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들과 의사소통 하는 방법, PC '둠 이터널' 리뷰

  • 입력 2020.03.26 13:35
  • 기자명 더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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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생존자로 남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배틀로얄' 장르가 한때 유행처럼 번지면서 덩달아 FPS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여기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은 많은 게이머가 이제 FPS에 대한 진입장벽을 느끼지 않고, 좀 더 쉬운 접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물론 '입문'과 '접근'이 쉬워졌다는 뜻이지, 누구나 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FPS는 상위권의 영역에 올라갈수록 '피지컬'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퀘이커', '언리얼', '카운트 스트라이커', '레인보우 식스', '스페셜 포스', '서든어택' 등 잘 알려진 FPS를 떠올려 보자. 일반적인 피지컬을 가지고 있는 게이머들도 어느 정도 '즐겁게' 수준까지는 되는 게임이지만, 상위권으로 갈수록 말도 안 되는 괴물들의 플레이에 벽을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e스포츠 도핑', '에임 핵', '극단적인 게이밍 기어' 이런 부정적인 사건들이 가장 잦게 일어나는 분야가 FPS이기도 하다. 대부분 '피지컬'과 관련되어 생긴 문제점들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들이다.

하지만 초창기의 FPS를 생각해보면 이토록 극단적인 '피지컬'을 요구하지 않았다. 게이머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제대로 된 FPS의 시작과도 같은 '그 게임'은 나치와 악마들을 사냥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일단 쏴라!' 오로지 본능에 충실히 하는 쪽이었다.

 

게이머라면 이토록 FPS에 대한 밑밥을 깔고 시작하는 이유를 눈치챘을 것이다. 바로 'FPS 고전 명작'이자, 아직도 그 명성을 이어가는 게임 '둠' 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아마 최근 '둠'을 플레이한 적 있는 게이머라면 '이드 소프트'보다는 '베데스다' 쪽이 더 익숙할 것이다. 개발사의 이름이 어디건 크게 상관은 없다. 중요한 것은 2016년 새롭게 리부트 된 '둠'의 성공을 이어갈 신작 '둠 이터널'이 출시됐다는 점이다. 

 

세밀함보다는 화끈함, 피지컬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FPS의 맛을 간직한 게임이 바로 '둠'이다. 지난 리부트의 성공을 이번 '둠 이터널'에서도 이어갈 수 있을지, 과연 이번에는 의사소통 방식으로 악마들을 마주하게 될지 궁금하다. 지옥이 된 지구로 가보자.

 

없어도 상관없지만, 있으면 좋은

이번 '둠 이터널'은 기존의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간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이어받는 선택보다는 '배신' 혹은 '타락'이라는 아주 단순하지만 확실한 장치를 사용했다. 전작의 조력자였던 '새뮤얼'의 배신과 악마들의 지구침공으로 '둠 이터널'은 시작된다. 지구는 다시 위기에 처했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제 플레이어는 악마들과 의사소통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고 애초에 전혀 근본 없이 흘러가진 않는다. 게임을 초반만 진행해보면 어느 정도 '기본 틀' 같은 건 잡혀있다. 하급 잡쫄로 등장하는 악마들과는 크게 대화가 없지만, 보스급 혹은 고위 사제급의 악마들과는 어느 정도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게임에서 가장 많이 대화하는 건 VEGA라는 인공지능이다. 

 

사실 깊게 다룬다면, 관계를 정리해볼 만하겠지만 '존 카멕'이 초창기의 '둠'을 두고 했던 이야기.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는'에 가깝다. '둠'은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는 게임이 아니다. '둠'에서는 이야기보다 먼저 앞서 나가는 것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찢고 죽여라,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지구를 침공한 악마들과 의사소통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전투 샷건', '플라즈마 소총', '전기톱', '수류탄', '화염 방사기' 등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훌륭한 선택지들이 준비되었다.

무작정 쏘고, 썰어내는 것은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둠 이터널'에서는 더 세련된 방식의 의사소통이 존재한다. 바로 각 악마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 부분을 공략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악마는 약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물론 아무 곳이나 쏴도 괜찮지만, 약점을 공격하면 조금 더 빨리 해치울 수 있다. 악마의 약점은 필드에서 얻게 되는 '고서적'을 통해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보스전 역시 고전적인 방법 '약점만 무작정 쏘기' 보다는 RPG 게임의 레이드처럼 페이즈마다 공략법을 익혀야 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기본적인 틀 '쏴서 맞춰라'는 가져가면서도, 그 안에서의 효율적인 방법, 다양한 선택지를 준비한 것이 이번 '둠 이터널'의 특징이다. 약점을 공략할 수 있는 무기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퀵 메뉴에서 언제든지 유형에 맞춰 변경할 수 있다. 

'둠 슬레이어'의 조력자 인공지능 'VEGA'는 무기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필드 곳곳에 떠 있는 드론을 발견하면 업그레이드 부품을 챙길 수 있다. 이번에는 굳이 때려 부술 필요 없이 드론의 밑부분에 있는 부품만 얻어서 무기의 공격 유형을 변경할 수 있다.

 

무기와 함께 기본적인 스텟 역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무기고'와 전투 능력과 연결되는 '룬'과 '전투복'을 사용하면 다음 전투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업그레이드에는 일정 조건이 필요하다. 챕터마다 숨겨진 요소인 센티넬 배터리를 찾거나 도전과제 형식의 '챌린지' 요소를 달성해야 한다.

'걍 업글 다하고 후반에 썰자 하면 되겠네'라고 생각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물론 후반부에 가면 공격력 조절이 필요한 아이템도 등장하지만, 전반적인 밸런스를 놓고 본다면 '둠 이터널'은 굉장히 '아슬아슬한 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공격을 통한 체력회복 시스템이 잘 짜여있다. 

 

'둠 이터널'은 필드에서 탄약과 힐팩, 방어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은 '악마를 죽이는 것'이다. 탄약의 재장전, 인벤토리와 거리가 먼 '둠 이터널'은 적을 찢고, 터트려서 수급하는 방식을 기본으로 한다. 뭔가를 챙겨놓는 게임이 아니다. 줍고 바로 쏜다.

문제는 끊임없이 몰려오는 악마들을 없애다 보면 체력과 탄약이 고갈되기 시작한다. '원거리 공격'만으로 모든 악마를 처치하기는 매우 어렵다. 탄약이 부족하다. 백발백중으로 헤드샷을 꽂는다고 해도 부족하다.

 

이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전기톱'과 '글로리 킬'이다. 말 그대로 악마에게 근접해서 '전기톱'이나 '블러드 펀치'같은 기술로 썰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근접전' 역시 무작정 할 수는 없다. '수류탄', '화염 방사기' 등 일종의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스킬 쿨타임과 '연료' 같은 일정한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약점을 파악하고, 공략에 맞는 공격을 통해 불필요한 탄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둠+퍼즐 = '둠레이더'

'둠 이터널'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벽타기' 와 '봉타기'다. 단순히 악마들을 쓸어버리고, 계속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복잡한 지형과 퍼즐을 풀고, 필드 곳곳에 숨겨진 수집 요소를 찾을 수 있게 됐다.

 

'둠 이터널'은 단순히 쏴 죽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기엔 아까운 게임이다. '둠' 특유의 세계관과 분위기를 잘 살린 배경이 일품이다. 이를 제대로 살려낸 그래픽과 최적화 역시 훌륭하다.

 

퍼즐과 수집요소를 도입한 것도 나쁘지 않다. 잠깐 악마사냥을 멈추고, 주변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처럼 느껴진다. 무작정 악마들과 전투를 이어가기보다는 잠깐 쉬어가는 구간이 도입된 것인데, 단순 전투에 지루해지지 않도록 게임의 템포 조절을 생각한 부분이다.

퍼즐과 수집요소가 추가되었다고 해서 게임의 색깔이 바뀐 것은 아니다. 전작이 조금 무겁고 묵직한 맛이었다면, 이번 '둠 이터널'에서는 조금 힘을 뺀 느낌이다.

 

봉을 타고, 벽을 탄다고 해서 게임의 분위기가 단순히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둠'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를 흩트려놓지 않으면서도, 또 다른 재미로 느껴진다. '준비했지만, 필요 없다면 하지 않아도 돼'에서 그치는 수준이다.

 

머리 싸매고 퍼즐과 길 찾기, 아이템 수집에 시간을 뺏기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지 지도를 통해 아이템들의 위치와 현재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옵션'인 만큼 주변 배경을 살펴보고, 헤비메탈을 감상하며 잠시 쉬어가는 구간의 역할에서 그친다.

'둠' 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준 '이터널'

'둠' 시리즈는 무시무시한 게임이다. 악마가 등장해서가 아니라 '둠'은 FPS의 시작, 기본, 미래, 비교 대상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다른 게임들이 쉽게 도전할 수 없는 '확실한 색깔'을 가진 게임이다. FPS에 악마가 나온다면, 플라즈마가 나온다면, 전기톱이 나온다면, 어설프게 잘못 흉내 내는 척 비슷한 분위기만 보여도 게이머들은 '둠'과 비교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고전 명작'에서 머물지 않는다는 점은 대단하다. FPS에서만 느낄 수 있는 '원초적 재미'를 2020년 '둠 이터널' 에서도 만들어냈다. '둠 이터널'역시 어딘가에 숨어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먼저 쏘고 일단 들어가서 화끈하게 한 방 날리고 보는 그 강렬한 맛이 지금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몰아치는 빠른 게임 템포, 찢고 터트리는 시원한 타격감, 심박 수 상승하는 강렬한 음악에 취하다 보면 '아 여기 지옥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둠 이터널'은 '둠'이라는 단어, 그리고 이 게임이 가진 고유의 재미를 제대로 보여준 게임이다. 

 

물론 악마, 고어, 난도질 등 끔찍한 것들이 뿜어내는 피에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들이나 '스토리'의 비중을 높게 생각하는 게이머들에게는 그저 난잡한 총싸움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둠 이터널'은 '이드 소프트', '베데스다', '둠'이라는 계급장을 다 떼어놓고 봐도 상당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둠'의 뒷이야기를 기다린 게이머라면, 새롭게 바뀐 '둠'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본능에 충실한 화끈함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올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게임이다. 왜 아직도 사람들이 '둠'에 열광하는 지를 알고 싶다면, 이번 기회에 꼭 확인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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