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마인(Undermine), 로그라이크의 숙명… 놓칠 수 없는 중독성

  • 입력 2020.08.11 12:01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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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마인(Undermine)은 놀라울 정도로 도전적인 게임이다. 수많은 역사가 쌓여 있는 로그라이크에 액션 어드벤처와 RPG 장르를 혼합하면서 꽤 중독성 있는 전개를 이끌어냈다. 랜덤식으로 변하는 던전을 보고 있으면 로그라이크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 같지만, 워낙 경우의 수가 다양해서 개발진들이 간사하게 느껴질 정도다.

던전 안으로 한 명씩 뛰어 내려가는 광부들의 이 무미건조한 오프닝에서부터 잔꾀를 부리고 있다는 점을 눈치챘어야 한다. 게이머는 끔찍한 지진에 시달리고 있는 금광의 진원지를 알아냄과 동시에 실종된 대장장이를 찾아와야 한다. 대마법사 알카노스의 단순한 요청으로 시작되면서 의욕적으로 시작해 보지만, 게이머는 그리 멀지 않아 사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허브로 돌아와 각 NPC의 기능들을 파악하고 나면, 이 게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광부가 사망하면 곧 다른 광부가 대마법사의 요청을 받아서 전진하는 방식인데 동굴 안에서 얻었던 아이템들은 전부 사라지면서 로그라이크의 철학을 그대로 계승했다. 대신에 금을 캐거나 몬스터를 처리하는데 쓰이는 곡괭이와 방어구 등은 영구적으로 업그레이드해서 쓸 수 있다. 모험 중에 얻었던 금들도 사망함과 동시에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에 광부들이 사용하는 자루까지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물론 사망해도 금이 사라지지 않는 대박 아이템이 있기는 하지만, 광부들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고 싶다면 업그레이드는 필수 요소일 수밖에 없다.

첫 난관은 아마도 두 번째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거대 지네일 것이다. 첫 번째 보스였던 바위 거인과는 달리 공격 패턴이 다양해서 여러 번 사망하게 될 텐데 다시 첫 번째 스테이지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난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반복적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레벨 디자인과 그 안에 도사리는 몬스터들, 그리고 재치 있게 설정된 함정들이 무작위로 생성되기 때문에 지루하기는커녕 오히려 분주히 움직여야 할 것이다. 금을 캘 때는 슬라임 몇 마리가 튀어나와 훔쳐 가기 때문에 한가롭게 지켜볼 여유도 없다.

이 게임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바로 무작위로 생성되는 레벨 디자인이다. 보통 아이템이 든 상자들은 게이머가 먹기 좋게 한복판에 딱 하고 자리하고 있겠지만, 이 게임은 가시 돋친 바닥이 상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거나, 철조망 형태로 길게 늘어서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저 코웃음만 쳐주면 다행이겠지만, 상자 안에서 느닷없이 함정이라면서 폭탄들이 쏟아질 때면 제법 빠른 시간 안에 무력감이 찾아올 수도 있다.

이 게임의 장르적 재미는 비교적 늦게 발동한다. 결국 곡괭이와 방어구를 업그레이드하면서 거대 지네를 처치하게 되지만, 이후에는 눈이 번뜩 뜨이는 아이템들이 게이머를 기다리고 있다. ‘축복저주라는 콘셉트를 차용해 아이템 조합을 세밀하게 구성한 것도 눈에 띈다. 처음 접하는 게이머들에게는 먼 이야기겠지만, 저주를 잡아먹는 퍼밀리어가 등장하는데 이쯤 되면 사실상 고인물이 될 정도의 경지기 때문에 우선은 논외로 하는 것이 좋다.

개발진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워크래프트> 시리즈에 등장하는 농부에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금을 캐고 나오는 농부들에서 적자생존의 법칙을 발견했고, 자연스럽게 로그라이크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게임에 영향을 준 작품들은 <Rogue>에서부터 <아이작의 번제(The Blinding of Issac)>까지 역사적으로도 매우 길지만, 가깝게는 <디아블로> 시리즈까지 예를 들 수 있다. 주인공이 사망하고 게임을 다시 시작할 때마다 레벨 디자인과 아이템 등이 무작위로 생성되는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언더마인은 더 나아가 매우 발칙한 시도를 하고 있다. 잠깐 언급했지만, 이 게임에서 발휘하고 있는 경우의 수는 효과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물론 랜덤이라는 함정 때문에 별 재미도 보지 못하고 허브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템의 조합이 꽤 세련되게 마련된다. 거대 지네를 처치하고, 어느 정도 레벨이 오르게 되면 기본적으로 1시간 단위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그때부터는 이 동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약자의 차원이 아니라 고급 기사단원 이상의 힘을 가지게 된다. 마법사와 기사단원 사이에 은근슬쩍 광부를 무시하는 듯한 대사를 넣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로그라이크가 생소하다면 랜덤 요소만 기억하면 된다. 아이템 조합이 신박하게 이루어지면 운이 따라주는 것이고, 체력이 절반 이하로 내려가 있거나, 열쇠가 없어 아이템이 들어 있는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면 다음 광부에게 배턴을 넘겨주는 것이 좋겠다.

다행히도 이 게임은 운이 적절히 따라준다는 것이다. 여타 카드 게임처럼 절망적으로 진행되지는 않기 때문에 게이머들의 도전 욕구를 쉽게 불태워 준다. 개발진은 영리한 데이터 계산법으로 아이템의 적절한 세분화를 이루어냈다. 덕분에 이 게임은 계속해서 새로운 게임을 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로그라이크의 중요한 철학은 영구한 죽음(Perma-death)’에 있다. 이 게임은 자동 저장이 되지만, 광부가 사망을 하면 그동안 얻었던 아이템과 금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던전 밑으로 계속해서 내려갈 뿐, 다시 위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동 시스템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나 게이머의 희망사항, 오로지 전진만 있을 뿐이다. 한번 결정하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에 광부가 사망할 때까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영구한 죽음은 해외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로그라이크의 정체성으로 떠오른다. ‘노다이원코인으로 끝내면서 가슴이 웅장해질 일은 절대로 없기 때문에 사실상 첫 번째 게임부터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로그라이크 마니아들은 고인물 측에 드는 것보다 무작위 요소로 인한 플레이를 더 선호하는 것이다.

다만 이 게임은 여느 로그라이크와는 달리 액션 어드벤처 장르를 넣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여기서 2D 기반의 플랫폼 게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요소가 생긴다. 이 게임은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잡몹이나 보스와의 전투는 반복적이다. 게이머가 운만 좋다면 곡괭이를 세 갈래로 던질 수 있게 되고, 심지어 빠른 스피드를 보유할 수 있게 되지만, 돌고 도는 전투는 다소 식상하고 지루할 수 있다. 게다가 체력 관리에 있어 매우 냉정하고 소홀한 편이기 때문에 한번 죽음의 위기를 넘어갔다고 해서 미래가 밝은 것이 아니다. 결국 게이머는 사망한다는 전제로 플레이하게 되는데 그저 로그라이크의 매력만 믿고 진행하기에는 무리한 면도 적지 않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저주콘셉트는 매우 신선한 시도지만, 후반부에나 접근할 수 있는 요소다. 유익한 아이템을 얻는 대신에 저주에 걸리게 되고, 아이템을 통해 저주를 제거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이 역시 랜덤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도박을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열쇠 등 중요한 아이템을 구입할 때마다 체력이 고갈되는 저주라도 걸리게 되면 사실상 살아날 방법이 없다.

외적인 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개발진도 밝혔지만, <워크래프트> 3편에도 등장했던 왕국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광부는 이 심연 끝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끝까지 밝혀내야 한다. 비록 대사는 적지만, 기사단원들과 마법사 사이에 묘한 갈등 구조를 암시하고 있고, 광부는 그저 금광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일꾼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 게이머가 심기가 불편하다면 이들을 그 자리에서 처단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체력 관리가 매우 힘들다는 점과 뻔한 전투 메커니즘은 이 게임의 피할 수 없는 단점이다. 개발진은 기존 로그라이크의 공식을 따르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길 바라고 있다.

그럼에도 언더마인은 인디 게임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중독성을 자랑한다. 무작위로 생성되는 레벨 디자인을 여러 번 겪고 나면 이 게임의 첫 번째 매력에 매료될 것이고, 체력이 보강되면서 1시간 단위로 플레이하게 되면 자신조차 믿기지 않을 정도의 도전 정신을 발휘하게 된다. 계속해서 죽는 것은 변함 없지만, 도감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몬스터들, 그리고 게이머의 의지를 불태울 만한 아이템들과 퍼밀리어들이 그림자 뒤에 숨어 있는 것을 목도한다면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덕분에 이 게임은 플레이타임을 짐작하기 힘들다. 로그라이크 마니아라면 던전 구석구석을 모두 뒤져서라도 모든 아이템을 찾고야 말 것이다.

마지막 하나를 찾아내는 그 광부의 이름이 궁금하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그 이름을 영구히 기억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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