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öki, 스칸디나비아와 북유럽 신화를 위한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 입력 2020.07.28 10:57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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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본머스대학교 학우였던 존과 알렉스는 14년 동안 몸담았던 게릴라 케임브리지가 폐쇄하자 폴리곤 트리하우스라는 인디 게임 제작사를 설립한다. 두 사람은 플레이스테이션3 론칭 작품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킬존 2>의 아트 디렉터를 맡았다. ‘게릴라 케임브리지SIE(소니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 산하에 있는 게릴라 게임즈의 보조 스튜디오로, SIE 유럽 스튜디오 재편에 따른 폐쇄로 알려졌다.

하지만 존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폴리곤 트리하우스가 탄생되는 계기가 되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게릴라 게임즈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과 함께 평소에도 북유럽 신화에 흥미를 가졌으며, 스칸디나비아에서 전해지는 민요에 영감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른바 숲의 전설속에 등장하는 <요트나르(거인족 요툰의 복수형)와 아기>였다. ‘폴리곤 트리하우스팀원들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탄생된 이 이야기는 스칸디나비아 민요 속에 존재하는 여러 괴물들이 등장하며, 오슬로대학교 연구원의 조언으로 필터링되었다. 분명하진 않지만, 이 게임의 제목인 Röki(이하 로키’) 외에도 요툰뵈른, 요툰호르트, 요툰울푸르, 요툰라븐 등도 스칸디나비아 언어학과가 용인하는 선에서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2017, 이제는 다양한 장르 속에 묻혔다고 평가받는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을 당당히 발표했고, 자사 블로그를 통해 제작 상황을 상세히 보고했다. 납치된 동생 라스를 구출하기 위한 토베 캐릭터의 모델링과 배경 텍스처 등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이어갔으며, ‘논 리니어(Non-Linear) 뮤직새도우 볼륨(Shadow Volumes)’이라는 신개념에 대해서도 장황하게 설명했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은 본래 마우스 인터페이스와 명령어만을 활용한 장르였다. 미리 스크립트가 짜여진 오브젝트를 마우스로 클릭하면, 정해진 이벤트가 발생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컴퓨터 그래픽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장르가 혼재되다 보니 사실상 마우스를 활용한 전개 방식은 이제 흔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존과 알렉스는 2018, 어드벤처 게임 장르에 대한 미팅부터 시작해서 2019, 처음으로 로키를 발표할 때까지 유독 포인트 앤 클릭을 강조해 왔다. 게임은 정말 순진할 정도로 마우스 인터페이스에 집중하고 있다. 대사도 지나치게 적고, 캐릭터 목소리는 대부분 감탄사 정도로 처리했다. 배경 텍스처에는 밋밋할 정도의 색감이 들어갔는데 그 덕분인지 우리의 주인공 토베를 비치는 조명이 꽤나 직관적이다. 존과 알렉스가 블로그에서도 설명한 새도우 볼륨은 기존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조명 개념과 다르다. 개발자들은 보통 가시광을 퍼뜨리는 광원 효과를 선호하지만, 존과 알렉스는 미리 짜놓은 트리거, 즉 스크립트에 색조 이벤트를 넣었다. 예를 들어서 토베가 초록색 지면을 밟으면 캐릭터가 전체적으로 초록색으로 채색이 되는 원리인데, 설원 배경에 제법 어울리는 연출을 보여준다. 색감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그림자가 드리우거나 원근감을 표현하는데도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다.

우리가 북유럽 신화를 언급할 때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정서에 호기심을 가질 수 있지만, 정작 그들은 스칸디나비안이라는 말을 입밖에도 꺼내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스칸디나비아는 노르웨이와 스웨덴, 그리고 반도에 속하지 않지만, 덴마크까지 포함하고 있다. 유로비전과 아이스하키를 같이 공유하는 핀란드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말도 있으나 보통 북유럽 국가로 통칭한다. 하지만 1952, 설치됐던 북유럽 협의회에서는 핀란드뿐만 아니라 그린란드, 페로 제도, 올란드 제도까지 포함한다. 스칸디나비아가 혼용되어 사용하는 이유는 이처럼 다양한데 그들은 스칸디나비아인처럼 한 나라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 게임에서는 노르웨이를 포함해 스웨덴이 주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주인공 토브와 그의 동생 라스가 접한 오두막이 영락없이 휘테(HYTTE)로 보였기 때문이다. 오두막을 노르웨이 언어로 휘테로 부르는데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설원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오두막이 꽤나 고요하고 차갑게 느껴진다. 머릿속에서 아직도 빙빙 돌고 있는 사운드트랙도 하얀 설원과 어둠이 겹치는 부분에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게임은 잔혹 동화를 콘셉트로 잡았다. 거인족 사이에서 인간과 관계를 맺은 요툰라븐이 아이를 낳자 영역에서 쫓겨났고, 그 분노와 증오가 토베의 동생 라스에게 전달됐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후 로카로 불린 요툰라븐이 자신의 아이 로키를 위해 라스를 희생시킨다는 것이다. 토베는 요툰라븐을 쫓아냈던 요툰뵈른, 요툰호르트, 요툰울푸르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기나긴 모험을 떠나야 한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 게임은 대사가 지극히 적은 덕분에 포인트 앤 클릭과 더불어 인터렉티브에도 집중할 수 있다. 소소히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활용해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데 간단히 키 하나로 수집 시스템을 유동적으로 활용한다. 인터페이스 역시 직관적이라서 인벤토리 창을 소홀히 다룰 일도 별로 없다.

다만 수집 시스템 하나만 믿고 진행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이 게임은 키 하나로 숨겨진 아이템을 찾아낼 수 있지만,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손톱 만한 크기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두세 번 정도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된다.

또 한 가지는 북유럽 신화가 낯선 게이머들에게는 플레이가 다소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요정이 우리에게는 그저 친근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라면, 북유럽 사람들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절반이 넘게 요정의 존재를 믿는다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요정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로 경로를 변경할 정도다. 이는 곧 향후 역사와 경제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한다는 의미다. 게임상에서는 단순하게 보이겠지만, 톱니바퀴 하나 움직이는 것도 소중한 노동의 가치면서 요정의 역할이기도 하다. 북유럽 국가 사람들에게만 통용되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게임이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스웨덴은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아니라 요정인 톰테르가 찾아온다.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찾아주는 니세르 역시 크리스마스에 주로 활동하는 집 요정이다. 이들이 빨간색이나 회색 털모자를 쓰고, 흰 수염을 기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죽을 만드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덴마크에서는 니세르를 위해 죽 한 그릇을 준비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죽이 없다면 고양이를 놀라게 하거나 양말 한 짝을 훔쳐 가는 등 말썽을 일으킬 수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이런 전통을 이해했다면 게임 전개가 아주 수월했을 것이다.

공허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또 있다. 토베는 갑자기 집이 두 동강이 나면서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게 됐고, 설상가상으로 동생인 라스마저 잃게 된다. 사라진 동생을 찾기 위한 토베의 절치부심은 텍스트만으로도 전달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로카와 로키, 그리고 토베의 동생 라스와의 상관관계는 스칸디나비아 민요 속에 매몰된 것과 다름없다. 로카가 자신을 쫓아낸 수호신들을 원망하고, 로키를 구원하려는 의지의 표명이 머릿속에 남지 않고 빙빙 돌기만 하는 것이다. 존과 알렉스는 스칸디나비아 민요를 고증 차원으로 접근하고 용어 사용에만 신중했던 것 같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은 보통 NPC와의 인터렉티브가 주를 이룬다. NPC에게 아이템을 가져다주면 그에 보답하는 아이템이 재생산되는 형식이다. 때에 따라서 액션 파트가 추가되기도 하는데 수호신을 만나는 과정에서 꽤 답답한 구석이 있었다. 처음으로 큰 위기를 맞은 토베가 실내 클라이밍을 하는 상황이 처해지는데 장르 특성상 자유로운 조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반복적인 플레이가 지속됐던 것이다. 한 번의 판단 미스로 게임이 매우 산만해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우리에게 다소 낯선 스칸디나비아 민요에 대해 언급했지만, 모성애와 부성애를 자극하는 묘한 연출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 성인들도 가끔은 소년, 소년이 되어서 이불 뒤집어쓰고 엄마, 아빠를 외치고 싶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까지도 귓속에 남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사운드트랙도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원숭이 섬의 비밀><가브리엘 나이트> 시리즈를 잇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테이지는 비교적 좁고, 인터렉티브 구간은 촘촘히 배치되어 있다. 공허한 플레이가 단점이 될 수 있지만, 이 게임의 성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면 술술 풀려나가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트롤이나 각종 괴물들, 수호신(사실은 거인족)에 대한 선입견만 가볍게 제거한다면 나름대로 신선한 게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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