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앨리스, 잔혹 동화 소재의 모바일 배틀 판타지

  • 입력 2020.07.06 17:18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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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에닉스가 개발한 모바일 배틀 판타지 RPG 시노앨리스가 글로벌판으로 71일 국내 출시됐다. 이미 2017년 일본에서 발매됐던 시노앨리스는 2019, 국내에서 사전 예약까지 예고했었으나 현지화 문제로 인해 일본의 게임 개발사 포케라보와 손을 잡고 다시 1년 만에 국내 팬들 앞에 서게 됐다.

이 게임은 <니어 오토마타>(2017년 발매)로 국내에서도 눈도장을 찍은 요코오 타로가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됐다. 인류를 닮고 싶은 안드로이드들과 기계 생명체들 간의 치열한 전투를 그렸던 이 게임은 그 독특한 세계관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 때문이었는지 당시에 언어 장벽을 타파해서라도 시노앨리스를 플레이하는 국내 팬들이 적지 않았다. SNS에서는 꾸준히 이 게임에 대한 토론의 장이 열리고 있었다.

사전 예약만 무려 200만 명. 큰 기대감을 안고 정식 출시된 시노앨리스는 플레이의 재화라고 할 수 있는 마정석을 사전 예약한 모든 유저에게 지급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캐릭터들은 일본의 데포르메형으로 이른바 큰 눈 그림체라고 불리는 모에체가 일부 섞여 있다. 보통 이런 캐릭터들은 온라인 게임의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흡사 실사 비율의 원화로 등장하는데 일본 게임인 만큼 원초적으로 표현했다. 끌고 가기도 힘들 정도로 보이는 거대한 대검을 들고 있거나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번잡해 보이는 장신구가 소용돌이처럼 몸을 휘감고 있다. 판타지 장르답게 전형적인 왜곡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왜곡이라고 자신 있게 내세운 이유는 캐릭터들이 전부 우리에게 친숙한 동화 속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그 앨리스’, ‘신데렐라’, ‘백설공주’, 헨젤과 함께 죽을 고비를 넘겼던 그레텔’, 거짓말의 상징 피노키오’, 말레피센트의 저주로 깊은 잠에 빠졌던 오로라 공주’, ‘빨간 모자’, ‘가구야 공주까지.

이 게임은 잔혹 동화를 소재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그들만의 삐뚤어진 자화상을 담고 있다. 특히 다카하타 이사오의 서정적인 작품이었던 가구야 공주의 독백을 들어보면 좀 충격적인데 이 캐릭터들을 통틀어서 병적인 사디스트 성향이 의심될 지경이다.

요코오 타오가 왜 이런 발상을 내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속박과 폭력, 피학이 수면 위에 드러나게 되면 게임의 목적 자체에도 의구심을 품게 된다. 캐릭터들 전부 공통적으로 작가를 만나야 한다며 열을 올리면서도 전리품을 챙길 때만큼은 쾌락을 아끼려 하지 않는다.

다케토리 이야기로 불리는 가구야 공주는 일본이 자랑하는 설화이자 기록 문학이다. 대나무에서 작은 아이가 나온다는 설정부터 일본의 옛 정서를 쏙 빼닮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섯 명의 귀공자부터 황제의 프러포즈까지 반대하고 홀연히 인간 세계를 떠나 버린 가구야 공주가 일본의 여성상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빠지지 않는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다카하타 이사오가 그려낸 작품은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빠질 수 없는 명작이 되었다.

요코오 타오는 아마도 동화 속 주인공들이 일종의 선입견에 빠졌다고 보고, 그들에게 도끼와 대검을 쥐여 준 게 아닌가 싶다. 왜 남자들의 구애를 피해서 도망쳐야 하며,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상처를 받아야 하는가? 그럴 바에 차라리 흉측한 몬스터들을 하나씩 처리하는 용맹한 여전사가 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남자들을 향한 원망과 슬픔보다는 다소 퇴폐적이지만 유희적인 자기애를 발휘하는 것이 현대적인 시각에 더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가구야 공주에 집중된 마조히스트적 행보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게임 속 가구야 공주는 인간 세계를 떠나는 대신 자신을 혼내줄 강력한 적을 찾아 기나긴 여정을 떠난다. 자신을 혼내준다는 설명에서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공식 소개 영상에서부터 이 캐릭터의 성향이 어떤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자신보다 강한 적을 만나는 목적은 단순한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가학과 자학이 혼재되어 있다. 마르키 드 사드의 무시무시한 소설 소돔 120에서도 묘사했듯이 이들의 목적은 그저 성적 쾌락에 있다. 불을 뿜는 드라곤 앞에서 희열에 가득찬 가구야 공주를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토 시즈카의 사실적인 목소리 연기가 게임에 집중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게임은 모바일 RPG의 전형적인 형식으로 진행된다. 다만 전투보다는 수집과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무기와 갑옷도 추천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초반에 손쉬운 전투가 가능하다. 물론 4막으로 접어들면서 더 강력한 적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게임이 안내하는 대로 무기와 갑옷을 강화하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세부적인 설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추천 무기와 갑옷을 장착하고, 직업 성장까지 거치는데, 그리 까다로운 절차는 없었다. 강화에 필요한 소재들은 전부 손쉬운 전투에서 얻을 수 있어서 단지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게다가 이 게임은 스토리에 집중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 전투가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짤막한 독백 외에는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앞서 노골적으로 설명했던 가구야 공주는 자극적인 대사와 성우의 목소리 연기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집중할 수 있었지만, 그 밖에 캐릭터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스토리를 조금씩 흘리는 수준이었다. 가구야 공주를 자꾸 언급하는 이유도 상대적으로 스펙트럼이 넓어 보였기 때문이다.

대신 초보자 길라잡이를 통해서 이 게임의 편의성을 언급하고 싶다. 좌측 상단에 표시된 아이콘을 터치하면 미션이 갱신되는데 수집과 동시에 전투에 적응할 수 있는 기본 베이스를 깔아준다. 예를 들어 무기를 강화하는 방법을 먼저 익히게 해주고, 이 게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길드와 콜로세움 가입 방법까지 알려준다. ‘초보자 길라잡이를 통해 게임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강력한 동기 부여도 제공한다. 게임이 안내하는 대로 계속 따라가다 보면 전투에 있어 필요한 강화 재료 등을 수집하게 되고, 성장의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다만 여타 다른 모바일 RPG 게임처럼 수집이 남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투가 다소 지루하다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자동 전투로 해놓아도 승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짤막한 독백들이 스토리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닌 것 같으니 화면에 집중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각 캐릭터들의 시니컬한 농담과 묘사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빨간 모자는 프랑스의 동화 작가 샤를 페로가 1697년에 발표한 <옛날 이야기>에 등장한 캐릭터로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그동안 이 원작 동화를 비틀었던 만화와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됐는데 대부분은 지나치게 순진한 빨간 모자 소녀를 현대화해서 늑대의 술책에 대응하게 만들고, 다채로운 단역 캐릭터들이 빨간 모자 소녀를 보조하게 했다.

게임 속 빨간 모자 소녀는 폭력에 집착하는 독백을 끊임없이 부연한다. 단순히 동화 속 교훈에 매몰되어 있는 것을 벗어나서, 늑대의 잔악무도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처럼, 피에 굶주린 듯한 아슬아슬한 행보를 이어 간다.

계모를 향한 백설공주의 잔혹한 복수전을 보고 있노라면 굳이 잔혹 동화를 운운할 필요도 없다. ‘백설공주는 사실상 아이들의 시선에 맞추어 점점 순화되었기 때문에 그 끔찍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계모가 아닌 친모가 백설공주를 질투했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계모가 사냥꾼을 시켜 숲으로 데려간 다음에 백설공주의 허파와 간을 가지고 오라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사냥꾼이 백설공주의 미모에 반해서, 아니면 단순한 동정심이 들어서 그녀를 살려줬을까? 그는 지나가는 야수에 의해 백설공주가 잡아먹힐 것으로 믿고, 엉뚱하게도 날짐승의 허파와 간을 계모에게 가져다준다. 그 허파와 간으로 배를 채운 계모는 태연히 거울 앞에 서서 누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냐며 따지고 든다. 결국 독사과를 먹고 사망한 백설공주는 이웃 나라 왕자의 하인들이 관을 짊어지고 갈 때 목에 걸린 사과 조각이 빠져나오면서 살아난다. 그리고 왕비가 된 백설공주는 계모를 초대해 숯불 위에 올려놓은 무쇠로 된 신을 신게 한 뒤 죽을 때까지 춤을 추게 한다. 이런 내용이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집>에 버젓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레텔의 독백을 듣고 있노라면 요코오 타오의 의도가 명백하다. 빵과 케이크로 만든 집에서 죽음의 위기를 넘겼던 건 분명히 그레텔의 역할이었지만, 이전까지 그레텔을 보호한 건 헨젤이었다. 계모의 음모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한 것도 오빠 헨젤이었고, 식인 마녀에게 자신의 팔목 대신 뼛조각을 건네면서 생명을 부지한 것도 헨젤이었다.

게임 속 그레텔의 독백을 듣고 있노라면 오빠를 향한 삐뚤어진 애정과 집착을 절감하게 한다. 가구야 공주처럼 그 의도는 알겠지만, ‘잔혹 동화라기보다는 사이코드라마에 가까웠다.

다시 시스템 부분으로 돌아가 보면 수집은 쉬울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진행하면 성장에서 막힐 수 있다. 4막에 접어들 때가 되면 돌연 강력한 나이트메어가 등장하면서 공략이 어려워질 수 있다. 지금까지 안내에 따라 장비와 직업을 강화했다고 한다면 이때부터는 게이머들의 전술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갑자기 난이도가 들쑥날쑥해지는 것 같지만, 메인 무기와 갑옷, 서브 아이템들까지 총정리하게 되면 이때부터 서서히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친절하게도 적절한 시기가 되면 강화 소재를 나눠주는 이벤트 페이지가 열린다. 이 역시 초보자 길라잡이와도 연결되는데, 이쯤 되면 어느 정도 게임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터치하는 손길이 점점 빨라질 수 있다. 다소 반복적인 전투가 흠이라 하더라도 수집과 성장에 초점을 맞춘 만큼 일일 출석 이벤트도 있어서 모바일 게임만의 매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게다가 다소 늦어진 출시에도 불구하고 오타쿠들을 불러 세울 만큼 뛰어난 애니메이션 효과를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화 속 주인공들이 피비린내 나는 전투 상황 속에서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이 게임에서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다. 앞서 비중 있게 설명했던 가구야 공주를 포함한 일본 성우들의 뛰어난 목소리 연기도 이 게임의 강점이다. 비록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 사이를 오가는 아찔한 대사들이 갑톡튀처럼 불쑥불쑥 등장하면서 일부 대사들이 삭제 처리된 상황도 초래했지만, 1년을 기다린 보람은 충분하다. 게임에서 안내한 것처럼 볼륨을 올리거나 이어폰을 쓰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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