기분. 진행은 영.

전투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방식은 흔한 모바일 MMORPG와 비슷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에게는 4~5가지 액티브 스킬이 존재하고, 회피기가 있어서 간간히 적의 공격을 피해가며 전투를 진행하면 된다. 여타 MMORPG처럼 오픈월드처럼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퀘스트 문구를 누르면 자동으로 그 지역으로 넘어가고, 자동으로 대화를 걸기 때문에 자유도가 있는 편은 아니다. 그냥 선형적인 스토리를 따라가는 수준. 별 생각없이 스토리를 진행하고 있다 보면 내가 MMORPG를 하는 건지, 아니면 비주얼 노벨 게임을 진행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미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MMORPG와 비슷한, 그저 그런 양산형 게임인 것은 아니다. 동방불패만의 특색있는 시스템은 분명 존재한다. 영종이라는 세력에서의 계급을 나타내는 영위를 업그레이드하면 능력치가 상승하고, 문파의 일을 해결하면서 경험치를 쌓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독특했던 건 강호에 존재하는 많은 협객? 인물들과의 관계가 능력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알게 되는 인연들과의 호감도가 존재하고 이 호감도를 일정 이상 올리면 버프가 발생하는 식이다. 원작의 재림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이들과의 관계 역시 어느 정도 원작의 흐름을 따라가는 만큼 소설을 아는 이라면 좀 더 몰입하여 즐길 수 있다.

아름다운 색감에 기가막힌 시네마틱. 하지만 시네마틱에 속지 말자

필자는 처음 이 게임을 켰을 때 나오는 시네마틱 영상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껏 많은 무협 게임들이 등장했지만, 무협 세계관 특유의 빠르고 긴장감 넘치는 전투를 제대로 구현해 낸 게임이 거의 없다. 그나마 블레이드앤 소울 정도. 그런데 시네마틱 영상에서 등장하는 영호충의 전투씬은 필자가 생각했던 무협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물론 시네마틱의 전투씬은 게임에 구현되지 않는다. 게임 내 연출은 일반적인 모바일 MMORPG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원작의 경공과 무공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 부분의 연출이 여타 다른 무협 게임들을 압도할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다. 그래픽 역시 시선을 잡아끌 정도로 독보적이진 않지만 카툰 렌더링 기법을 이용해서 최대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표현해 냈다.

필자가 칭찬하고 싶은 건 색감이다. 색감이 굉장히 선명하고, 그 표현도 아름다운 편이다. 옷의 색감, 배경의 색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서 보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여성 캐릭터에게서 이런 부분이 잘 드러난다. 선정적이거나 야하다는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아름다워서 자꾸만 보게 된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너무 많은 콘텐츠

동방불패 모바일은 중국에서 앞서 출시되었던 신소오강호라는 게임을 국내에 출시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게임 내에 준비된 콘텐츠가 굉장히 많고 다양했다. 와우의 인던처럼 사람들을 모아 던전을 갈 수도 있고, 스토리 진행 중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성격도 규정된다. 많은 업데이트를 거치며 게임이 형성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이 다양한 콘텐츠는 금방 질리지 않고 게임을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모든 콘텐츠가 소오강호를 알고, 동방불패라는 콘텐츠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오강호의 스토리를 모르면, 그리고 동방불패가 누구인지 모르면 몰입감이 순식간에 떨어진다는 말이다. 거기다 너무 많은 콘텐츠가 있고, 이 콘텐츠의 이름이 대부분 유사한 데다가 UI도 직관적이지 않아서 복잡하다는 느낌이다. 차라리 일단 스토리만 쭉 진행하게 해 주고, 나머지 콘텐츠를 차근차근 해금해줬으면 어땟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원작을 모르면 재미가 반감되어서 그렇지 원작은 재현했다. 아재들이 좋아할 듯

조작감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고, 그래픽과 연출도 호평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혹평받을 정도도 아니다. 문제는 소오강호와 동방불패라는 작품을 워낙 싱크로율 높게 구현해놔서 원작을 모르는 이들은 몰입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반대로 원작을 사랑하고 재미있게 즐겼던 이라면 이 게임도 몰입감 있게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소오강호, 동방불패를 알 정도면 30대는 넘은 아재들일 거라는 사실. 명작까지는 아니고, 원작을 기억하는 이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평작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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