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언(Carrion), 멈출 수 없는 리버스 호러와 마주하라
캐리언(Carrion), 멈출 수 없는 리버스 호러와 마주하라
  • 진병훈
  • 승인 2020.07.30 1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arrion(캐리언)을 정의하자면 1980년대식의 클래식 호러와 메트로베니아를 혼합, 여기에 리버스 호러물이라는 신장르를 채용했다고 볼 수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끈끈하고 위협적인 무정형 생물이 되어서 에이리언과 같은 빌런이 되는 것이다. 게이머는 혐오스러운 촉수를 무기로 인간들을 사냥하고, 고어 축제를 즐기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이 게임을 평가하는 것은 큰 예단에 불과하다.

평소 고어물에 역겨움을 느꼈다면 안심해도 된다. 게이머는 여전히 존 카펜터의 괴물(The Thing)’을 조종하는 것 같지만, 그 뛰어난 역학 작용 덕분에 패드를 쉽게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겉으로 보면 영락없는 괴물이지만 편의상 그것으로 표현하겠다.)은 키패드를 따라 촉수를 먼저 발사하면서 움직이는데 여기에는 똑똑한 물리 구현이 이루어지고 있다. 서로 연결된 2D 구체들이 짧은 시간 안에 정확한 계산을 해내고 있다. ‘그것답게 벽에 찰싹 달라붙거나, 미끄러지듯 바닥을 훑어 지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붕 떠오르기도 한다. 환풍구 안을 드나들 때는 기분이 더럽지만, 무력하기만 한 인간들을 겁주는 데는 최고의 메커니즘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끔찍한 존재다. 인간들을 사냥하고 포식하면서 스스로 몸집을 키울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일부를 떼어 내서 인간의 손에 닿을 수 없는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다. 믿기기 힘들고, 상상하기도 싫겠지만, ‘그것은 게임이 진행될수록 상상 이상으로 성장한다. 시뻘건 생물체 사이로 하얀 치아를 드러내는 모습이 화면을 채워나갈 때면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오지만, 결론적으로 이 게임은 섬뜩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매혹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포비아 게임 스튜디오는 <메트로이드(Metroid)> 시리즈의 레벨 디자인과 함께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더 나아가 <다크소울> 시리즈에까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이 3년 동안 개발하면서 얻어간 것은 복잡한 물리 작용과 더불어 뛰어난 맵 시스템에 있다. 아마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팝업창으로도 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이다. 포비아 게임 스튜디오는 <메트로이드>의 악마적인 맵 난이도에서 벗어나 각 스테이지를 촘촘히 연결시켜 놓았다. 지도는 보이지 않지만, 게이머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게이머의 눈에는 퍼즐로 보이겠지만, 각 스테이지는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상상한 것처럼 상호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성장하면 할수록 끔찍하고 기괴하지만, 터무니없이 장대하고 음산하다.

이 독특한 세계관 뒤에는 포비아 게임 스튜디오가 세워 놓은 철저한 규칙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과 관련된 거대한 음모가 텍스트로 복잡하게 나열되는 것을 금지했고, 심지어 오디오 자료도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 짐작 가능한 힌트가 스쳐 지나가더라도 미스터리는 찜찜하게 남아 있으며 그 공란을 채우는 일은 오롯이 게이머에게 있다.

<메트로이드> 시리즈가 던전 탐색이라는 중요 장르를 화두로 던졌다면, 정식으로 문법의 기틀을 다지게 한 건 <캐슬배니아> 시리즈일 것이다. 그렇게 어원이 탄생된 메트로베니아는 액션 게임의 하위 장르로 불리게 됐고, 인디 게임계에서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2D 기반의 사이드뷰 플랫폼 게임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다 아이디어만 충만하다면 레벨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탐색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메트로베니아는 액션 게임뿐만 아니라 RPG, 어드벤처 등 무궁무진하게 확장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퀘이크><바이오하자드> 시리즈도 사실상 메트로베니아식 레벨 디자인을 차용했다고 볼 수 있다.

포비아 게임 스튜디오가 공개적으로 <다크소울> 시리즈와 <블러드본>을 언급한 이유가 있었다. 비록 2D 기반의 플랫폼 게임은 아니지만, 레벨 디자인 그대로 3D로 변경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포비아 게임 스튜디오는 리버스 호러물 장르를 개척하기 위해 더 수많은 데이터를 계산했다. 에너미 오브젝트가 재생성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은 꽤 복잡한 셈법이 들어갔을 것이다. 피바람과 태풍이 들이닥친 듯한 이 끔찍한 현장은 그것이 촉수를 통해 짓밟고 지나간 곳이다. 그곳에는 갈기갈기 찢겨진 신체 일부가 남겨져 있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포비아 게임 스튜디오는 그 공포감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오브젝트를 그대로 남겨두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의 입속으로 들어갔던 인간들, 그러니까 비명을 지르면서 사다리를 통해 도망가거나, 권총을 들고 허공에 난사하던 인간들이 재생성되는 일이야말로 이 게임의 철학과도 맞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게 더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현상이 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메트로베니아에 등장하는 에너미 오브젝트들은 무한대로 재생성되고 있다.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게이머가 레벨을 올리거나 새로운 장비를 구할 때, 그 밖에 스테이지들이 잠금 해제될 때마다 데이터를 저장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포비아 게임 스튜디오의 철학대로라면 데이터 저장이 쉽지 않게 된다. 덕분에 게이머들은 한 번 지나간 장소를 여러 번 찾을 필요가 없어지게 됐고, 스테이지는 단계별로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눈치챘겠지만, ‘그것이 방사능을 집어삼키며 성장하는 데에는 그만한 동기가 있다. 더러운 지하 공간을 빠져나오면 이곳이 대규모의 연구실 정도로 인식될 수 있다. 처음에는 제거할 수 있는 벽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인간들을 겁주기만 하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단계별로 진행되는 생존 본능 앞에서 몰입감은 꾸준히 늘어난다. ‘그것이 성장하면서 그것답게 기괴한 능력을 발휘하면, 그리 넓지 않은 스테이지를 미치듯이 활보할 수 있다.

앞서 잠깐 설명한 것처럼 이 게임은 지도가 없다. 포비아 게임 스튜디오는 팝업창 자체를 아예 무시하고 개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오로지 그것의 시선으로 리버스 호러물의 장르를 꾸준히 밀고 나가길 바란 것이다.

다만 플레이타임이 생각보다 짧다는 점. 리버스 호러물의 철학과는 달리 결론적으로 그리 다크하지 않았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플레이타임이 짧은 것이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포비아 게임 스튜디오가 이미 밝힌 것처럼 그것이 지나간 곳은 언제나 고어로 가득해야 한다. 보통 메트로베니아의 맵 시스템은 난이도가 극악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게임은 그런 전개를 전면 부정하고 있다.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지만 끈적끈적한 그것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을 갈망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이 게임은 플레이를 길게 할 필요성이 떨어진다. 개인적으로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하루 만에 끝내길 희망한다. 아무리 이 게임의 물리 작용이 뛰어나고, 패드를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감이 훌륭하다고 하지만, 게이머가 조종하는 건 영락없는 괴물이다. 후반부에 접어들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히드라처럼 머리가 계속해서 불어나고, 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그저 무력하기만 한 인간이 그것사이에 끼어서 양다리를 바들바들하는 모습에서 혀를 내두르지 않는다면 정상이 아닐 것이다. 게이머가 이미 빠져나올 수 없는 고어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다면 의도적으로 신체 일부를 끄집어내서 스테이지 전부를 피칠갑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런 게이머는 극소수라고 생각하고, 이 게임의 끄트머리에는 무엇이 존재하는지 쉼 없이 달리고 싶어하는 게이머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 게임의 컨트롤은 여전히 유연하고 놀랍지만, 오래 매몰되면 매몰될수록 찜찜한 기분에 빠져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범람하는 게임 시장에서 이러한 차별적인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포비아 게임 스튜디오는 2D 기반의 플랫폼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그 뛰어난 물리 작용, 복잡한 데이터 셈법 탓에 무려 31개월이라는 제작 기간이 걸렸다. 그동안 100여 명의 기자들과 인터뷰를 가졌으며, 트위터를 통해 피드백을 진행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이런 비정질 성격의 괴물은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표준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올드 게이머들은 아마도 메가 드라이브로 출시했던 ‘The Ooze’를 연상하겠지만, ‘그것은 소름 끼칠 정도로 더 똑똑한 괴생명체다. 촉수를 이용한 전투는 인간들의 저항과 맞닿아 더 절박해진다.

하지만 역시나 이 게임의 테마는 고어 축제에 있다.

개발진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개발하면서 희망했다. 좀 더 아삭아삭 하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